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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감상문을 써봤음. 학창 시절이랑 다르게 줄거리 위주가 아닌 비평 느낌의 감상을 써보려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어서 여기 한 번 글 올려봄.


조지 오웰의 <1984>는 전체주의를 다룬 근대 문학의 대표작으로, 인간이 권력 앞에서 얼마나 연약해질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오웰이 묘사한 전체주의가 너무나 이상화된 체제, 즉 현실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운 ‘완벽한 억압 구조’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강렬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지만, 그 사회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드래곤을 그려놓고 공포를 강요하는 세계에 가깝다. 현실의 전체주의를 고려하면, 오웰의 설정은 오히려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우선, 작품 속 빅브라더는 실존 여부조차 불분명한 존재다. 그러나 실제 전체주의 사회 - 히틀러의 나치 독일, 스탈린 치하의 소련 - 는 모두 명확한 1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한 체제였다. 그들은 대중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신격화된 이미지를 유지했다. 실체 없는 상징만으로 체제가 유지된다는 설정은 현실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지도층 내부에서는 진실이 공유될 것이며, 최고 결정권자의 부재는 곧 체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오웰은 권력층 내부의 갈등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전체주의 체제의 위기는 대중의 반란보다 지도층 간 권력투쟁에서 비롯되었다. 소련의 트로츠키, 북한의 박헌영 사례처럼, 내부 분열이 체제의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요소가 결여된 채 하급 당원인 윈스턴의 저항만이 중심이 되면서, 그의 패배는 체제의 강고함 때문이라기보다 저항의 위치가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처럼 보인다.


작중 당이 “권력을 위한 권력”만을 추구한다는 점 역시 현실과 거리가 있다. 실제 전체주의는 언제나 경제 성장, 민족주의, 혁명 이념 등 외부 명분을 필요로 했다. 명분은 단순한 선전 수단이 아니라, 통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 장치이기 때문이다. 오웰은 이 복합적 동기를 제거하고 ‘순수한 권력 욕망’만을 남김으로써, 현실의 정치보다 훨씬 단순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앞서 언급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1984>는 전체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무력감과 공포를 최초로 그린 작품으로 후대에 영감을 주었다는 의의가 있다. 실제로 움베르토 에코가쓴 <장미의 이름>은 작중 사회를 유지하는 주된 기틀인 검열을 과거로 옮겨와 이러한 통제가 기술적 발전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 고전적 수단에 의해서도 유지될 수 있음을 보였으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공포 외 쾌락이라는 또다른 전체주의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이들은 과연 전체주의 사회 위협은 근대에 와서야 드러난 것인지, 또한 그 수단은 단지 공포와 억압 뿐인지 등을 탐구하였다. 즉, <1984>가 전체주의 위협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면서 기틀을 닦았다면, 후대 작가들은 배경과 설정 등을 바꾸어가며 전체주의의 위협을 좀 더 설득력있게 표현하고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