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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민음사, 김연수 옮김)
스포주의
성실하고 소박하게 살아온, 스물일곱 살의 능력 있는 가정 관리사 ‘카타리나 블룸’은 어느 댄스파티에서 만난 남성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카타리나의 집에 느닷없이 경찰이 들이닥친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홀연히 사라진, 카타리나와 하루를 보낸 그 남자는 사실 수배 중인 범죄자였던 것. 경찰은 카타리나를 공범으로 판단, 체포하여 수사하기 시작한다. 강도 높은 수사 후 카타리나를 집까지 바래다준 경찰이 그에게 조언한다. 전화는 손도 대지 말고 내일 신문도 펼치지 말라고...
아니나 다를까 극악의 황색 언론 ‘차이퉁’은 카타리나를 ‘강도의 정부’라며 대서특필하고 그의 주변을 대상으로 자행한 인터뷰를 자신들이 구성한 틀에 멋대로 끼워 맞추기까지 하며 온갖 가짜 뉴스를 만들어 마녀사냥을 일삼음. 그렇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문에 등장할 일 없이 평범하고도 성근한 소시민이었던 카타리나는 순식간에 ‘시대사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고, 무참할 정도로 인격 말살에 가까운 언론(여론) 공격을 받아 제대로 된 일상을 살 수 없게 되자 신문 기자를 집으로 따로 불러 총으로 사살하고 자수함. 조금도 후회되지 않는다며, 괴텐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이처럼 강렬한 사회 비판 ‘이야기’는 무척이나 오랜만이어서 굉장히 흥미로웠음. 무엇보다 가장 놀란 건, 70년대에 출간됐음에도 예스러움이 전혀 없다는 것. 날짜나 어조 등만 고치면 정말 엊그제 발매된 책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세련됐음. 이야기 갈래를 세 가지로 나누면, 하나는 차이퉁이 만드는 가짜 뉴스, 하나는 카타리나의 뒤바뀐 일상, 하나는 진실을 소개하는 서술자의 시점일 수 있는데, 이 세 갈래를 직조하고 엮는 솜씨가 가히 훌륭함. 특히 ‘원천’이나 ‘웅덩이’, ‘흐름’ 등 사건의 진행(진실 왜곡) 과정이자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물의 흐름에 덧씌워 풀어나가는 비유가 탁월함. 밀도가 높아서 분량이 상당히 짧은 편임에도 마냥 쉽게 읽히지 않으나, 완급 조절이 뛰어나서 쉽게 쉬지도 못하게 함. 말 그대로 물 흐르듯 읽게 됨.
이는 아마 작가의 명확한 목적의식 때문일 텐데, 작가의 회고와 작품 해설까지 읽으면 아주 작정하고 썼다는 걸 알게 된다, 집필 목적과 발산 방식이 너무나 명확하니 흔들림 없이 진행되고 감상도 의도에 맞게 명확하게 정리됨. 즉, 사회 비판까지 갈 것도 없이 순수 재미가 뛰어나고 재미의 영역을 들먹이는 게 민망할 정도로 사회 비판 요소가 흥미로움. 집약적으로 잘 짜인 책이라고 생각함.
해석을 덧붙여 내용을 정리하자면, 언론과 사회와 권력이 저지르는 무차별적인 폭격이, 그에 휩쓸린 대중 여론이 손쉽게 뱉어내는 모욕과 모독이,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이 모든 폭력이 한 개인을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믿기 어려운 사실’과 ‘믿기 쉽게 가공된 자극’ 사이에서 ‘진실한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 너무나 당연한 해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오니 차라리 다른 걸 보겠습니다.
일테면 반대로 이 책의 재미없는 부분. 먼저 문체 얘기를 안 할 수 없음. 이렇게 딱딱한 직역은 처음 봅니다... 문장은 길되 하고 싶은 말을 한 번에 하고 싶을 뿐 장황하게 느껴지진 않는데, 번역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딱딱해서 눈에 쏙 안 들어옴. 원문이 궁금할 정도. 좋게 생각하면 추측상... 원문도 딱딱하긴 할 것 같긴 한데, 이는 책 ‘콘셉트’와 결부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음. 마치 보고서와 기사 사이의 르포를 지향한 것 같아서 (번역 너머) 냉랭함이 문장 곳곳에 스며있음. 그걸 번역이 한두 술은 더 뜨는 것 같을 뿐...
게다가 이 창작물이 르포를 지향함에도 이야기로 보일 수 있도록 구성한, 곳곳의 유머(라고 해도 될지 싶은, 무거운 분위기를 중화하려는 서술자의 개입)가... 끔찍하게 재미없음. 세상에. 설마 방금 그거 유머였나? 한 박자 늦게 생각이 들어(반 박자도 아님) 다시 읽은 적도 많음. 독일 작가에 대한... 선입견일까요...?
서사가 흥미로운 것과 별개로 캐릭터까지 지나치게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이 ‘재미없음’에 한몫할 것 같음. 독자는 인물들의 배경에 대해 서술자가 주는 단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음. 그런데 그게 마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알려주는 걸 일부러 꺼리는 것처럼 느껴짐.
즉, 정말로 있던 사건을 누군가 발굴하여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 공표할 목적으로 쓴 글처럼 보이게끔 공들인 모든 설정이 오히려 인물을 그저 상황만을 위해 구성된 역할(소모품)로만 보이게 한단 뜻임. 단순히 번역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점들이 얽혀서 책 전체를 딱딱하게 느낀 게 아닐까 싶음.
더 나아가서 이건, 앞서 내용 정리를 ‘진실한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까지라고만 한 것과 맞물림. 더 정확히는, ‘내용과 주제를 정리하자면 ~ 진실한 언어를 찾는 수고를 기꺼이 행해야 함을 역설한다’라고 쓰고 싶었으나,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 책은, 진실한 언어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음(‘주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함). 물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더욱, 단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할 거임. 언론의 책임감 역설과 더불어 무비판적인 수용을 경계하라고 할 거였으면 ‘움샤우’의 비중을 조금 더 늘리거나, ‘블로르나’가 다른 신문사와 연락을 취하거나, 하다못해 다른 ‘객관적인’ 신문사가 취재를 요청하나 질려 버린 카타리나가 거절하는 장면이라도 있어야 했다고 생각함.
‘권력’ 내부에서 부품처럼 소모되는 이들을 위한 제창에 몇 페이지나 할애한 걸 보면 다른 무엇보다 권력 ‘시스템’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큰 것 같으나, 그 언론을 소비하는(궁극적으로 이 책을 가장 많이 읽을) 시민 독자 입장에서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답함 유발만은 기가 막히네요. 그런데 우린 무얼 해야 하죠? 차이퉁 구독 끊으면 될까요? 질문을 던진 것 자체가 책의 목적이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남음. 이를 떠먹여 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독자라기보다는 논설과 이야기의 경계에서 우선적으로 비판하는 대상만이 너무 크기 때문에 생긴 약간의 공백에 의문을 품는 것으로 봐 주면 감사드리겠음.
추가적으로, ‘서술자’라는 단어를 굳이 계속 쓰는 건 서술자의 존재가 장점이자 단점으로 보여서 그럼. 그리고 이 책에서 정체가 가장 궁금한 인물이기도 함. 상황을 ‘설명’해 주려는 의도가 불필요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고 먼 곳 너머 분노를 토해내는 듯한 장면이 그다지 조화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터라 순간을 못 이긴 작가의 자아가 튀어나온 것 같아서 그럴 때마다 오롯한 책의 재미는 떨어졌는데, 카타리나의 죄를 결코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점, 진실을 소개하면서도 무언가 숨기는 것 같다는 점, 그럼에도 주관성을 누르는 객관성으로 정보 전달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 등을 보면 극 중 누군가가 뒤늦게 모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진실을 그러모아 필명으로 출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서 순식간에 흥미로워지기 때문(그런 의미에서 나는 블로르나가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함. 더불어 ‘쇠너’도 블로르나가 죽였다고도). 그러니 장단점보다는 특징으로, 메타적 화자를 잘 살렸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음.
정리하자면, 오십여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품고 있는 이야기이자 ‘예술은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다’라는 구절에 너무나 걸맞은 작품이었음. 다루고자 하는 바가 너무나 명민해서 정말 단순한 책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을 하나 본 듯함.
4.0 / 5.0
책 너머 세상을 향하는 곧고 날카로운 직선의 힘
25. 10. 05. 읽음
중딩 때 처음 읽고 후유증이 씨게 왔던 소설. 그 이후로 언론의 무서움을 좀 더 경계하면서 살게 된 것 같음. 당시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찝찝함이 있었는데, 리뷰글 읽어보니 결국 독자에게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는지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데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네. 좋은 리뷰글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