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일상성에 끌려간 소설의 문장은, 이제 다시금 문장체로서 일상성을 부정하고, 구어체를 벗어나…… 새로운 문어체(文語体)를 낳는 것일까. 문어체와 구어체의 문장은 "나니나니 나리키(何々なりき)"가 문어체이고 "나니나니 닷타(何々だった)"가 구어체라는 식으로 간단히 잘라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예를 들어 전후 신인의 문장을 보면, 그 속에는 명백히 새로운 문어체 창조의 발걸음이 엿보이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문장을 지탱해 온 다양한 것들 대신에, 이 사람들은 어디에 관념을 두는 것일까. 외국어 번역 문체가 그 사람들의 새로운 본보기인 것일까.
나는 전후 작가라고 자칭하는 일군의 젊은 작가들의 문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 "젊은 것"의 편이었다. "편이었다"라니 그런 오만한 말은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신기한 생명을 접함으로써 나의 둔한 뿌리를 지탱해 온 듯하다. 그러하기에 나는 언제나 신인 발견의 재능이 있다고 오해받아 왔다. 그러하기에 또한 나는 자신의 문장보다 남의 문장을, 남성적인 문장보다 여성적인 문장을, 어른의 문장보다 아이의 문장을 정성껏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사랑해 온 것이리라. 새로운 것…… 태어나려고 하는 젊디젊은 가능성…… 그것에 닿는 것이 나의 기쁨인 것일까.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하는 무언가가, 새로운 사람들의 문장 속에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의 시도는, 일찍이 우리들이 그러했듯이, 바른 하나의 「말의 전쟁」인 것이다. 우리들의 선인들도 그러했고, 우리들도 그러했다. 그 저서 『서방초지(書方草紙)』의 서문에, 일찍이 요코미츠 리이 씨는,
주로 국어와의 불손하기 짝이 없는 혈전 시대부터, 마르크스주의와의 격투 시대를 거쳐, 국어에 대한 복종 시대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
라고 쓰고 있다. 과연, 요코미츠 씨만큼 「국어와의 불손하기 짝이 없는 혈전」을 치른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무샤노코지 사네아츠 씨도 대담하게 국어와 싸운 한 사람일지도 모르나,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곁에서 보며 요코미츠 씨의 고투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요코미츠 씨는, 「혈전」에서 「복종」으로라고 썼으나, 「복종」의 의미는 결코 「굴복」도 「안주」도 아닌 듯하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하나의 「완성」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국어와의 「혈전」에서 「복종」으로의 길은, 뛰어난 문장을 가진 작가의 숙명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가이 카후 씨도, 사토 하루오 씨도, 이시카와 준 씨, 다케다 린타로, 호리 타츠오 등 여러 씨도 모두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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