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가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폭력적인 자들이 그것을 빼앗고 있다.”
왜 문제인지 대번에 짐작이 가겠지만 천국이 침탈당하는 것은 신성이 침탈당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굉장히 곤혹스러운 문장이 아닐 수 없음
그래서 또 이런 찐빠 수습에 역대 최고 전문가로 통하는 아퀴나스 형님은 당연히 이 문장에 대해 언급했고 그 해석도 형님의 그 전문성을 높여준 하나의 사례기도 한데
암튼 아퀴나스는 처음 말한것처럼 βιάζεται를 중간태로 해석해서 천국에 대한 폭력(신성의 부정)이 아니라 신에 대한 열정으로 천국에 대한 열망이 적극적으로 분출되고 있고
그 열망이 천국을 가질 수 있다 또는 가진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데
물론 그 전에도 그렇게 보는 해석이 당연히 없지 않았지만 아퀴나스 형님의 주특기인 아리스토텔레스 소환해서 현학적인 말로 그것이 결국은 질서내의 열정이자
'천국은 정해진자가 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의 뜻에 다가서는 자가 얻는 것이다'라고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고 이론화를 해버린 공로가 있으신거지
흠..
그런데 여기서 이제 현대인 아무개인 나의 관점에서 볼 때 보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시지요
애초에 그런 논쟁적일 수 있는 문장이 왜 쓰여질 수 밖에 없었나?
왜 그런 논쟁적인 문장을 포함한 문서를 선택해서 중요하게 여길 수 밖에 없었나?
일단 이런 질문이 생기는데
이런 질문에 붙을 수 있는 다소 멍청한 시비도 사전차단하는 김에 복음서들에 대한 정보를 상기를 해보자면
저 문장이 적힌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서와 거의 대부분 내용적으로도 일치하고 서술하는 시점이나 화법도 거의 유사한데 마가 그 이후에 쓰여진 복음서라는 거임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것이 요한 복음서고 요한은 서술방식이나 어법에서 확연히 전자들보다도 더 예수에 대한 증언의 성격이 강하고 원 화자인 예수와 가장 가까운 존재에서 비롯된 말임 그리고 요한은 세례자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 요한을 말하는 것임)
그럼 마가의 내용에 저 문장이 필요하다 누군가 느껴서 넣은게 마태인 셈인거임 물론 그것만 다른건 아니다만 그런 관점이 있다는거
그런 걸 염두하고 마태 11:12 를 전후 맥락 속에서 보면
세례자요한에 대한 이야기임
사실 관점이 어쩌고 했지만 어디로 어떻게 보든 결국 오직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일 뿐임
말인즉슨 내가 말한 관점은 왜 마태는 요한을 마가에 없던 저런 이질적인 문장으로 다루는가임
힌트를 좀 더 받자면 저 문장외의 부분에서 마가와 마태가 요한을 어떻게 다르게 대하는가를 보면 될거임
마가에서의 세례자 요한은 말 그대로 예수에게 세례를 준 존재고 비참하게 죽은 대단한 예언자로 끝인데
마태에선 요한과 예수의 접점에서 변화를 줌 요한의 사이트에선 스스로 세례를 주기 주저하면서 예수보다 급이 낮은 걸 인지하고 있는 대사로 서열정리를 함
그리고 예수 쪽 사이트에서도 요한에 대한 코멘트가 저 마태 11:12의 직전에 나오는데
그 역시도 서열정리에 해당함
세례자요한에 대해 예수가 긍정적 평가로 한껏 높여주지만 그렇게 큰 요한이라도 '천국에선 가장 작은 자'라고 규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예수와의 격차를 말하고 있음
그리고 거기에 바로 이어서 저 문제의 11:12의 문장이 나오는 것임
그럼 이 천국에 대한 폭력적인 침탈이라는 것은
저 문장이 지목한대로 세례자요한에 의해서 그의 시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고 세례자 요한의 책임인데 그는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임
요한의 영향력이 불러일으킨 천국에 대한 폭력적인 탐함이 천국을 더럽히고 있지만 그걸 주동한 요한 조차 천국에선 가장 작은 자이니
여기서 말한 천국은 신이 창조하여 특별한 자만 가 천국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천국이라는 개념이자 이데올로기라는 거임
그리고 그 다음 내용이 그런 모든 혼란(요한과 관련된것도 포함한) 은 전부 예언되었던 것이고
요한의 죽음으로 다른 것들처럼 요한의 것들도 전부 다시 신의 계획안에 귀속이 된다는 것이고 요한의 것은 천국에서도 가장 작은 자의 것일 뿐이고
예수 외엔 아무도 신경을 안써도 된다 이 말인 것이지
마가에서 마태로 오면서 바뀐 것들이 말하는 것은
요한의 영향력은 세례로 예수에게 전하고 죽는 걸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했다는 것임
경문이 말하는 것 중에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사랑이나 유대감인 예언자가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고 그 영향력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예언자의 죽음으로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없애고 싶다고 가정하면 꾀할 수 있는 수작 일 수 있고 나에겐 그렇게 읽힌다 이 말이쥐
아이러니하게도 이 구절들의 complex가 의도치 않게 제공해버린 다양성과 개방성이
유대인 외의 사람들이 천국을 갈 수 있는 증표가 되고 요한의 뜻이 성경속에서 짐으로써 현실에선 크게 이긴 셈이 된 거 같긴 하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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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질서로 정리된 것이고 화자가 예수만 남은거 아닐까
또 그건 요한서와도 연결되는 맥락이라고 생각함 요한서에서는 오직 예수로만 수렴되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완성되니까
대충 맞는 거 같음 근데 나는 마태복음이 마태오가 썼는지도 믿을 수 없고 그 복음서에 마태오라는 이름을 단 것에도 의도가 있다고 생각함 그건 좀 다른 얘기지만 암튼 요한의 영향력에 대한 복음서들의 의도와 태도는 그에 대한 진술이 마가랑 마태가 다르고 그 다른 부분을 마태오가 삽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다른가를 생각한거지 ㅇㅇ
그리고 네가 단 댓글이 꽤 날카로운 지적으로 느꼈음 근데 이제 너가 말한 그 맥락은 아퀴나스의 이해와도 같지만 그런 열기가 요한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건 폭력이고 그게 노크와 허락이라는 질서로 정리되는 거지 그리고 아무나 아무렇게나 가는게 아니라 요한서에서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천국에 이른다는 말로 그것들이 연결되면서 요한의 뜻이 모두 예수라는 이름의 질서로 수렴되는 과정ㅇ라는거고
그 영향력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지만 오직 복음서들의 내용으로만 그렇게 이해한 거긴함
근데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유대신전들 다 파괴되고 그런 역사적인 시기 이후기 때문에 어쩌면 요한이란 자가 인기라고 해야할까 꺾인 신학적인 자긍심? 뭐 이런걸 보편적으로 되살린 인물일 수도 있지 원래의 경전에서 사랑이나 유대감같은 가르침만 최우선하고 나머지 경전에 대한 막 복잡한 부분은 다 무시하고 쉽고 간결하게 대중에게 낮은곳에서 다가가서 인기를 얻고 영향력이 커진 사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추측함 근데 그 영향력에 대한건 복음서에서 이미 꺾이고 떨어진 유대교의 입장에서 그 영향력을 활용하면서 내세운 예수한테 그 영향력을 승계하는 부분만 남긴거고 나머지는 이제 기독교의 세상이었으니까 역사적으로도 그 부분말곤 아무것도 안남았을거같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함
https://m.dcinside.com/board/catholicchurch/177820
다른
갤에 쓴 글인데
천주교에서는 이렇게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