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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트케 작품들이 죄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도 너무 모호해서 무슨 책인지도 잘 모르겠음. (사실 한트케는 '소망 없는 불행' 이후부터인 이런 중후기작들이 더 어려운 것 같음.)
제목은 <돈 후안 자신이 들려주는 돈 후안>이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호색한적인 그런 돈 후안 이야기는 아님. "돈 후안은 유혹자가 아니었다. 그는 여태껏 어떤 여자도 유혹한 적이 없었다. (...) 또한 그 반대로 여자에게 유혹을 당한 적도 없었다. (...) [대신] 그는 하나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다른 종류의 힘이었다."
이야기는 어떤 폐허의 낡은 여관에서 요리사로 혼자 살고 있는 주인공 앞에 돈 후안이 나타나게 되고, 그는 지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여러 여자들을 일주일 동안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만난 일들)을 이야기해준다는 내용임.
특이한 건 지난 화요일 이야기는 이번 화요일에, 지난 토요일 이야기는 이번 토요일에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고, 일주일 전의 오늘에서 하루 전인 오늘로 거꾸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묘사와 디테일은 눈에 띄게 사라지고 결국에는 지역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인데, 이런 구조는 어려움에는 별 상관이 없음.
한트케의 이 책 (그리고 다른 중후기작들)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서사 진행을 위해 일상을 전형적이고 구조적으로 전개하는 방식을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임. 예룰 들면 배달지를 못 찾아서 헤매는 피자 배달원, 바위에 걸려 넘어진 어린아이, 접시를 핥느라 얼굴이 안 보이는 소년, 결혼식장에서 생선가시가 목에 걸렸다가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긴 하객 등등의, (결코 비일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상적이지만 매우 특수한 경험들이 내내 서술되고 있다는 사실인데, 나는 이런 점 때문에 한트케의 소설을 좋아함.
게다가 돈 후안이 만나는 여인들마저 통상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데, 결혼식장의 신부와 눈이 맞지만 단지 그뿐이고 그런 눈맞춤을 통해서 (성적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알아차리게 된다든지, 막무가내로 죽이려 달려드는 여인이라든지 하는 인물들과의 관계는 화자 자신에 의해서도 결코 사랑이라는 말만으로 표현될 수 없다고 강조되고 있음.
또 볼만한 점은 이런 여정이 낙관적인 변화나 눈에 띄는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임. 돈 후안은 가까운 사람을 잃은 슬픔을 내내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새롭게 보게 해주기도 함.
"그러던 중 한 번은 격심한 슬픔으로 돈 후안의 가슴은 거의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로 그 슬픔이 도리아 그에게 힘을 되돌려주었다. 그 슬픔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초월하여 자라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슬픔이 사람을 초인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런 슬픔의 존재가 기적을 일으켰다. 그 컴컴한 폭풍우의 밤에 색깔들이 태어난 것이다."
게다가 돈 후안의 이런 한편으로는 낭만적이고 감성적으로 세심한 면모는 여행이 끝나자 점점 쇠잔해져 가서, 사물들을 바라보고 느끼는 대신 숫자로 헤아리기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그럼에도 돈 후안이 들려준 그의 감성적인 면모야말로 화자에 의해서 (다른 모습들의 돈 후안과는 다른) "단 하나뿐인 진짜 돈 후안"으로서 긍정됨.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봤는데, 아직도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음. 게다가 한트케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고 이 소설은 보통의 책들을 읽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하면 결코 이해할 수 없겠다고 생각함. 남겨진 것은 우리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시간적 일체감, 그러나 언제나 멀어져 가는 시간들과 그럼에도 시간들 속에서 인상들을 보거나 지나쳐가는 사람의 본질적인 삶의 방식이 아닐까 함.
소망없는불행옵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