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ed8970b2826af423e88694459c706b0947b9e4304da6d2cec410742783a8079a0050883a446e61ba0f1af0a7f2dc2c559c2c0d

7ee48907b1821c80239cf2e1479c70192ac378226604fcfc7f3f9ebfc0bb0ef5e6b29f44f2aa956670a2630df7b327f5949bcaf3

그간 다사다난했지만 2025년이 어찌저찌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도 올해 동안 개인적으로 많은 일이 있어서 그닥 순탄치 않았던 것 같다. 본론으로 돌아가 지난 1년간 읽었던 책들을 돌아보니 작년보다는 조금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분권을 제외하고 읽은 책 권수는 44권으로 2024년과 비교하면 단순 권수는 늘어났는데, 금년에는 독서에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던 것도 있지만 작년에는 꽤 두툼한 책들을 위주로 읽어서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에 문학 외에도 여러가지 분야의 책을 읽어보기로 다짐했었는데 그 다짐을 지키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올해동안 새로운 작가들의 책도 읽어보며 이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했어서 나름 만족스럽기도 하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양의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 10권을 꼽아봤다. 10권 중에 따로 순위를 매기진 않았고 단순히 읽었던 순서대로 열거해봤고, 여태까지 읽었던 책들에 대한 감상은 이미 월말 결산에 남긴 만큼 각 책에 대한 짤막한 단상 정도만 덧붙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주관이 듬뿍 반영된 만큼 진지하게 책의 질을 따지는 평론이라기 보다는 그냥 내 취향이 이렇구나 정도로만 봐주면 감사하겠다.

1. 한밤의 아이들 (Midnight's Children)

099e8076c4f11983239af2e04e9c701baf01679ff2ef98183b032ce2e93b64273d8c4ce4c8caa40e10c33d60734e173a655ca6e3

먼저 인도계 영국인 소설가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 1947 - )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 한밤의 아이들을 골랐다. 어째 작가 본인보다도 그의 문제작인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로 인한 파트와 선언과 극단주의 무슬림에게 당한 피습사건으로 더 유명한 것 같지만 루슈디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아 영문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힌 인물이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는 데 이 책이 공헌한 바가 꽤 크다고 들어서 저도 작년 연말과 올해 연초 사이에 읽어봤는데 과연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작은 살림 시나이라는 인도 독립의 순간과 동시에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한 남자의 일생과 그의 가족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초능력이 등장하다 보니 이야기 자체가 초자연적이고 허구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식민지 시절부터 독립한 이후 까지의 인도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섞이면서 한 시대를 포괄하는 대작이 되었다. 문장도 인도인이 구사하는 힌글리시가 들어간 구어체와 서구 문학의 리얼리즘 문체를 마술이라도 부린 듯이 아주 교묘히 조합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 일품인 작품이었다.

2. 콜레라 시대의 사랑 (El amor en los tiempos del cólera)

79e48971b1f66bfe23e88194359c701b80a183ac566da31c6857adedeb713fea4f08399f76446f0b584ef7e3be27348a9cf65945

0ee48076bc8b6af123ebf3ec4e9c70184a94951cf1d332bc33cd3b2ae489d388e68627d55ed8885b4e2644d1e3744e7fd69b3522

두번째로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 - 2014)의 장편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골랐다. 내가 같은 작가가 쓴 책인 백년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잔뜩 기대에 부푼 채 이 책을 읽었는데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던 책이었다. 이 책은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라는 두 노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젊었을 때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고이 간직한 채 호호백발 노인이 될 때 다시 이어간다는 퍽 낭만적인 이야기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콜레라에 빗대며 즉흥적일 수 있고 병적이기 까지 할 수 있다는 사랑의 이면도 조명하는 역설적인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본작은 단순한 연애소설에 그치지 않고 서사 곳곳에 암울했던 라틴아메리카의 근현대사의 비극이 은은히 녹아 들어있다. 또 콜롬비아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에 만연했던 가부장제와 엄숙주의에도 도발적인 반기를 드는 다소 파격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문장도 매우 유려하면서도 술술 읽히는 편이고 서사도 흥미진진해서 작품 자체가 순수하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탄한 완성도에 재미까지 갖춘 보기 드문 책이라 누구에게라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3. 주기율표 (Il sistema periodico)

78e9f477bc8b6085239b80e6479c70695e5737bee29b9d21ed6de90e2acb85ff1a3a69fb4fdf045f8f97fb0d7f6bcecccff14a36

세번째로 유대계 혈통의 이탈리아인 화학자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 - 1987)의 회고록 겸 단편소설집인 주기율표를 골랐다. 프리모 레비라는 작가가 내게는 꽤나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책을 좀 읽어본 사람들 입에서 한번씩 오르내리는 이름이어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책을 한 번 시도해봤는데 꽤나 인상깊었던 작품이었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 본인이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과 연관이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짤막한 이야기로 옮겨 놓은 책이다. 본작에는 작가가 유년시절 전해들었던 토리노의 유대인 공동체 이야기와, 학창시절 화학에 흥미를 느끼며 열성적으로 공부하고 실험을 했던 내용도 있고, 첫 직장에서 만난 첫사랑과 애틋하면서도 씁쓸했던 기억도 담겨있고, 일을 하며 짬내서 썼던 단편소설도 있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가 파시즘과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렸던 이탈리아를 살았던 인물이어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도 했고, 빨치산 활동을 하다 나치에게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고난을 겪었던 이야기도 있는데 차분한 톤으로 담담히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임에도 먹먹한 감정이 은은히 묻어났다. 또 작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관리직을 맡았던 독일 과학자와 우연히 접촉하면서 서신을 나눈 내용도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 대목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조망한 책이라서 저에게는 제법 독특한 경험을 안겨준 책이었다.

4. 코 · 초상화 (Нос · Портрет)

7ce48607b68b1af023ea87e0479c706eb43f92d5d8579f0ba57d3756223c40876fd618f85068ad853bb1d66676bddc1b643fd1b9

네번째로 우크라이나이계 러시아인 소설가, 극작가이자 노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추앙받는 니콜라이 고골(Николай Гоголь, 1809 - 1852)의 단편소설집인 코 · 초상화를 골랐다. 내가 재밌게 읽었던 러시아 문학 작품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1821 - 1881)와 미하일 불가코프(Михаил Булгаков, 1891 - 1940)의 소설이었는데 그 두명이 고골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서 그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부터 읽어봤다. 그리고 읽어봤더니 과연 노문학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작가답다는 감상이 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우크라이나 시골 동네에서 페테르부르크로 상경한 작가가 도시 속에서 목격한 속물적인 인물상과 도덕적 타락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두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에 봐서도 고골표 풍자에는 예리함과 해학이 느껴진다. 그리고 매우 사실적인 묘사와 대비되게 환상적인 요소도 많이 가미되어 있어서 실감나는 도시괴담록을 읽는 것 같은 인상도 든다. 급작스러운 서구화를 거치던 제정 러시아의 사회상을 개성있는 방식으로 체험한 것 같아서 정말 좋았던 책이었다.

5. 상호부조론 (Mutual Aid)

7ceb8000c3856c8023e8f3e6429c701e793eb18e5d5fb0fc43504b5d6f3ecab253cb54f01968640bc2bab1784eab2c7c12e923ee

다섯번째로 러시아인 지리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혁명가인 표트르 크로포트킨(Пётр Кропоткин, 1842 - 1921)의 자연 및 사회과학서인 상호부조론을 골랐다. 본래 크로포트킨은 제정 러시아에서는 손꼽히는 귀족 가문의 공작이었지만 불평등과 착취에 얽매인 세상에 환멸을 느껴 부귀영화를 버리고 혁명가의 길을 걸어간 인물이다. 나는 그의 특이한 일생에 흥미를 느껴 그가 쓴 이 책도 읽어봤는데 제게 새로운 사고와 관점을 제공해 준 책이어서 인상깊게 읽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당대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다윈의 진화론과 이에 기반한 적자생존의 원리를 많은 이들이 곡해하여 마치 그간의 인류가 약육강식을 통해 발전해왔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반대로 인류를 비롯한 모든 동물이 서로를 돕는 방식을 통해 종의 생존률을 올리고 번성해왔다고 주장한다. 또 상부상조는 단순히 도덕률에 기반한 시혜에 지나는 게 아니라 매우 합리적인 생존법칙이자 모든 동물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성질이라고 피력한다. 크로포트킨의 냉정하면서도 열성적인 이론에는 점점 연대의 가치를 잊어가고 각자도생이 세상의 진리인 줄 아는 현대인들에게도 적잖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6. 향수 (Das Parfum)

74ec8376b1f31df4239af3ec449c701c115f837f101d7a50d55da4376f1665728ef478fc968672aa4f7e573aeb0f35b0e1fe9bee

여섯번째로 독일인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üskind, 1949 - )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향수를 골랐다. 내가 나름 독문학을 즐겨 읽기도 하고 이 책이 영화화도 될 정도로 유명해서 한 번 읽어봤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여줬던 책이었다. 이 책은 18세기 프랑스에서 태어나 모든 냄새를 맡고 구별해 낼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의 몸에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기이한 천재 장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작중 주인공은 가장 완벽한 향기를 탐하여 지고의 향을 취하고자 살인행각까지 벌이는데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의 스릴러이고 실제로도 이 책을 읽어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재밌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서사의 이면에는 근대 유럽의 사상과 문학양식의 패러디가 숨겨져 있다.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유려한 문체에도 불문학의 사실주의적 묘사와 독문학의 관념적인 성격이 마치 조향을 하듯이 교묘하게 배합하였다. 꽤나 복잡한 구조를 갖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순수문학에 관심이 없을 법한 독자까지 매혹하는 재미를 갖춘 경이로운 작품이었다.

7. 마왕 (Le Roi des Aulnes)

0e9ef307b0841bf3239d8f97469c701f51aa343c7fb6ee625f1ffc664ab41285574c03ac8195bf91dbb91024f7406fae8a89ac64

일곱번째로 프랑스인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 - 2016)의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 마왕을 골랐다. 투르니에가 전후 불문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 명성이 있다보니 어떤 작품부터 읽어볼까 고민하다 로빈슨 크루소를 먼저 읽어봐야 좋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을 제쳐두고 이 책부터 읽어봤다. 이 책은 아벨 티포주라는 차량 정비사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상징으로 점철된 운명과도 같은 행로를 걷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다. 솔직히 본작의 난이도가 좀 높은 편이라서 읽는 게 쉽진 않았다. 그러나 성 크리스토프, 괴테의 마왕, 식인귀 전설과 같이 서양 문화 속에서 드러난 상징을 재해석한 것이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어 어느 정도 지적인 유희를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반복하며 상기시켜주다 보니 이야기의 중심이 탄탄히 잡혀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어렵지만 여러모로 훌륭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었다.

8. 붉은 수수밭 (红高粱家族)

0ee9f17fb6831e8423eaf5e0409c70697b22bb9895c222e7f3c019fe565cdbbd2744647efa582832cbbd2c48bd767e6495a1dfc5

여덟번째로 중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모옌(莫言, 1955 - )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연작소설집 붉은 수수밭을 골랐다. 내가 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개구리(蛙)를 원체 재밌게 읽었던 터라 본작도 큰 기대를 하면서 읽었는데, 개구리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지만 마찬가지로 거장의 솜씨가 느껴지는 명작이었다. 이 책은 중일전쟁이 벌어지던 시절 항일 게릴라를 조직하고 이끌던 위잔아오라는 사나이와 아버지를 따라 종군한 더우관이라는 소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본작이 혼란과 폭력이 난무하던 중국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어 굉장히 잔인한 장면이 여럿 나오지만, 격랑 속에서도 약동하는 중국 민초들의 삶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어 이야기 자체에 생명력이 불어넣어진 듯 하다. 또 앞서 얘기한 두 주인공 이외에도 주변 인물의 사연과 본작의 공간적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산둥성 가오미 현의 풍경까지 시간대를 넘나들며 현묘하게 그려내다 보니 허구의 이야기를 넘어 한 시대를 온전히 재현해 놓은 것만 같았다. 읽기에는 부담이 있었던 수위와 분량을 지닌 작품이었지만 만듬새 하나 만큼은 기가막혔던 작품이었다.

9. 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

7d99f403b4f46af5239df494309c701b402237dea73ffe393625b507e04f16c972b7507774b814926542576e352ef7e34771e2b9

아홉번째로 독일계 스위스인 소설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 - 1962)의 장편소설 황야의 이리를 골랐다. 예전에 같은 작가가 썼던 소설인 데미안(Demian)을 읽어봤는데 미묘한 느낌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다가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 읽어보니 이게 데미안 보다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본작은 하리 할러라고 하는 한 중년 남성의 사상과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용의 소설이다. 주인공은 몰개성하기 짝이 없는 근대 서구 사회에 질색해 자신을 황야의 이리라고 부르며 고립을 자처하지만, 시민적인 관습을 따르고 예의를 갖춘 채 행동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는 우연히 헤르미네라는 중성적인 미녀와 조우하며 겪게 되는 모험을 통해 단순히 시민적인 것과 시민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누기만 헀던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비속해 보이기만 하는 근대 사회와 대중매체를 배척만 하기보다 유익한 가치를 찾고 유머감각을 갗춰 보다 열린 자세로 세상을 마주하는 노력도 하게 된다. 좀 오래 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책이었다.

10. 핏빛 자오선 (Blood Meridian)

7eec8674b5f11aff23e98691429c7069af7fd5561ade8305c0b4c7e83e658f5a436a7792964a6b95324299fc27b4428248963146

마지막으로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 1933 - 2023)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 핏빛 자오선을 골랐다. 이전에 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로드(The Road)라는 소설을 감명깊게 읽었던 적이 있어서 작가에 대해 더 파볼 요량으로 이 책을 골라서 읽어봤는데, 전에 읽었던 책보다 훨씬 강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가출소년이 1840년대 말 미국 남부를 떠돌다 존 글랜턴과 홀든 판사가 이끄는 현상금 사냥꾼 무리에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삭막하지만 밀도 있고 시적인 풍경 묘사가 일품으로, 그야말로 분위기로만 압도하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서부 개척시대 당시 만연했던 폭력과 착취를 가감없이 묘파되어 있고, 홀든 판사라는 매우 지적이지만 도덕률은 개나 준 듯 폭력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를 통해 이성적인 형태로 발현된 극한의 폭력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미국의 어두운 역사는 물론이요 인류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속성이 폭력성이라는 점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읽기는 꽤나 어려웠지만 완성도가 매우 높아 힘들여 읽는 보람이 있었던 책이었다.

이외에도 내가 정말 좋아하지만 목록에는 아쉽게 빠진 책으로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1922 - 2007)의 제5도살장(Slaughterhouse-Five), 이승우(1959 - )의 생의 이면, 빅토르 펠레빈(Виктор Пелевин, 1962 - )의 P세대(Generation «П»),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  1954 - )의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가 있다.

아무쪼록 다들 연말 잘 보내길 바라고 내년에는 원하는 바를 모두 성취하길 기원하겠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