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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글은 익히 알려진 뉴욕 3부작부터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정도 읽어보았고,
이번에 읽은 공중 곡예사 (원제는 미스터 버티고, 즉 현기증 씨라고 해야 좋을지)는 4번째 책이다.
새해 아침이 밝자 남은 소설 말미를 바쁘게 읽어치웠고 곧장 감상을 써보자고 다짐했다.
우선 '공중 곡예사'는 월터 롤리라는 인물을 필두로 그가 10살짜리 도둑 즉, 거렁뱅이 소년 시절부터 - 80살 가까이 된 노인에 이르기까지 소설 하나에 한 인물의 인생 행로가 펼쳐져 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월터 롤리는 어느 날, 자신이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은 예후디 사부에게 납치당하여 그 사람을 통해 하늘을 날게 되는 법을 익히게 되고 (정확히는 지면에서 발이 떨어져 공중에 떠 있게 된 공중 부양 상태) 그를 피해 도망한다.
그러나 이미 폭력과 멸시가 일상이 된 삼촌과 외숙모에게 시달리는 삶의 챗바퀴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기에 월터 롤리는 점차 시련과 체념, 복종을 반복하여 예후디 사부의 서커스단의 핵심 인물, 나중에는 수지 맞는 공중 부양 사업을 통해 사부의 절친한 파트너가 되어 '원더보이' 로 자란다. 세간의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서 끝을 맺지 않는다. 이미 충분한 양으로 서술한 원더보이의 일생이지만, 그 이후 월터 롤리와 사부의 공중부양 사업은 어느 순간 파국을 맞게 되고, 주인공은 다른 인생 행로가 자신에게 닥쳐오는 것을 맞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소설은 그 상황들을 마치 즐거운 듯이 끝없이 전개하고 입을 열어보인다.
미스터 버티고라는 제목은, 월터 롤리가 성공적인 공연을 이어가고 나날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을 때 불현듯 어지러움과 구토를 느끼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때 사부가 붙여준 별명이다.
하늘에 떠 있는 천사처럼 위장하지만 지면으로 돌아올 때는 비틀거림이 심한 주인공의 몸짓, 그게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자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것 자체다.
폴 오스터의 소설의 특징은 '우연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주인공은 인생의 '예상 밖의 일'들을 마주하고 어떤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한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비틀리고 흔들리며 방황을 거듭한다. 수많은 폴 오스터식 잡담과 재치, 빼어난 문장이 작가의 이상을 떠받쳐주고 있다고 느꼈다.
여기서 또 하나의 특징은 폴 오스터는 생전 책의 테마를 '작가와- 글쓰기의 관계'를 염두해두고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중 소년 월트는 폴 오스터 자신으로 보인다. 예후디 사부는 마치 글쓰기의 뮤즈처럼 내비쳐진다.
소년이 공중부양을 거부하며, 그가 없는 먼 곳으로 에둘러 도망해도, 사부는 언제나 그의 곁을 따라다니는 양 갑자기 불쑥 등장한다.
마치 작가가 글쓰기를 멀리해도 그 본령이 작가에게 되돌아오고 심적이고 영적인, 거부할 수 없는 지속적인 부담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점도 많이 흥미로웠다.
어찌되었든 월터 롤리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 자체에 읽는 재미가 탁월하다.
그 공중부양 사업이 요란한 종국을 맞고 그가 어떤 운명에 처해졌는지, 미스터 버티고 씨로써 어떤 상황에서 과연 어떤 기지를 발휘해 가는지, 그리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말년에 접어들어 자기의 방에서 조용히 에세이를 열 세권 적는다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까지.
완독을 하고 나자 가상의 캐릭터지만 마치 진짜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석구석 알게 된 것처럼 여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폴 오스터가 월터 롤리에 흠뻑 젖어있음으로써 독자인 나에게도 전해진 일종의, 이것도 현기증과 환상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폴 오스터의 앞서 내가 읽은 소설들은 하나의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들이고, 그것 역시 재미와 흥미를 갖추지 않은 책이 없지만
이 책은 마치 인생 전체는 바로 이런 식으로 종잡을 수 없이 비틀거리며 흘러가는 것이지 라고 귀띔해주는, 폴 오스터의 생경한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만약, 내가 주인공이 나중에 소회와 독백을 한 것처럼 공중부양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기분도 든다.
바로 내 방에서 나 혼자 볼 요량으로, 땅에서 한 3cm 떨어져 솟아나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은 나 자신을 잊어버릴 때에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고, 말년의 월터 롤리는 말한다. 내 안의 진짜 것들이 표현되는 때는, 도리어 자아를 잃어버리는 때에 무언가 발산하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달의 궁전>, <뉴욕 3부작> 정도만 알고 있었던 작가가 폴 오스터라면, 이 기회에 그런 독붕이들은 미스터 버티고 읽기를 추천해본다.
야호 - dc App
이와 더불어 우연의 음악도 추천. 브루클릭 풍자극도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