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에 문으로 나서는 2대째의 어린 자식들 등은, 필시 야유(野衾, 요괴)의 두려움을 모를 것이리라. 옛날 그의 술집의 토조(土蔵) 옆이었던 관세물(觀世物, 구경거리) 오두막은 자취도 남지 않았고, 동경찰(東警察)이라 불리는 것이 생겨났도다. 한 패가 진을 쳤던 가설 오두막은, 이전에 금붕어를 길렀던 시녀가 살던 집터에, 그 이웃 서쪽으로 두 채 정도의 빈터가 된 곳에 세워졌도다. 작은 연못은 무대 바로 아래가 되었기에, 마치 가련하게도, 흥행이 시작될 때 대병(大瓶) 한 개를 엎어놓고 묻어버렸도다. 이는 북소리가 울리게 하기 위함이라 하노라.
막이 오른 뒤 밀려 나와서, 수많은 구경꾼이 보는 눈이 부끄러워, 시노부(しのぶ), 코이나(小稲)와 함께 광언(狂言)의 무리에 섞여서 무대에 당당히 노래하던 목소리가, 기묘하게 떨리던 것도 여러 날 전의 일이로다. 춤의 어려움, 제례(祭禮)의 기이한 분장을 하고 큰길을 누비던 그것과는 같지 않도다. 기예에 충실하여 기술이 열매를 맺으면, 코치카(小親)가 세상에서 말하는 실력의 품위는 신기가 있어 알게 될 것이니, 아름다운 화문석에 앉아 먹으라고, 남들의 입방아가 없으면 말하리라.
무엇이 괴로울 것인가. 이 모습으로, 이 무대에 서서, 나는 고향의 지인에 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운 마음이 없노라.
그러할지라도 아는 이는 많지 않도다. 골목을 오가는 시정(市人)들도 대저 내가 아는 이들보다 현저히 발길이 뜸해졌도다. 가계(活計)를 꾸리기 바빠서인지, 밤마다 모여드는 손님의 수도 생각해보면 예전보다 적도다.
이야기 속의 긴로쿠(銀六)는, 야마토(大和)를 순회하던 무렵 병들어 죽었도다. 코로쿠(小六)는 늙었도다. 시노부(しのぶ)도 머리를 맺었도다(결혼했도다). 코로쿠는 적당한 여염집 여편네가 되었도다.
그사이에, 몇 해나 비바람이 있었도다. 아침에 서리가 내렸도다. 저녁에 눈이 내렸도다. 세상이 이토록 소란스러웠으니, 흥행 수입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올해 이곳에 왔을 때에도, 코로쿠는 하는 수 없이 남에게 돈을 빌렸도다.
즐거운 환경은 아니었으나, 코치카(小親)는 언제나 즐거워 보였도다. 이쪽도 누님이라 생각하는 여인이요, 저쪽도 누님이라 생각하는 여인이로다.
그러하면서도, 여기에 또 누님이라 생각하게 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그대이로다.
그리운 고향의 하늘 아래, 그리운 것은, 봉우리의 소나무가 왼쪽으로 기울어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이로다. 석조 도리이(鳥居)로다. 백일홍이로다. 모래 속의 금색 세광(細鑛, 금가루)이로다. 처마 밑에 낯익은 거미집이로다. 그러한 상태가 그립기는 하나, 가장 사모하며 그리운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것은, 설(雪)이라 하는 계모의 딸(의붓자식)인 여인이로다.
그의 히로오카(広岡) 누님이로다.
백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누님은 히로오카의 집으로 오라고 말씀하셨도다. 코치카(小親)는 광언(狂言)의 분장실로 오라고 말했도다. 두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고,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은 어느 쪽이었던가. 계모의 적막함이여, 아아 코치카의 따뜻한 숄 아래에, 작은 가슴이 온몸으로 떨리며 안겨 왔도다.
적막함이여, 이별할 때, 얼어붙은 달에 옆얼굴은 하얗고, 사물에 근심 어린 모습에 넋을 잃으셨으니, 해는 저물고, 가냘프게, 바람에도 견디지 못할 듯 보였으나, 잠옷 차림의 얇은 살결에, 때마침 몸을 찌르는 서늘함이로다. 한스럽게도 문에 기대어 멀리 이쪽을 배웅하셨도다. 가련한 불전(佛前)을 떠나지 못하고, 히로오카의 계모에게, 가엽게도 담 너머로 마중 나온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던 날의, 이십 일 지난 저녁 무렵이었도다.
(이즈미 쿄카(泉鏡花) 『테리하 쿄겐(照葉狂言)』의 두 번째 절)
인용문이 아름다워서 좀 가져와봄
- dc official App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