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c

-연설술은 있는 것들 가운데 무엇에 관계합니까?-


452d

-그것은 진실로 최고로 좋은 것이며, 사람들 자신에게는 자유의 원인이 되고, 동시에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되는 바로 그것이오,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말로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연설술만이 설득의 장인은 아니다.

연설술은 훌륭한 축에는 전혀 들지 않는 어떤 것의 일부다.


463b

-저는 그것을 아첨이라고 부르지요. 그것은 기술처럼 보이지만, 제 주장에 따르면, 기술이 아니라 익숙한 경험이자 숙달된 솜씨입니다. 저는 연설술뿐만 아니라 치장술도 소피스트술도 이것의 부분이라고 부릅니다.


이러자 폴로스는 정신 나간 사상으로 열을 낸다.

연설술은 시민들을 다스리고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어서 권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연설술은 개쩐다는 것.


463d

-대답하면 자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연설술은, 내 주장에 따르면, 정치술의 부분에 관한 모상이네.


소크라테스의 폴로스를 향한 태도는 명확하다. '애샛기가 말귀를 못 알아처먹어.'


모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독회에 참여하신 분들은 입이 근질근질 거릴 게 틀림없는 단어가 나와버렸다. 하지만 아직 <고르기아스>다.


여기서 잠시 위에 고르기아스가 말했던 연설술이란 '최고로 좋은 것'이란 말과 폴로스가 '권력이 짱임'이라고 했던 말을 곱씹어 보자.

당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근육으로 얻는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 말발 좋고, 내가 생각한 정책과 네가 생각한 정책이 다를 때 어느 한 쪽을 '말'로 설득해서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곧 권력이었다.

내 생각에 동조해 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커지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너무나 유행했던 자유의 길이었다.

말로 설득하는 건 뒤에서 칼을 꼽고, 앞에서 창으로 쑤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나름 평화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정치에서 설득 말고 좋은 방법이 있나? 총칼로 너 죽고 나 죽은 다음 살아남은 놈 말만 들어야 되는 것보다 백배는 좋은 방법 아니던가. 물론 당시 그런 게 너무 팽배해져서 부정부패로 타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중에 <국가>, <법률>로 적극적인 정치술을 말하는 것일 테고, 아첨으로 치부한 것도 플라톤의 그런 연유겠지만, 설득은 정치술의 일부로 폄하하기보다는 원천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의도를 떠나 말로 해결하려는 방법에 철학을 가미했는가 여부로 가치의 높낮이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대화편 내내 하고 있는 건 뭐란 말인가.

소피스트의 설득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이롭게 하기 위한 대화라면, 플라톤의 설득은 은폐된 올바름을 캐내기 위한 대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의 원류는 설득으로서 듣는 사람을 내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동일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거 떠나서 폴로스놈 하는 말 보면 민주주의는 개나 주고 모조리 설득해서 자기 독재하려는 게 최선이라고 보는 것 같아 까야 할 놈이 맞다.


이후 폴로스는 비록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더 수치스러운 행위라 할지라도,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주장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469c

-나는 어느 쪽도 원하지 않을 거네. 하지만 불의를 저지르거나 불의를 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나는 불의를 저지르기보다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쪽을 선택할 거네.


요즘 mcu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유명한 문구로 대응한다.

이걸 보고 변론과 크리톤이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불의가 무엇인지 그때 제대로 논의한 적이 있던가? 변론에서 말한 대로 시간은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소크라테스는 죽고 나서 그 자리를 물려받은 제자를 통해 여러 대화편으로 다시금 살아나 충분한 시간을 만끽하게 된다.



저번 주 <소 히피아스>에서 말했던 '만일 정의가 기술이라면 왜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사용하지 않는가? 그리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474b

-나는 자네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나쁘고 불의의 대가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 처벌받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믿네.-


모든 행동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좋은 것을 목표로 행해진다.

사람들은 목적의 성취에 기여하는, 혹은 기여한다고 믿어지는 한에서만 목적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고자 욕구한다. 그러므로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가 좋은 것에 이를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해서만 그렇게 한다. 만일 그들이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에 대해 필요한 앎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그러한 행위를 피할 것이다.


'좋은 것을 원한다'는 주장을 소크라테스는 방향을 약간 돌려서 '올바르게 행동하기를 원한다'로 바꾼다.

하지만 이때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필수적으로 한 가지를 요구한다.

올바름을 인식하는 것.

우리는 어떻게 올바름을 알 수 있는가? 왜 알 수 있는가?

이런 논의는 또다시 <고르기아스>편에서 마저 이루어지지 않고 훗날로 기약된다.


어쨌든 폴로스가 어버버하고 있을 때 보다 못한 선배가 등장하는데..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주 독회는 고르기아스 마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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