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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감상평이라기 보다는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한 글입니다.

유교, 성리학 깊게 공부 안한 사람이 중간 중간 모르는거 제미나이한테 물어보면서 정리한 글이라 틀린 내용 있으면 댓글 남겨주면 감사함미다,,

그리고 키보드에 한자 입력키 설정이 안되어있어서 귀찮아서 한자는 못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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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대학은 사물을 탐구하는 것(격물)이 어떻게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일(평천하)로 확장되는지 서술한 책이다.


여기서 '도'는 길 도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인 동시에 밟아야 할 과정, 방법, 근본 등을 포함하는, 무언가 한 마디로 설명하기엔 애매모호한 글자이다.


굳이 한 줄로 표현하자면 '마땅히 해야할 도리'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찾아보니까 옛날 성인들마다 정의가 조금씩 다르긴하다. 대충 이런 뉘앙스로 따라오면 될 것 이다.)


'마땅히 해야할 도리가 있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라는 철학은 서양의 칸트 주의와 비슷해 보인다.


칸트 또한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그것이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교와 성리학에는 이와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데, 유교는 도덕적 행위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 '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도'를 따라야 하는 것은 주어진 의무가 아니라, 인간의 봉성이 그렇고, 그것을 따르면 즐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공부(격물)을 해야하는 이유가 세상을 평화롭게 해야(평천하)하기 때문, 현대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높은 곳에 올라가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도'를 따라야 하는 이유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법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럼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삼강령

대학은 크게 실천해야 할 3가지 강령(삼강령)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8가지 방법(팔조목)으로 구성된다.


그 중 삼강령을 먼저 소개하겠다.


1.명명덕(밝은 덕을 밝힌다)

명명덕은 내 안에 본래 깃든 밝은 덕을 닦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최초 엮은이인 주희는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덕을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덕을 밝히면 자연스럽게 좋은 행동을 하여,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약용의 경우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혈구지도(도덕의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이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라 하였다.


주희의 입장은 내 마음을 먼저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인 반면, 정약용은 실천에 중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신민(백성을 새롭게 한다)

신민은 내가 밝아진 만큼 다른 사람들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사실 원문은 친민(친할 친 + 백성 민)이다.


하지만 주희는 친할 친(親)을 새로울 신(新)의 오타로 보고 신민으로 번역하였다.


즉 백성을 새롭게 해야 할(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정약용은 원문인 친민 또한 옳다고 볼 수 있으며, 백성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또한 옳은 말이라고 주장하였다.


과거에는 지식인 계층이 따로 존재하며, 지식의 계층이 분명하게 나뉘었기에 배운 사람이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신민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유용했을 수도 있지만, 현대에 와서 대학의 가르침을 실천하기에는 친민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지어지선(지극한 선에 머문다)

지어지선은 위의 모든 과정이 가장 적절하고 완벽한 도리에 머물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선'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임금이 되어서는 인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에 머물며, 자식이 되어서는 효에 머물고, 친구와 사귈 때는 신의에 머문다.'


즉 '선'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상황의 경우의 수는 무한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행동을 나열하며, '이것이 선이다.'라고 알려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행해야하는지가 중용을 지키는 것이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용'에 더 자세히 나와 있기 때문에 패스..


그러면 여기서 위의 '머무른다'의 의미는 무슨 뜻일까?


'머무를 곳을 알고 난 뒤에야 일정한 방향이 있게 되고, 일정한 방향이 있고 난 뒤에야 차분해질 수 있으며, 차분해진 뒤에야 평안해 질 수 있고, 평안해진 뒤에야 사려할 수 있으며, 사려한 뒤에야 성취할 수 있다.'


여기서 '머무른다'의 의미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굳이 '올바른'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가치관이 하늘이 부여한 본성(선한 본성)과 일치해야 되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같이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이 옳다'라는 가치관은 당연히 올바른 가치관이 아니며, 이런 가치관을 가졌다고 해서 머무를 곳을 알게 되었으며 선을 실천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가치관을 단순히 머리만으로 '아 도덕적으로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그치면 머무른다고 표현할 수 없다.


이 가치관을 가진 삶을 직접 경험하고 '이 삶이 내 안식처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이것을 나갔을 때(가치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자연스럽게 내 기분이 안 좋아지며 거북함을 느껴야 비로소 '머무를 곳을 안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올바른 가치고나이 세워지면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방향을 알 수 있고, 그 뒤는 위의 인용구의 말 그대로일 것이다.


이는 '대기업에 입사 해야겠다.', '돈 10억 모아야겠다.'와 같은 목표와는 아예 다른 것이다.


머무른다는 것에는 최종 목표가 없다.


그저 내가 머무르기로 한 곳에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머무르기로 결정한 곳을 빠져나가지만 않으면, 나는 무엇이 되든 상관이 없으며, 무엇이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팔조목

'사물이 탐구된 뒤에 앎에 이르게 된다. 앎에 이른 뒤에 의지가 성실하게 된다. 의지가 성실하게 된 뒤에 마음이 올바르게 된다. 마음이 올바르게 된 뒤에 몸이 닦여진다 ...(생략)'


대학이 말하는 8단계 수양 순서(팔조목)은 다음과 같다.


1.격물 : 사물을 탐구한다.


2.치지 : 앎을 지극히 한다.


3.성의 : 의지를 성실히 한다.


4.정심 : 마음을 올바로 한다.


5.수신 : 몸을 닦는다.


6.제가 :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


7.치국 : 나라를 다스린다.


8.평천하 :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


이는 단계별로 격물 마스터 -> 치지 마스터 -> 성의 마스터 -> ...가 아니라


내가 격물을 3만큼 하면 평천하 스킬트리도 3만큼 올릴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즉 이전의 것을 100% 마스터 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게 아니라, 그저 단계별로 배움이 퍼지는 순서일 뿐이다.


'지행병진 : 앎과 행함은 두 발과 같아서 왼발이 한 걸음 나아가면 오른발도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지행병진의 가르침처럼 '아 나는 아직 3만큼 모르니까 10만큼 알 때 까지 공부만 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3만큼 아는데 내가 이걸로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라는 의미이다.


격물치지

격은 이른다는 것이고, 물은 사물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치지는 지식을 지극히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격물치지는 내 눈 앞에 놓인 사물의 근본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서 그 끝에 이르고, 이를 통해 지식을 지극히 한다는 의미이다.


마치 부모님을 만난다면 단순히 만나는 것을 넘어 '효'의 이치가 무엇인지 끝까지 파고들고, 이를 통해 효에 대한 지식을 지극히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성의', 즉 의지가 성실해 진다고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성의정심에서)


성의정심

의지를 성실히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의지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실하게 물어보고, 그대로 행한다는 의미이며, 이를 통해 '정심', 마음이 올바르게 된다.


격물치지가 성의까지 이어지는 것은 '악취를 싫어하는 것과 같고, 예쁜 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악취를 맡으면 '아 내가 악취를 맡았으니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려야 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 아니다.


예쁜색을 보았을 때도 '아 예쁜 색을 봤으니 좋아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좋아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게 아니다.ㅣ


그저 자연스럽게 그러한 감정과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하게 알게 되면(격물치지) 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내가 의지대로 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정심).


이는 단지 '효', '도덕', '거짓말'과 같이 도덕과 관련된 형이상항적이고 철학적인 대상에 대한 공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격물치지에서의 공부는 사물을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와 이치를 깨닫는 것 또한 포함한다.


예를들어 나무를 볼 때에도 인간은 나무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음에도 나무는 모든 것을 내어주며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도덕과 계절이 변함에도 그자리에 존재하는 생명력을 보고, 물컵을 보면서도 무언가를 담아 남을 이롭게 한다는 쓰임의 이치와, 넘치게 따르면 안된다는 중용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이는 억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격물치지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깨닫거나 점점 알아가게 되면 '성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만물의 이치'는 무엇일까?


유교에서는 이를 '인'이라고 표현한다.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너무나도 왜곡되기 쉽다.


집착도 사랑의 한 형태이니 이것도 '인'일까?

당연히 아니다.


범죄자를 사랑해서 범죄자를 숨겨주고 도망가게 해주는 것도 '인'일까?

당연히 아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태평성대의 시대에서는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 '인'이지만, 전쟁의 시대에서는 백성에게 먹을 것을 베푸는 것이 '인'일 것이다.


이처럼 '인'은 단순히 몇 문장으로 정의하기 힘드며, 시대에 따라서도,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를 과거의 성인들은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해 섣부르게 정의 내리지 않고 온갖 비유와 의미심장한 말들로 점칠해 놓은 것 같다.


언제 어떤 행위를 해야 옳은 것인지, 내가 머무는 자리가 정말 올바른 것인지 스스로 성찰을 통해 꺠달아야 할 것이다.


수신~평천하

이후 내용은 '인'이 나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 대해 담겨있다.


'인'이란 본디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므로,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가정, 나라, 세계까지 퍼지게 될 것이다.


'수신'은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을 통해 얻은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제가'는 이것이 가장 가까운 공동체인 가족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국가(치국)와 세상(평천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히 해야할 것은 이건 어떠한 '지배'나 '통치'와 같은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퍼져나간다는 의미이다.


'인'의 실천과 현실

현실에서 '인'을 실천하다고 해서, 즉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배려한다고 해서 사회적 인정이나 이득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투 당하거나, 손해를 보거나, 뒷담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은 유교에서 '인'을 실천하고 군자가 되려는 이유는 영웅이 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인'을 행하는 것이 내가 행복한 길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교가 요구하는 믿음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변함없는 철칙이 있다. 반드시 충실함과 믿음을 지니고 있으면 군자의 지위를 얻고, 교만 방자하면 군자의 지위를 잃게 된다.'


여기서의 충실의 충(忠)은 心(마음 심)+中(가운데 중)이다.


주자는 '진기위충', 즉 자신을 온전히 다하는 것을 '충'치라 하였다.


내 안의 밝은 덕으로 인을 실천하며, 단 1%의 거짓이나 게으름 없이 내 마음을 다하고 있는지(성의) 물어보는 것이다.


믿음은 '인'이야말로 인간이 머물러야 할 유일하고도 지극한 선이다라는 믿음이다.


이를 정리하자면 '인'을 굳건히 믿으며, 자기 자신을 온전히 다하는 것이 군자가 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내가 무엇이 되는지, 타인에게 무엇으로 비추어 보일지는 그저 '인'의 결과일 뿐이며 목적이 아니다.


'소인은 혼자 있을 때 좋지 못한 일을 하면서도 남을 보면 가리려 하지만, 군자는 홀로 있을 때도 그 마음이 속이지 않도록 삼간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인'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