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 다시—달리면서—생각한다.
“무라카미 씨처럼 매일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그러다가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같은 말을 때때로 사람들로부터 듣는다. 외국에 있을 때는 별로 듣는 일이 없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건전한 행위이고, 작가라는 사람은 공서양속(公序良俗,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아우르는 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되도록 건전하지 않은 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속세와 결별하고 예술적 가치를 지닌 순수한 뭔가에 더욱 근접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통념 같은 것이 세간에 뿌리 깊게 존재한다. 긴 세월에 걸쳐 그와 같은 예술가=불건전(퇴폐적)이라는 도식이 형성되어 온 것 같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자주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의—좋게 말하면 신화적인—작가가 등장한다.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행동 목표이다. 다시 말하면 불건전한 영혼은 또 건전한 육체를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과 비슷한 의견이네
가라타니를 그렇게 싫어하시던데
마음을 울리는건 정병걸린 작가들 글이지만 정말 깔끔하고 진중한건 건강한 애들꺼더라
본문에 나오네. 퇴폐, 불건전을 배척하진 않는다고. 다만 그 성질을 글로서 표하려면 모순적이지만 건강한 신체가 필요하다고.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에서였나 근대 탐미주의 이전엔 당연히 건전한 정신에 좋은 글이 나온다고 했는데 근대적 ‘전도’에서 탐미주의적 문학관이 나왔다고 비판함。
삶과 인간을 보는 시각이 참 유물론적이고 얄팍한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