연말이 되면 어쨌든, 어쨌든 책을 읽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매년마다 마지막 책을 '정하려는 것'도 말하자면 독서로서의 연말을 위해서이기도 하니. 무엇보다 그간 읽은 책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어쩌면 내년이 되기까지도 연말의 독서를 안고가는 경우도 왕왕 있는 법이다. 지금도 많은 책을 읽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세 권을 특히 열심히 붙잡아 떨쳐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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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단의 이것은 들뢰즈의 대담 중 하나인 《디알로그》다. 대담이란 무엇일까?로 방점을 찍고 들어가는 이 책은, 서로 질문과 답을 나누는 게 아니라, 단절되어 있는 듯 연결된 긴 언설과 긴 언설 사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조금 당혹스러운 형식과는 달리 꽤 읽을만하며, 들뢰즈가 핵심으로 두고자 하는 이야기를 긴밀하게 경청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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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오른쪽의 이것은 이제하 전집의 1권인 《초식》이다. 이제하가 초기에 쓴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고도기 한국 모더니즘 특유의 은근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전에 읽어봤던 서정인과도 꽤 비교되는 것 같다. 특히 논리적 비약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측면에서의 난해함, 특출남, 돌연함이 돋보인다. 반 정도 읽었는데 가장 돌연적으로 느껴진 것은 원숭이가 갑자기 주인공으로 전환되는 <임금님의 귀>, 가장 분위기에 매료된 것은 <태평양> 그리고 표제작 <초식>은 의외로 교과서적인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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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오늘 끝내고 싶은 이것은 유진 오닐의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다. 병마와 운명에 휩쓸려 파탄하는(아직 거기까진 도달하진 못했지만 내가 읽으면 조만간 그렇게 될) 가족을 다루고 있다. 의외로 연말에 굉장히 어울리는 작품이다. 재밌는 점이라면 유진 오닐이 희곡에 인물들의 겉보기와 속내 한땀한땀을 그려놓았다는 것인데, 그러한 섬세한 포착이 '글'로서의 이 희곡을 조미지게 만드는 감이 든다.


내일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하니 눈을 디딤 삼아 다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아직 읽으려고 쌓아둔 게 산더미라...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면 책보다는 무적의 병렬독 능력을 선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


책이 곧 술이고 파티며, 밤이고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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