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도 내용이지만,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음.



그러나 몇 마디 비판적 반성의 말을 덧붙여야겠다. 나 자신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이 책에서 제시된 가설들의 진실성을 확신하고 있는가를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답변은 나 자신이 그것을 확신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믿으라고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혹은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내가 그것들을 어느정도까지 믿고 있나를 모르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확신의 감정적 요소가 이 문제에 도대체 개입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일에서 이른바 <직관>이라는 것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직관이란 일종의 지적 공정성의 산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궁극적인 문제인 과학과 삶의 큰 문제가 걸려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공명정대하게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들 각자는 그러한 경우에 뿌리 깊은 내적 편견에 지배되고, 그 편견 속으로 우리의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의심스러워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으므로, 우리가 숙고한 결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냉정한 자비심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비판은 반대 의견에 대한 특별한 관용심에 자신을 묶어 두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서둘러서 덧붙여야겠다. 관찰된 사실의 분석에 있어 첫 단계부터 모순되는 이론들은 무자비하게 거절하는 것은 완전히 합법적이다. 동시에 연구자는 자기자신의 이론의 타당성이 잠정적인 것일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변의 불확실성은 생물학으로부터 빌려와야 하는 필요성으로 인해 크게 증대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생물학은 실로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놀라운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을 기대해도 좋다. 우리는 생물학이 앞으로 몇십 년 안에 우리가 제시한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해줄까 상상할 수도 없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가설의 인공적인 구조 전체를 날려 버리는 그런 종류의 것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왜 내가 이러한 사고의 노선에 들어섰는가, 그리고 특히 왜 내가 그것을 일반에게 공표하겠다고 결심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유추, 상호 관련성, 연결성 등과 관련된 얼마의 생각들은 고려해 볼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인내하면서 연구의 새로운 방법과 계기를 기다려야겠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한 때 따라왔던 길이 어떠한 좋은 결말로 인도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그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