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2025년도 끝이다. 우리는 모두 또 한 살 나이를 먹는다. 물론 실상은 생일이 지나야 공식적으로(요컨대 법적으로) 연령이 늘어나는 것이며, 신체의 노화는 그렇게 일관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레고리우스력을 기준으로 했을 때, 특정한 한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기를 맞이한다는 의미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 특정한 한 시기에서 가장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간략하게 10가지만 뽑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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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샤를 드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이 책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으로 처음 철학에 입문한 뒤로,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2025년 1월, 몽테스키외의 책을 읽고 처음으로 정치철학과 법철학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기로 결심했다. 정치철학과 법철학을 향한 관심은 내가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결국 내 절대적인 독서량을 늘리는 데에도 분명히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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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제러미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이 책 역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책 중 하나이다. 2025년 2월,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 벤담의 논증에 진심으로 감명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의 논증은 그야말로 경쟁자 대부분을 단번에 탈락 시켜버리는 듯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나는 여전히 칸트를 제외하면 동시대에서 그보다 엄밀한 철학자는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공리주의를 체계적으로 정초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공리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물론 이는 규칙 공리주의였다. 사실 행위 윤리에는 처음부터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밀의 『공리주의』를 읽었을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공리주의 일반에 관해서는 밀보다 벤담이 엄밀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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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헨리 시즈윅, 『윤리학의 방법』
현대 공리주의는 이 책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벤담, 밀, 스펜서로 대표되는 고전적 공리주의자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공리주의를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대안을 연구한다. 그는 밀은 물론이고 벤담보다도 더 논리적으로 엄격한 경향을 보인다. 이 점에서 공리주의의 가장 강력한 방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게다가 여기서 제시되는 방어 대부분은 지금 그대로 꺼내어 쓰더라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이 책을 통해 공리주의의 비판자들에게 반박하는 방법, 그리고 그들의 견해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2025년 8월에 이 책을 주문했던 일은 지금 떠올려봐도 올해의 유용했던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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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막스 슈티르너, 『유일자와 그의 소유』
솔직히 인상적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는 분명히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와 반대되는 견해를 지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생각이 흥미롭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는 모든 가치를 극단적으로 해체한다. 이를 통해 사실상 우리가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모든 사상을 완전히 소거 시켜버릴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니체보다 훨씬 더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칭호를 받기에 적절하다. 무엇보다 니체는 심리적 상태나 정동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지나치게 강한 데에 비해, 슈티르너는 빈틈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빈틈이 있다면, 이전에 한 단편에서도 거론한 대로 규범성이 없어서 결론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의 의도에 부합하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흥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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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로버트 달,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아마도 그는 그 누구보다 강한 민주주의의 수호자일 것이다. 달은 말 그대로 '민주주의' 자체에 주목한 사람이다. 그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도 인민주의도 아닌, 말 그대로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실제로 달이 밝힌 '최소정의적 민주주의' 개념은 오직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이는 가장 공통적이고 최소적인 요소들만을 담은 것이다. 이는 모든 민주 정체에서 통용되는 전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가장 완전한 저작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매우 상세하게 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강력한 옹호까지 제시한다. 물론 비판자들의 방향보다 민주주의가 더 낫다는 식의 반론이기는 하나, 그것은 그의 민주주의 개념에 매우 잘 부합하는 것이다. 그는 학문 활동의 초반기부터 민주주의를 완벽하다고 보지 않았다. 항상 '결함이 많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조건 하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정체로 인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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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이 책은 슈티르너의 저작과는 정반대로, 논리적으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내용은 충분히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19세기 초중반에 이미 효용가치론 논의를 도입하려고 했다는 점이 매우 기억에 남는다. 물론 그의 개혁안 상당수는 비현실적이거나 상황 고려가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견해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도입되는 전제나 논의들이 현대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상기한 것도 있지만, 그가 이미 200년 전에 환경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보았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동시대의 낭만주의자들과 다르게, 환경 보호의 이유를 인류의 생존과 결부시키며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매우 선구적인 시각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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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로베르트 알렉시, 『기본권이론』
법철학 분야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책이 있었다. 이 책은 그야말로 현대 의무론적 법철학이 어디까지 진보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알렉시는 굉장한 수준의 논증을 갖추고 있으며, 그의 주장에 선뜻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언어철학을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특징 역시 갖추고 있다(물론 법철학에서 이런 경향은 매우 흔하다. 하지만 그는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수준의 활용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를 법철학계의 토마스 스캔론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국내 법학계에도 일정 이상 영향력을 구가한 바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이민열 교수가 쓴 『헌법논증이론』은 알렉시의 영향을 매우 강력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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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리처드 포스너, 『법률의 경제학적 분석』
법경제학을 본격적으로 대두시킨 책으로 유명하다. 기존에 경제학 공부를 어느 정도 해본 바가 있는지라, 이해에 큰 문제는 없었다(무엇보다 주석의 지원을 많이 받기도 했다.) 내 생각에는 원론 수준의 지식만 있다면 충분히 읽어나갈 수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올해 읽은 책 중에는 내 견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지라 선정했다. 특히 효율이나 복리에 대해 정의하고, 이를 계량화 하는 가능성에 관해 논할 때 포스너보다 적합한 학자가 적다고 본다. 포스너의 '지불의사금액' 바탕 추론은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효율성의 정의가 다소 협소해질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보완될 수 있는지는 현시대의 법경제학자들에게도 여전히 주된 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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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X. 이사야 벌린, 『낭만주의의 뿌리』
흔히 자유주의와 다원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인식되는 벌린의 저작이다. 이 책은 막연하기만 하던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 그는 낭만주의의 행태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그것의 정치적인 연결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저작은 (철학과에 재학 중인 한 지인이 그의 에세이에 적은 대로) 철학자로서의 실러를 최초로 부각시켰다는 데에서 도출되는 역사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흔히 실러는 (철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교수 활동까지 했음에도) 철학자로 분류되지 않는 경향이 있었으며, 만약 철학자로서 거론되더라도 칸트의 후계로만 인식되었다. 하지만 벌린은 이러한 추세에서 벗어나, 실러와 낭만주의의 연관성까지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열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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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헬레나 로젠블렛,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이 책은 자유주의의 총체적인 역사를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는 영국에만 국한되는 지역적인 사상이 아니라, 전 유럽을 관통한 하나의 지성사적 현상이었음이 드러난다. 흔히 '자유주의는 서구의 가치일 뿐', '앵글로색슨적 현상'이라는 식으로 폄하되는 자유주의를 이러한 비판에서 구해낸 것이다. 물론 상기한 종류의 비판들 자체가 자연주의의 오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로젠블렛의 작업은 그 이전에 사실의 문제에서부터 그들을 떨쳐냈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은 나 스스로가 가지고 있었던 자유주의에 관한 편견을 박살냄과 동시에, 자유주의의 비판자들에게 던질 만한 다양한 반박의 방법들을 보여주었다. 진심으로 자유주의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