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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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얘기를 듣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내가 어디서 태어났고, 등신 같은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그리고 내 부모님들이 날 가지시기 전에 무얼 하셨는지 뭐 그런 데이비드 코퍼필드식의 개떡 같은 얘기를 원하겠지만, 솔직히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 첫째, 그건 따분하고, 둘째, 내가 부모님에 관해 꽤나 사적인 걸 얘기하면, 부모님은 두 번씩 피를 토하실 거다. 부모님들은 그런 거에 꽤나 예민하신데, 특히나 아버지께서 그렇다. 좋으신 분들이고 뭐 그렇긴 한데—다름 아니라—존나 예민하시다. 게다가, 난 염병할 자서전이라든지 그딴 걸 쓸 생각도 없다. 내가 완전 나가떨어져서 여기로 와 쉬어야만 했던 작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일어난 정신나간 일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까 D.B.한테 다 얘기하긴 했는데, 걔는 내 형이고 그렇다. 걔는 할리우드에 있다. 거긴 이 거지같은 곳에서 별로 멀지 않아서, 걘 사실상 주말마다 들러 날 보러 온다. 아마 다음달 내가 집에 올 때 걔가 집으로 태워다 줄 거다. 걘 재규어를 이제 막 샀다. 시속 200마일 가량 운전이 가능한 귀염둥이 영국 차 중 하나 말이다. 거의 4천 달러나 처들었댄다. 지금은 돈을 많이 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었다. 예전에 집에 있었을 땐, 그냥 평범한 작가였다. 혹시나 걔한테 듣지 못했을 경우에 대비해서 말하는 건데, 걘 비밀 금붕어라는 엄청난 단편집을 썼었다. 거기서 가장 좋은 단편은 "비밀 금붕어"다. 자기 돈으로 샀다고 아무한테도 금붕어를 보여 주려고 하지 않는 꼬맹이 얘기다. 뒤진다. 지금 D.B.는 할리우드에 가 장사꾼이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영화다. 말도 마라.
내가 얘기를 꺼내고 싶은 부분은 펜시 사립 고등학교를 떠난 날이다. 펜시 사립 고등학교는 펜실베니아 에어저스타운에 있는 학교다. 여길 들어봤을 거다. 아무튼, 광고라도 봤을 거다. 개네들은 한 천 개쯤 되는 잡지에다 광고하는데, 늘 아주 잘 나가는 남정네가 말을 타고 담을 뛰어넘는 걸 보여준다. 마치 펜시에선 항상 폴로 경기를 하는 것마냥. 난 거기 근처에서 말 한 번을 본 적이 없다. 또 말 그림의 남정네 밑엔 늘 이렇게 적혀 있다: "1888년 개교 이래 본교는 아이들을 훌륭하고도, 명석한 사고를 지닌 청년으로 양성해 왔습니다." 개소리. 다른 학교보다 뭘 시발 더 양성하지도 않는다. 난 거기서 훌륭하고도 명석한 사고를 지닌 그런 인간을 본 적이 없다. 아마 두 명일 거다. 많아봤자지. 그리고 걔네들은 펜시에 오기 전부터 그랬을 거다.
그건 그렇고, 색슨홀과 미식축구 경기를 한 건 토요일이었다. 색슨홀과의 경기는 펜시에선 엄청 크나크신 일이었다. 그해의 마지막 경기였고, 만일 (old) 펜시가 이기지 못한다면 자살이나 뭔가를 저질러야만 할 것으로 여겨졌다. 오후 3시쯤에 내가 톰슨 언덕 꼭대기로 존나 올라가서, 독립 전쟁이나 그런 데서 썼다던 기가 막힌 대포 바로 옆에 서있던 기억이 난다. 거기서 경기장 전체를 볼 수 있을 테고, 사방에서 부딪치는 두 팀을 볼 수 있을 거다. 특별관람석을 잘 볼 순 없겠지만, 펜시 쪽에서의 크고 상당한 함성을 들을 수 있을 텐데, 왜냐하면 날 제외하고도 사실상 전교생이 거기에 있었지만, 색슨홀 쪽은 뼈만 남은 호모새끼 같았는데, 원정 팀이 거의 애들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식축구 경기에서 여자애들이 많은 일은 결코 없었다. 오로지 졸업반만 여자얠 데려오는 게 허락됐다. 끔찍한 학교다, 어떻게 봐도. 여자 얘들이 자기 팔만 긁든지, 코를 풀고 있거나, 킥킥거리거리든 뭐든 볼 수 있는 몇 명 주위에 있고 싶다. (old) 셀마 서머—걘 교장 딸내미였다—는 꽤 자주 경기에 나왔지만, 엄밀하게 사람 성욕을 들끓게 만드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도 꽤나 괜찮은 여자애였다. 에이저스타운에서 오는 버스에서 한번 걔 옆에 앉았다가 좀 말을 붙인 적이 있다. 난 걔가 괜찮았다. 코가 크고 손톱은 죄다 물어뜯긴 데다가 보기에도 피가 났고 사방으로 염병할 뽕이 삐져나왔지만 그래도 좀 불쌍해 보였다.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란 둥 개똥 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단 게 내가 걜 좋게 본 점이다. 걘 아마 그 인간이 사짜 등신인 걸 알고 있었을 거다.
내가 경기로 내려가지 않고서 한참 위인 톰슨 언덕에 서 있는 이유는 펜싱 팀이랑 같이 뉴욕에서 막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개같은 펜싱 팀의 매니저였다. 대단도 하시지. 우린 당일 아침에 맥버니 고등학교와 시합하러 갔었었다. 그렇지만 시합하지는 못 했다. 내가 개같은 지하철에 플뢰레(주석: 펜싱 검)에다 장비랑 그딴 걸 죄다 두고 갔었다. 내 탓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내릴 곳을 찾느라 계속 일어서서 노선도를 봐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우린 저녁쯤이 아니라 두 시 반에 펜시로 돌아왔다. 기차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팀 전체가 날 따돌렸다. 나름 웃겼다, 한편으론 말이다.
경기로 내려가지 않았던 다른 이유론 내가 역사 선생 (old) 스펜서한테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이 독감에 걸렸는 데다가, 아마도 크리스마스 방학이 되기 전엔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인간이 내가 집에 가기 전에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 인간은 내가 펜시로 돌아오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그거에 대해 얘기하는 걸 잊어먹었다. 내쫓겼다. 네 과목에서 낙제했으나 노력하지도 않다든가 뭐 그런 까닭에 크리스마스 방학 뒤에는 돌아오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열심히 하라고 빈번히 경고를 받았지만—특히 부모님이 (old) 서머랑 상담하러 오셨을 중간고사 때—난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퇴학 당했다. 펜시에선 꽤 흔히 있는 일이다. 학력 평가가 아주 좋댄다, 펜시는. 그렇고말고.
아무튼 12월이었고 뭐 그런고로 좆 빠지게(witch's teat) 추웠지만, 망할 언덕 꼭대기는 유난히 그랬다. 리버서블만 입었지 장갑이나 뭣도 없었다. 그 지난주에, 누가 내 방에서 낙타털 코트를 훔쳤는데, 거기 주머니나 뭐 그런 데 모피 장갑이 들어있었다. 펜시는 사기꾼 새끼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대단하신 부잣집 출신이지만, 그런데도 사기꾼 새끼 투성이다. 학비가 비쌀수록, 사기꾼 새끼들이 많다—농담이 아니다. 어쨌든, 난 그 기막힌 대포 옆에 계속 서서, 뒤질 것 같은 추위 속에(freezing my ass off) 시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시합을 그다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거기서 어슬렁거렸던 진짜 이유론 뭔가 작별이란 걸 느껴보려 해본 거다. 그러니까 난 여태까지 모르는 채로 여러 학교와 장소를 떠났었다. 난 그게 싫다. 슬픈 작별이든 나쁜 작별이든 알 바 아니지만, 떠날 때면 내가 떠난다는 걸 알고 싶다. 안 그러면, 기분이 훨씬 별로다.
운이 좋았다. 문득 떠오른 일 한가지가 내가 급히 여길 떠난다는 걸 체감케 해줬으니 말이다. 10월쯤, 학교 건물 앞 주변에서 내가 로버트 티처너하고 폴 캠벨이랑 미식축구공을 던졌던 게 불현듯 생각났다. 좋은 애들이었고, 티처너는 특히나 괜찮았다. 저녁 직전이라 꽤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우린 주변에서 공을 던지고 있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더 이상 공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만둬야 했지만. 생물 가르치는 잠베시 선생이 학교 건물 창문에 머리를 내미곤 우리더러 기숙사로 돌아가 저녁 먹을 준비나 하라고 했으니. 이런 걸 기억해둘 기회가 있다면 필요할 때 작별을 고할 수 있다. 난 작별을 고하자마자, 뒤돌아 언덕 맞은편 아래, (old) 스펜서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인간은 캠퍼스에 살지 않았다. 앤서니 웨인대로에 살고 있었다.
줄곧 정문까지 달리곤, 잠시 숨을 고를 때까지 멈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체력이 없다. 난 완전 골초인데, 일단—그러니까, 그랬단 거지만. 끊게 됐다. 다른 이유론, 내가 작년에 6인치 반 자랐다. 게다가 난 사실상 결핵에 걸려 썩을 건강 검진이나 그런 걸 다 하러 여기에 왔었던 거다. 그렇지만 난 지금 그럭저럭 건강하다.
아무튼 숨을 고르자마자 204번 도로를 건너 달려갔다. 존나 얼어붙어 가지고 처자빠질 뻔했다. 지금은 왜 달렸는지 모르겠다만—그냥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도로를 건너니까 내가 사라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독히 춥고, 햇빛도 보이지 않는, 그런 정신 나간 오후라 도로를 건널 때마다 없어져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거다.
진짜(boy), 난 스펜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초인종을 눌렀다. 진짜 추워서 얼어붙었다. 귀도 아픈데다, 손가락은 조금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빨리, 빨리," 솔직히 큰 소리로 말할 뻔했다, "누가 문 좀 열어주세요." 마침내 스펜서 아주머니가 열었다. 가정부나 뭐 그런 것도 없어서, 늘상 자기들이 직접 문을 열었다. 그 사람들은 돈이 엄청 많이 있지는 않았다.
"홀든!" 스펜서 아주머니가 말했다. "만나서 정말 기쁘구나! 들어와라, 애! 얼어 죽겠지?" 날 봐서 기쁜 듯했다. 날 마음에 들어 하니까. 적어도, 난 그리 여겼다.
진짜(boy), 난 서둘리 그 집으로 들어갔다. "잘 지내셨어요, 스펜서 아주머니?" 내가 말했다. "스펜서 선생님은 어떠세요?"
"외투 이리 주렴, 얘야," 그 여자가 말했다. 스펜서 선생이 어떠냐 묻는 걸 듣지 못했다. 그 여잔 귀가 좀 먹었다.
그 여잔 복도 벽장에 내 외투를 걸었고, 난 손으로 머리를 좀 넘겼다. 꽤 자주 머리를 짧게 깎아서 대체로 빗지 않아도 됐지만.
"잘 지내셨어요, 스펜서 아주머니?" 내 말을 듣도록, 다만 더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나야 괜찮게 지냈지, 홀든." 그 여자는 옷장을 닫았다. "넌 잘 지냈니?" 나한테 묻는 말투에서 바로 (old) 스펜서가 내가 쫓겨났다고 얘기해준 걸 알게 됐다.
"괜찮게요," 내가 말했다. "스펜서 선생님은 어떠세요? 지금은 독감이 나으셨나요?"
"낫기는! 홀든, 구는 게 완전—뭐라 해야할지 . . . 그이는 자기 방에 있단다, 애야. 들어가려무나."
—2—
그 사람들은 각자 자기 방이라든가 뭐 그런 게 있었다. 둘 다 70 정도, 아님 그보다 훨씬 많았다. 그렇지만 즐기면서 살곤 했다—물론, 되는 대로 말이다. 나쁘게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다. 내 말은 단지 (old) 스펜서에 관해 좀 많이 생각했고, 또 그 인간에 대해 과하게 생각하다 보니, 뭔 낙으로 사는지 궁금해졌다. 그 인간은 허리가 완전 굽은 데다, 자세는 엄청 나쁜지라, 수업 중, 매번 칠판에서 분필을 떨어트릴 때마다 맨 앞줄에 있는 애가 항상 일어나 주워 건네줘야만 했다. 내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근데 과하지 않게 충분히 생각하고 있으면, 그 인간이 그리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단 걸 알아낼 수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몇몇 애들하고 핫초코 사러 갔던 어느 일요일에, 그 인간이 스펜서 아주머니랑 옐로우스톤 공원에서 어떤 인디언한테 구매한 낡고 닳은 나바호 담요를 우리에게 보여줬었다. (old) 스펜서가 그걸 사 신났단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내 의도다. (old) 스펜서처럼, 존나 늙은 사람을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담요 하나 샀다고 신날 수가 있다.
문이 열려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예의나 뭐 그런 걸 차리려고 어느 정도는 노크했다. 그 인간이 앉아 있는 곳이 보였다. 방금 얘기한 담요를 둘둘 말고 커다란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노크하자 그 인간이 살펴봤다. "게 누구요?" 그 인간이 소리쳤다. "콜필드냐? 얘야, 들어오거라." 그 인간은 교실 밖에서도 항상 소리쳤다. 가끔 눈꼴이 시렸다.
들어서자마자, 온 게 좀 후회됐다. 그 인간은 애틀랜틱 먼슬리 잡지를 읽고 있었고, 사방엔 알약과 의약품이 있는 데다, 죄다 빅스 점비제(Vicks Nose Drops) 같은 냄새가 났다. 좀 우울했다. 아무튼 난 아픈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 우울하게 만들었던 건, (old) 스펜서가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입거나 그랬을 엄청 후줄근하고 지저분한 데다 낡은 목욕 가운을 입고 있었단 거다. 어쨌든 난 잠옷이나 목욕 가운을 입고 있는 늙은이를 보는 걸 썩 좋아하진 않는다. 나이 먹은 우둘투둘한 가슴이 항상 보인다. 또 다리도. 바닷가나 그런 데서, 늙은이들 다리는 무지 하얀 데다 털이 없어 보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내가 말했다. "편지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인간이 내가 다신 돌아오지 않으니 방학하기 전에 잠시 들러 작별 인사를 해주겠냐는 편지를 보냈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으셨어요. 뭐라 하셔도 들러서 작별 인사를 드리려 했거든요."
"거기 앉거라, 얘야," (old) 스펜서가 말했다. 침대를 말한 거였다.
난 거기에 앉았다, "독감은 어떠세요, 선생님?"
"얘야, 지금보다 더 괜찮으면 의사를 불러와야 할걸," 그게 그 인간을 쓰러지게 했다. 그 인간은 미친 사람처럼 낄낄 웃기 시작했다. 마침내 안정을 찾고선 말했다, "왜 경기에 가지 않았니? 오늘 큰 경기가 있던 것 같은데."
"있죠. 저도 있었고요. 다만 펜싱 팀이랑 막 뉴욕에서 돌아왔었죠," 내가 말했다. 진짜(boy), 침대가 돌 같았다.
그 인간이 존나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그만둔다는 거지, 맞니?" 그 인간이 말했다.
"네, 선생님. 그런 것 같네요."
그 인간은 맨날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인생 통틀어서 스펜서만큼 고개를 끄덕거린 사람을 본 적 없었을 거다. 많이 고개를 끄떡거리는 게 생각이라든지 그런 걸 하고 있는 건지, 괜찮은 사람인데 늙은이라 똥1오줌도 못 가려 가지고(not know his ass from his elbow)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서머 교장 선생님께서 뭐라 말씀하셨니, 얘야? 좀 얘기를 많이 나눴던 걸로 알고 있다."
"네, 그랬죠. 정말 그랬죠. 교장실에만 두 시간 가까이, 그럴 거예요."
"뭐라 말씀하셨더냐?"
"어 . . . 음, 인생이란 경기나 그런 거라고요. 또 규칙에 따라야만 한다고요. 부드럽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러니까 노발대발하시거나 그러지 않으셨다고요. 인생이란 경기나 뭐 그런 거라고 계속 말씀해주셨죠. 아시잖아요."
"인생은 경기란다, 얘야. 인생은 규칙대로 하는 경기지."
"네, 선생님. 알죠. 알고 있어요."
경기는 옘병. 끝내주는 경기시지. 잘나가는 사람들만 있는 쪽이면, 그건 경기고, 그렇다—인정하겠다. 근데 잘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딴 쪽이라면, 뭐가 경기인가? 전혀 아니다. 경기가 아니지. "벌써 서머 교장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소식을 보내셨더냐?" (old) 스펜서가 물었다.
"월요일에 보내신대요."
"연락은 직접 드렸고?"
"아뇨, 선생님. 아마 수요일 밤 집에 갔을 때 뵐 거라, 연락은 드리지 않았어요."
"그럼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이실 것 같으냐?"
"음 . . . 화가 단단히 나시겠죠," 내가 말했다. "정말 그러실 거예요. 제가 다닌 학교만 이번이 한 4번째라." 난 고개를 저었다. 난 고개를 좀 많이 젓는다. "진짜(boy)!" 게다가 "진짜(boy)"라고 좀 많이 말한다. 어느 정도는 어휘력이 형편없기 때문이고 어느 정도는 가끔 나이에 비해 좀 어리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땐 16살이었고, 지금은 17살이지만, 가끔 한 13살처럼 행동한다. 참 아이러니한 게, 6피트 2인치 반(주석: 약 189cm)에다 새치가 났는 데도 말이다. 정말이다. 머리 한쪽—오른쪽—에 새치 수백만 개가 그득하다. 어렸을 때부터 났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끔 한 12살 밖에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다들, 특히 내 아버지께서 그렇다고 말씀한다. 일부분은 맞지만, 다 맞다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항상 어떤 게 전부 다 맞다고 생각한다. 가끔 사람들이 나보고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고 하면 진저리가 난다는 거 빼곤, 좆도 신경쓰지 않는다. 가끔 내 나이에 비해 꽤 성숙하게 행동하지만—정말이다—사람들은 한 번도 눈치채지 못한다. 사람들은 뭔갈 눈치채는 법이 없다.
(old) 스펜서가 다시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코를 파기 시작했다. 단지 코를 쥐는 것처럼 굴었지만, 진짜 엄지손가락으로 콧속을 건드리고 있었다. 나만 방에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 코를 파는 걸 보는 게 대단히 역겹다는 것 빼곤, 나도 상관 없었다.
그러곤 그 인간이 말했다, "몇 주 전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서머 교장 선생님과 담소를 조금 나누실 때 뵙는 기회가 있었단다. 굉장하신 분들이다."
"네, 그렇죠. 정말 좋으신 분들이죠." 굉장. 진짜 싫어하는 단어다. 가식적이다. 들을 때마다 토할 것 같다.
그러다 번뜩, (old) 스펜서는 나한테 말해줄 아주 좋고도, 예리한 뭔가가 생가난 모양이었다. 의자에서 더 일어나 주위로 좀 움직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무릎 위 애틀랜틱 먼슬리를 들곤 침대 위, 내 옆에다 내던지려 했을 뿐이었다. 빗나갔다. 고작 2인치 가량의 거리였지만, 그런데도 빗나갔다. 난 일어서서 줍곤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돌연, 그때 방에서 빨리 꺼져버리고 싶었다. 머지않아 심한 잔소리가 올 것 같았다. 예감에 딱히 신경쓰지 않았지만, 일시에 잔소리 들으면서 빅스 점비약 냄새를 맡고 잠옷이랑 목욕 가운 차림의 (old) 스펜서를 볼 기분이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확실히,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냐, 얘야?" (old) 스펜서가 말했다. 나름 꽤 엄하게 말했다. "이번 학기 몇 과목 배웠더냐?"
"다섯이죠, 선생님."
"다섯이지. 그럼 몇 과목이나 낙제했느냐?"
"넷이요." 난 침대에서 궁둥짝을 살짝 움직였다. 지금껏 앉아본 침대 중에서 가장 딱딱했다. "영어는 분명 통과했잖아요," 내가 말했다, "우튼고(高)에 다닐 때 베오울프랑 내 아들 랜들 공(公) 같은 건 했거든요. 그러니까 가끔 작문 쓰는 것 빼곤, 영어는 딱히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됐죠."
그 인간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뭔가 말할 때면 거의 듣지도 않는다.
"네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역사는 낙제시켰다."
"알죠, 선생님. 아니(boy), 알아요. 어쩔 수 없으셨겠죠."
"하나도 없다," 거듭해서 말했다. 그게 정신 나가게 하는 거다. 처음에 인정을 했는데도, 사람들이 뭔갈 두 번씩 얘기하고 그럴 때. 그러더니, 그 인간은 세 번째로 말했다. "근데 하나도 없단다. 학기 통틀어서 교과서 한 번이라도 펴 봤는지 의구심이 드는구나. 펴 보기는 했니? 이실직고하거라, 애야."
"뭐, 몇 번 정도는 좀 훑어봤죠," 내가 얘기했다. 그 인간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인간은 역사광이니까.
"훑어봤다라, 맞지?" 그 인간이 말했다—엄청 빈정대면서. "네, 어, 시험지가 저기 양복장 위에 있다. 더미 위에. 여기 가져와주려무나."
되게 추잡한 술수였지만, 가서 그 인간에게 가지고 왔다—내게 어떤 선택지나 그런 건 없었다. 그러고 다시 시멘트 침대에 앉았다. 진짜(boy), 작별 인사를 하러 잠시 들른 게 얼마나 갈수록 후회되는지 상상이 안 갈 거다.
그 인간은 내 시험지를 똥이나 그런 거라도 되는 것마냥 다루기 시작했다.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 이집트인 공부를 했다," 그 인간이 말했다, "자유 서술형에 이집트인에 관해 적기로 골랐지. 뭐라 했는지 들어보겠느냐?"
"아뇨, 선생님, 그다지," 내가 말했다.
아무튼 그런데도 그 인간은 읽었다. 뭘 하고 싶어할 때의 선생님은 막을 수 없을 거다.
이집트인들은 아프리카 북부 지역 한쪽에 거주하고 있는 고대의 백인종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아프리카는 동반구에서 가장 큰 대륙이다.
난 거기 앉아서 그 거지같은 걸 들어야만 했다. 정말 추잡한 술수였다.
이집트인들은 오늘날 다양한 이유에서 우리에게 몹시 흥미롭다. 아직도 현대 과학은 이집트인들이 죽은 사람들을 감을 때 무수한 세기에 걸쳐 부패하지 않도록 쓴 불가사의한 원료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20세기의 현대 과학자들에게 이 흥미로운 수수께끼는 여전히 크나큰 도전이다.
그 인간은 읽는 걸 멈추고 시험지를 내려놓았다. 그 인간이 좀 혐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술은, 뭐랄까, 거기서 끝났구나," 그 인간은 엄청 빈정거리는 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늙은이가 그렇게 빈정대거나 그러리라곤 섕각지도 못할 거다. "그런데, 시험지 하단에 짧게 몇 줄 적어 보냈더구나," 그 인간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내가 말했다. 난 그 인간이 앞서 그걸 큰 소리로 읽으려 하는 걸 막고 싶어 무척 서둘러서 말했다. 그렇지만 막을 수 없었을 거다. 그 인간은 신나 죽었다.
스펜서 선생님께 [큰 소리로 읽었다]. 제가 이집트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수업은 무척 흥미로웠지만 저는 이집트인에게 딱히 흥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 낙제인지라, 낙제시키셔도 괜찮습니다. 홀든 콜필드 올림.
그 인간은 염병할 시험지를 내려놓곤 탁구라든가 그런 데서 방금 처바른 것마냥 날 바라봤다. 그 개소리를 큰 소리로 읽은 건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인간이 그걸 썼었다면 난 큰 소리로 그 인간한테 안 읽어줬을 거다—진짜로 말이다. 애초에 날 낙제시킨 거에 죄책감이 들지 않게끔 썩을 메모를 남겼을 뿐이다.
"낙제시킨 거에 원망하니, 애야?" 그 인간이 말했다.
"아뇨, 선생님! 물론 아니죠," 내가 말했다. 계속 "애"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존나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인간은 볼일 다 보자마자 시험지를 침대에 내던지려고 했다. 근데 당연히 또 빗나갔다. 난 또 일어나 줍고서 애틀랜틱 먼슬리 위에다 놓아야만 했다. 2분마다 그러니 답답해진다.
"내 입장이면 어떻게 했을 것 같니?" 그 인간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보려무나, 애야."
뭐, 날 낙제시킨 거에 정말 마음이 좀 무겁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잠시 동안은 헛소리를 지껄였다. 내가 정말 빡1대가리라든가, 그런 말을 했다. 내가 그 인간 처지였어도 바로 똑같이 했을 거고, 선생 일이 얼마나 힘든지 대부분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딴 거 말이다. 진부한 헛소리.
그런데 희한한 점은 내가 헛소리를 지껄이는 와중에 다른 걸 좀 생각하고 있었단 거다. 뉴욕에 살고 있어, 센트럴 파크 남부 근방에 있는 연못을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갔을 때면 완전 얼음으로 뒤덮일지, 만일 그렇다면, 오리들은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다. 연못이 죄다 얼어 얼음으로 덮였을 때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었다. 누가 트럭 타고 와서 동물원이나 그런 데로 데려가나 싶었다. 아니면 그냥 날아가 버린다든지.
그래도 운이 좋았다. 그러니까 (old) 스펜서한테 진부한 헛소리를 하는 동시에 이런 오리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희한한 일이다. 선생한테 말할 땐 너무 골똘히 생각할 필요 없는 거다. 그런데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을 때 갑자기 그 인간이 말을 끊었다. 그 인간은 항상 말을 끊었다.
"이번 일 다 어떻게 생각하니, 애야? 정말 알고 싶구나. 정말로 그래."
"그러니까 낙제해 가지고 펜시에서 쫓겨난 거라든가 그런 거요?" 내가 말했다. 난 그 인간이 자기 울퉁불퉁한 가슴을 가렸으면 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네가 우튼고(高)랑 엘크턴 힐스에서도 좀 힘들어했다고 알고 있다." 그 인간이 빈정댄 것만은 아니었지만 좀 띠껍게 말했다.
"엘크턴 힐스에서 딱히 힘들어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얘기했다. "퇴학당했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그냥 그만둔 거죠, 뭐."
"왜, 이유가 뭘까?"
"왜냐고요? 어, 뭐 설명하려면 기네요, 선생님. 그러니까 제법 복잡하다고요." 그 인간한테 일일이 다 애기할 기분이 아니었다. 어차피 그 인간은 공감 못했을 거다. 전혀 그 인간 관심사가 아니었다. 엘크턴 힐스를 때려치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주변이 온통 가식쟁이였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그 새끼들은 염병할 창문으로 쏟아졌다(주석: 가식쟁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는 뜻). 이를테면 하스라는 교장 선생이 있었는데, 지금껏 만나 본 가장 가식적인 씹새끼였다. (old) 서머보다 열 배는 더 별로였다. 가령, 일요일에 학부모들이 차 타고 올 때면 (old) 하스는 악수하고 다녔다. 존나 멋들어지시고 그랬다. 어떤 애 부모가 우습게 보일 때 빼곤. 그 새끼가 나랑 방 같이 쓰는 애 부모한테 한 꼴을 봤어야 했다. 그러니까 애 어머니께서 좀 살찌시거나 촌스럽게 보이신다든지 그러시면, 또 어떤 애 아버지께서 어깨가 많이 커다란 정장 차림에다 촌스런 흑백 구두를 신고 있으시면, (old) 하스는 악수만 해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고는 다른 애 부모한테 가서 반시간가량 수다를 떨었다. 그딴 게 정말 싫다. 미칠 노릇이다. 울울해져 정신 나간다. 난 그 엿같은 엘크턴 힐스가 혐오스럽다.
그때 스펜서가 뭔갈 물었지만, 듣지 못했다. 난 (old) 하스 생각 중이었다. "뭐라고요, 선생님?" 내가 말했다.
"펜시 그만두는 데 따로 걸리는 거라도 있느냐?"
"어, 몇 개 걸리는 게 있고, 그렇죠. 분명히 . . . 근데 그다지 많지는 않아요. 암튼 아직은요. 아직 실감나지가 않은 것 같네요. 실감나기까지는 좀 드니까요. 당장은 수요일에 집 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거든요. 빡1대가리라."
"장래에 정말 걱정이 없는 거니, 애야?"
"좀 장래가 걱정되고, 그렇죠. 분명. 분명히 걱정되죠." 난 잠시 생각했다. "근데 별로 많지는 않은 것 같네요.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된다," (old) 스펜서가 말했다. 그렇게 된다, 애야. 너무 늦었을 때 그렇게 된단다."
그 인간이 그리 말하는 게 듣기 싫었다. 큰일 났다든가 그런 것처럼 들렸다. 엄청 울울해졌다. "그렇게 되겠죠," 내가 말했다.
"정신 좀 차리게 해주고 싶구나, 애야. 도와주려 하는 거다. 가능한 한 도와주려고."
그 인간은 정말 진심이었다. 그걸 알 수 있었다. 다만 그저 우리는 극심한 양극단에 있었고, 그뿐이다. "그러신다는 거 알아요, 선생님," 내가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고맙습니다. 진짜로요." 그 직후, 난 침대에서 일어났다. 진짜(boy), 죽어도 거기에 10분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근데, 실은 저 이제 가봐야 해서요. 집에 가져가야 될 짐이 체육관에 좀 많이 있거든요. 진짜로요." 그 인간은 엄청 걱정하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곤 다시금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문득, 그 인간이 존나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양극단에 있는 채, 꾸준히 그 인간이 뭔갈 내던질 때마다 침대에서 빗나가는 데다, 후줄그레하고 낡은 목욕 가운은 가슴팍이 보이고, 이곳저곳에 독감용 빅스 점비제 냄새가 나, 더 이상은 거기서 빈둥거릴 수가 없었다. "저기,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정말로요. 괜찮을 거예요. 지금 한 때 거쳐가고 있을 뿐이거든요. 다들 한 때 거쳐가고 그러지 않나요?"
"모르겠다, 애야. 모르겠어."
난 누가 그렇게 답하는 게 싫다. "분명, 분명히, 다들 그래요," 내가 말했다. "정말로요, 선생님. 부디 걱정 마세요." 대충 그 인간 어깨 위에다 손을 얹었다. "아시겠죠?" 내가 물었다.
"가기 전에 핫초코 한 잔 어떠니? 집사람도—"
"저도 그러고, 정말 그러고 싶지만, 실은 가봐야 해서요. 어서 체육관에 가야 하거든요. 그렇지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다음 우린 악수했다. 그 밖의 쓰레기 같은 것들도. 근데, 이게 존나 슬퍼지게 했다.
"소식 전해드릴게요, 선생님. 독감 나으시고, 그럼."
"잘 가렴, 애야."
문 닫고 거실로 돌아가기 시작한 뒤로, 그 인간이 나한테 뭐라 소리쳤지만, 정확히 들리지가 않았다. "행운을 빈다(good luck)"라 소리쳤을 거라고 어느 정도 확신한다. 그러지 않았길. 그러지 않았길 존나 바란다. 나는 절대로 누구한테 "행운을 빈다(good luck)"라고 소리치지 않았을 거다. 생각해보면, 역하게도 들린다.
예전에 번역하다 유기한 거임. 이탤릭체는 귀찮아서 걍 넘김.
꼬우면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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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읽었을 때보다, 나중에 곱씹을수록 점점 더 생각나는..
지금도 피비와의 대화는 기억이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