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행복록 보다보면 그런 구절이 있음.

독자적 사고자들은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점이 있다
다른것은 입장이 다른것 뿐이다.

그래서 그 파트 주위에 그런 글도 있음.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여행지를 직접 가지 않아도 그 나라에 대한 지식만으로 그 나라의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아나 평범한 독자, 대부분의 사람은 직접 속속들이 여행을 해봐도 그 편린들을 알 뿐이라고.

그 파트 자체가 다독과 저술 그리고 사유에 관한 파트니 이건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적용됨.
한권의 한 문장에서 자신이 그제껏 사유해 오던걸 기존의 지식과 일치함으로 더 명쾌한 언어로 깨달아 이를 자신의 체계에 편입시킨 말그대로 한 문장의 의미가 여행이 그런 것처럼 백권의 책보다 가치 있을 수 있다.

이 관점으로 보면 행복론속 다시 읽히는게 많을거고 이게 행복론&인생론의 올바른 관점이라 생각함.
저자인 쇼펜하우어는 저서에서 주구장창 독자전으로 사고하는 사람과 그 여집합을 이분법적으로 비교하는데 대다수 독자는 대체 뭘 읽고 또 뭘 읽었길래 해당책이 쉬운 책이라는건지 모르겠음. 쉽고 말고는 저자의 사유의 흐름, 책에 파편전으로 흩어진 지식들을 재진술에 그 지식의 총체에 닿고 난 이후에야 결정하는거 아닌가? 참으로 웃길 따름임.

쇼펜하우어 얘기만 하면 또 쇼펜하우어 개인의 주장일 뿐이다라 할것 같아서.

칸트의 경우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천재는 규칙을 창조하는 이 이며 그런 천재의 작품은 원본성으로서 일반적인 이들에겐 모방의 대상이 되지만 같은 천재에겐 모방의 실례가 아닌 계승의 실례, 즉 하나의 작품에서 같은걸 안보고 다른걸 봐서, 통상적인 사람이 보지 못하는걸 보고 또 그걸 계승의 근거로 삼는다는 데에서 역시 다독은 별 의미가 없다와 맥을 같이 하는거 아닌가?
다독자=모방자가 본 열개의 작품보다 천재=계승자가 본 한 작품의 편린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는게 역시 칸트의 주장이니.

니체야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배워서 정작 중요한건(대개 비판 정신에 해당)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고

장르가 다른 러셀에 와서도
그 수많은 저서에서 아이의 교육은 적게 가르치고 많이 생각하게 하라는걸 강조 하는데, 여기서 적은 지식에서 많은 사유가 나올 수 있다는거 자체가 지식의 양 자체가 사유의 양과는 별개의 것이라는걸 전제로 깔고 가는 말.

성문영미 명문선에는 아예 이런말도 있고.

Hearn, Lafcadio ..  일본에 귀하한 영국 작가
일본 이름으로 고이즈미 야쿠모란 소설가가 한 말인가 본데 누군지 모름.

뭐 송성문이 뽑아놓은 명문선 200여개의 글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되는 글이 한두개가 아니긴 하나 이쯤하고 문제는 쇼펜하우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이들이 책 내에서의 선입견을 거꾸로 해석하는데서 오는 문제 같달까?
보통의 선입견이 뭐임?
내가 하고 있는게 선입견이지. 속속들이 박식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논평질 하고 있는거, 근데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이건 직관에 의한 올바른 개념에 가깝고 통상적으로 선입견이라 여겨지는걸 선입견이라 하는 그 생각이 선입견이라는 말.
쇼펜하우어 말 자체가 사실 다독이 쓸데없는 짓이 아니라 직관이 먼저 선행되고 다독을통해 개념 체계화가 후행돼야 하는 상태서 바른 직관을 통해 얻은 것들은 대개 같고 이는 속속들이 알아서 얻은 정교화된 지식이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찝은 것임에도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바른 인식이라 할 수 있고 자기 직관 형성 없이 기존 지식에서 하향식으로 내려오는 주장을 함에 있거 거침이 많고 또 소극적이면서도 그럼에도 비겁하게 그 소극적임이 세상에서 받아들여지는 개념과 밀접히 연결돼 있음으로 .. 왤캐 쓰는게 빡치냐...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것이 뇌피셜이다 하는게 세상에 적용안될 선입견이다 뭐 그런 소리지.
대체 쇼펜하우어 책을 뭘 읽는 거냐?
물론 그 책에서 이런글 쓰지말라고 한걸 정면에서 거스르는 바보짓을 하고 있는것도 있다만.

일단 뭐.. 생각이란걸 해본적 없으니 지식에 치킨 발라먹고 남은 오돌뼈랑 여타등등처럼 빈약하게 붙어있는 그와 같은 것들을 마냥 그것만이 최선이라 여기는 것이겠지만
독서 갤에서는 좀 다른 소리가 나와야 하는거 아닌가?
몇권 읽어야 돼요. 몇권이 평균. 평균, 장려사항 같은 말 나돌때마다 답답해서 써봄.

개답답. 사실 국내에서 내노라 하는 교수들도 쇼펜하우어가 하지말라 한 학자들 끼리 의견 비교해 그 사이서 소극적으로 자신의 주장 펼치는건 지식 생산이 아니라 한걸 정면으로 어긴다는 데서 뭐 별 기대할 것도 없지만.

결론은 그냥 보고싶은대로 보시면 됨.
쇼펜하우어가 이건 언급 안했지만 개인적으로 스스로 생각하라고 일부러 언급 안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중에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칸트의 말로 알고있고 내가 맹목적인 쪽에 속하긴 하나 쇼펜이 그래도 선입견을 전자의 부재 쪽에 위치시키며.

선입견 외에도 허튼생각, 변덕, 심술, 망상 따위로 서술해 놓고 왜 선입견인지는 설명 하면서 왜 변덕이고 왜 심술인지는 설명않는 이유가.
그래 뭐.. 선입견 자체가 쇼펜하우어적 의미 에서에 직관과 경험에서 오성(칸트)으로 끄집어낸 철저한 개념의 부재가 아닌 통상적 의미에서의 선입견, 철저한 개념-세계관 이해 없이 자의적으로 멋대로 결론 내리는것 역시 선입견이라 말하는데 있어 통상적으론 그게 선입견이라 말 되는 것처럼 그저 관점의 차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쇼펜하우어는 이걸 명확히 직관의 부재쪽에 위치시키고 거기에 변덕 심술 따위를 추가한 이유가 무엇에 책임을 지느냐에 있다고 생각함.

직관으로 고심끝에 만들어진 개념은 후에 그것이 반대측에서 선입견이라 매도 할만큼 엉터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한들 여기에 피드백을 더해 스스로 그것을 가감해 중심 체계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으로 노력을 잊지않고 간직해 나아가는데, 즉 선입견으로 판명나 버린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반면
세상에 대한 수동적 개념 학습으로 더 총체적인 것이나 더 개별적인 것의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해버린 것의 선입견은 백종원에 대해 별 생각없이 찬양하다가 별 생각없이 까는 것처럼(개인적으로 백종원은 까는 방식이 잘못됐다 생각함) 선입견이라 판명나 버린 것에 대해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말그대로 더 명시적인 것으로 박쥐처럼 옮겨가 버리니까. 갠적으로 이게 현대사회 마녀사냥의 원인중 하나라 보고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이를 이르기를 선입견과 동시에 변덕, 심술, 망상.

글 자체가 정리 않고 두서없이 개판으로 쓰긴 했는데 읽던가 말던가. 내가이걸쇼펜하우어처럼쓸수있다면내가쇼펜하우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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