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F소설 잘 안 읽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좋은 번역을 찾아보기 어려워서다.
똥 밟은 적이 너무 많아서 번역 SF소설들 읽다 보면 글을 늘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간만에 잡은 이 중단편 소설집도 도대체 읽히지가 않고 머리 속에서 상황 그림이 안 그려지고 대사들에 메롱한 부분이 많다.
수록작 '시간의 목소리'에서 무작위로 한 대목 골라잡아 옮겨본다
They carried their cocktails through into a wide glass-roofed studio, the huge white ribbon of concrete uncoiling around them like toothpaste squeezed from an enormous tube.
On the staged levels running parallel and across them rested pieces of grey abstract furniture, giant photographs on angled screens, carefully labelled exhibits laid out on low tables, all dominated by twenty-foot-high black letters on the rear wall which spelt out the single vast word: ******YOU******
Kaidren pointed to it. „What you might call the supraliminal approach.“
He gestured Powers in conspiratorially, finishing his drink in a gulp.
„This is my laboratory, doctor,“ he said with a note of pride. „Much more significant than yours, believe me.“
역자 번역
그들은 칵테일을 들고 유리 천장이 있는 널찍한 작업실로 들어갔다. 거대한 흰색 콘크리트 리본이 엄청난 크기의 용기에서 짜낸 치약처럼 그들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그들 건너편 무대 위에는 추상적인 형태의 회색 가구 여러 점, 각진 스크린에 붙은 거대한 사진들, 세심한 설명이 달려 탁자에 진열된 전시품들이 그들과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
그 뒤편 벽에는 길이가 20피트나 되는 검은 글자들이 단 하나의 거대한 단어를 만들면서 모든 전시품을 압도하듯 그려져 있었다.
****** 너 ******
칼드런은 그쪽을 가리켰다. "초의식적 접근 방식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그는 파워스를 향해 음모를 꾸미는 듯한 손짓을 하고는 술잔을 한 번에 비웠다.
"여기가 제 실험실입니다, 박사님" 그가 자부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의 실험실보다 훨씬 중요한 곳이죠. 제 말을 믿으세요."
내 번역
그들은 칵테일을 들고 널찍한 유리지붕 작업실에 들어갔다. 엄청난 크기의 튜브에서 짜낸 치약처럼 보이는 거대한 흰색 콘크리트 띠가 그들을 두르고 있었다.
층이 진 바닥들 위에 추상주의 회색 가구 몇 개와 각진 스크린에 붙여진 거대 사진들과 낮은 탁자들 위에 세심하게 분류된 전시물들이 나란히 놓여 그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뒤쪽 벽에 적힌 20피트 길이의 검은 글자들은 하나의 굉장한 단어: YOU(너)를 만들며 다른 전시품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캐드런은 그걸 가리켰다. "박사님이라면 저걸 인지가능 접근법이라고 칭하실테죠."
그는 꿀꺽 술잔을 비우며 파워스에게 공모자라도 된 듯한 손짓을 했다.
"박사님, 여기가 제 실험실이에요." 그가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님의 실험실보다 훨씬 중요한 곳이죠. 제 말을 믿으세요."
1. ribbon은 띠라는 뜻이다. "콘크리트 리본"으로 번역하면 콘크리트가 선물포장 리본처럼 장식적으로 꼬여 묶여 있는 것처럼 들리지 않을까?
2. on staged levels는 층이 진(1단 2단 3단...) 바닥들이 있고 그 위에 전시품들이 놓여 있다는 뜻이다. "건너편 무대 위에"가 아니다.
3. running parallel and across them 전시품들이 줄지어 나란히 놓여있고 두 사람을 가로질러 놓여있다는 뜻이다. "그들과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가 아니다.
4. Y,O,U 세 글자가 YOU라는 단어를 만들며 적혀 있다는 뜻이다. "너"라고 번역하면 한글로는 한 글자인데 "글자들"이라는 표현과 모순되니 "YOU(너)"로 번역했어야 했다.
5. 원문에 사람 이름이 Kaidren이라고 적혀있는데 역자는 멋대로 "칼드런"으로 옮겼다.
6. supraliminal은 subliminal의 반의어로서 인지가능한, 의식가능한(자극의 세기가 의식의 역치(limen)를 넘어서서 비로소 인지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초의식적"이라고 번역하면 의식 영역을 넘어서 의식불가능한 신비 영역으로 갔다는 뜻으로만 들릴 것이다.
7. conspiratorially는 '공모자가 된 듯'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박사님, 내 전시품의 의미를 잘 아시죠?' 이런 태도로 제스처 했다는 말이다. "음모를 꾸미는 듯한"이라는 번역은 도대체 뭔 소리인지 와닿지 않는다.
한 대목 번역해 봤는데도 조호근이라는 분의 번역이 영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꼼꼼하고 언어감각 좋은 SF 번역자의 새 번역을 기다린다.
너는 말그대로 한 대목, 그것도 오류를 지적하기 위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번역한거고 저분은 본인의 업으로써 수많은 책들 중 하나를 번역한거니 당연히 저 대목에 한해서는 네 퀄이 좋을수밖에..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직업인이 자기 이름 걸고 번역료 받고 번역한다면 프로페셔널하게 잘 해야지. 재미로 번역한 나보다 못 하면 그게 프로인가?
언어 쪽은 프로가 아마추어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한지라.. 솔직히 정말 언어감각 뛰어나고 외국어 실력 출중한 엘리트가 방구석에서 소설 번역해서 먹고사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음? 물론 그런 분들도 있지만 모두가 그러길 바라기는 어렵지
안 읽히는 건 그냥 님 집중력 문제인 거 같은데
오역 지적은 환영이긴 함
조호근 이사람 SF 번역해서 소개해주는건 고마운데 한국어 능력좀 더 길렀으면 좋겠음. 글 정보 흐름이 한국어랑 안 맞아서 읽을 때 덜그덕거리는 부분이 너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