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읽고 싶었지만 여기서 마무리!
내년에는 더 많은 책에 도전해주마
1. 서양고대철학 1 / 강철웅 外 / 길
철학사 개설서로 철학을 배우는 것은 그저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깨달았다
파르메니데스는 사실 운문으로 철학을 했으며, 멜리소스의 주장이 그의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것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우주론과 윤리론까지 나아간다는 것
플라톤은 이데아 찬양론자가 아니며, 실천을 매우 중시했다는 것
플라톤의 '법률'은 '국가'로부터 변화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실천적 측면을 보여준다는 것
내가 시르베크만 읽고 끝냈다면 전혀 알지 못하고 넘어갔을 내용들이 정말 많았다
2.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 아카넷
플라톤 독회에 참여하며 깊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 제3자 위치의 독자에게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었음
그런 점에서 연설의 탈을 쓴,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한 문답법 형식의 '변명'만큼 와닿는 작품이 아직 없었던 듯
지금 읽고 있는 '고르기아스'에서 칼리클레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정치적 문제로 죽을 위기에 처하면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를 것이라 일침을 놓는 장면이 있는데
읽으면서, '변명'에서의 너무나 자신에게 떳떳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계속해 떠올랐다...
3.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 오스카 와일드 / 동인
희곡은 셰익스피어만 읽는 터라 다른 작가의 작품도 좀 읽어봐야겠다 싶어 도전해봤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었음
오스카 와일드 하면 있어 보이는 경구를 많이 만든 사람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그런 면이 이 작품에서도 비록 많이 보이긴 하면서도, 그런 것이 그저 와일드 작품의 표면에만 머무는 평가임을 깨달았다
캐릭터를 구성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 지나가는 조연이라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이 기억에 남는다
와일드는 다른 작품들도 앞으로 열심히 읽어봐야 할 듯
4. 크리톤 / 플라톤 / 아카넷
이쪽은 독회에서 할 말 다 한 것 같으니 패스
5. 이피게니에·스텔라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민음사
삘받아서 읽은 괴테의 덜 유명한 희곡 선집
전반적으로 퀄이 상당히 별로인데, 덜 유명한 이유가 다 있었다...
그나마 읽어볼만 했던 게 초기 희극인 '피장파장'
스텔라는 너무 허술해서 정말이지 실망스러운 작품이었고, 후기작들은 예상대로 노잼이다
6. 심벨린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열림원
이번 달엔 후기 로맨스 작품들을 좀 읽어보았다
전반적으로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가 섞여있다는 것이 특징, 다만 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심벨린은 이 두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이것이 극도로 복잡한 플롯과 얽혀, 굉장히 독특한 작품을 구성해낸다
내용이 워낙 복잡하게 진행되는 터라, 후반부에서는 아예 메타 유머로 써먹는 듯이 보이는 것도 포인트
정말 내용이 희한하게 진행되어서 부조리 유머처럼 느껴지는 와중 갑자기 비극적인 분위기로, 다시 환상적인 분위기로 꺾는 이 필력은 오로지 셰익스피어의 손에서만 가능할 것...
후반부에 형식적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데, 사실 좀 질질 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긴 했다
7. Of Mice and Men / 존 스타인벡
굉장히 정석적으로 구성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반복을 통해 의미를 구성해내는 방식이 아주 뛰어나다
영어 원문으로 읽었는데, 당시 노동자 계층의 말투를 구어체로 그대로 적어낸 것이 마음에 든다
번역으로는 전해질 수 없는 말의 맛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중편보다는 장편으로 풀어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8. 겨울 이야기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열림원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후기 로맨스 작품
'심벨린'과는 달리 이쪽은 초반은 비극이었다가 후반엔 희극으로 꺾는다
비극과 희극 두 파트를 16년이라는 긴 시간으로 나누는 점이 특징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문제극으로도 분류되는데, 솔직히 내가 보기엔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문제극적 요소가 만연하다
다만, 셰익스피어 희극 특유의 무지성 해피 엔딩이 거슬려서, '심벨린'만큼 좋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영화감독 중 장 르누아르의 작품이 굉장히 셰익스피어적이라고 느껴왔는데, 후기 로맨스 작품을 읽으며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다
겨울이야기적 플롯 구조는 '시골에서의 하루', '게임의 규칙' 등에서, 심벨린적 플롯 구조는 '거대한 환상', '황금 마차' 등에서 드러난다
(문제극적 구조는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에서, 셰익스피어 희극적 구조는 '풀밭 위의 오찬'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
9. 말괄량이 길들이기 / 윌리엄 셰익스피어 / 한국외대
후기작만 계속 읽은 것 같아 초기작도 읽어봤다
여성혐오적이라는 낙인이 박혀있는 듯한데, 이 작품을 여성혐오적이라 비난하는 것은, 마치 '베니스의 상인'을 반유대주의적이라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문제극적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에, 이 점을 명심하고 섣부른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이 작품은 특유의 독특한 구조를 온전히 활용해내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그리 높게 쳐주지는 못하겠다
10. 십이야 / 윌리엄 셰익스피어 / 한국외대
'좋으실 대로'에서 선보인 메타적 요소를 극한까지 몰고 간 작품
셰익스피어 작품을 보면 생각보다 퀴어적인 암시가 은은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상당히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아직 못 읽어본 희극도 많긴 하지만, 내년에는 아마 역사극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볼 듯..?
11. 고리오 영감 / 오노레 드 발자크 / 열린책들
가진 것 없는 귀족과 가진 것 없는 부르주아가 파리 허름한 하숙집에서 이리저리 얽히는 내용
초반 묘사만 어찌저찌 넘기면 천재적 순간의 향연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무작정 만들어놓은 듯 보이는 인물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서사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등장인물들을 그저 악당이라고, 인정 없는 고약한 사람들이라고 욕하고 싶으면서도, 이들을 그저 악인으로만 부를 수 없는 것을 누구보다 독자인 우리가 잘 알기에 느낄 수 있는 파토스가 있다
발자크는 '인간극'이라는 거대한 형식을 통해서만 세계를 그릴 수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도구였을 뿐, 그 수많은 작품 중 한 권 속에서도 이미 세계는 구축되어 있었다...
2026년은 책을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보다 더 많이 읽고 싶은 소망이 있지만, 과연 현실이 나를 가만히 둘까?
하지만 뒷걸음질 치지 않는 한 사람의 노력은 헛되지 않는 법, 이번 해에도 모두들 즐독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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