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경쟁의 영역이 절대 아니라고 페르낭 브로델이 강조한다.(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경쟁을 심화시킨다고 믿으면서 자본주의가 경쟁 체제라는 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물론 페르낭 브로델이 다루는 이 '자본주의'라는 것은 전근대의 '상업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적합하는 개념일 듯 하기는 하지만, 브로델은 이 상업 자본주의를 역사에서 자주 그렇듯 '연속성'을 부여해서 현대까지 이끌고 해석한다.


책에서는 굉장히 추상적으로 설명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한 후에 형태가 결정적인 국면마다 바뀌었는데, 유럽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도시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중세 후기부터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는 '상업 자본주의'라는 영역이 생겼다.


근데 이 자본주의라는 것은 오늘날 '자본'이라는 의미, 즉 재투자를 통한 끊임없는 부의 증식에서는 같지만, 다른 형태를 보이는데 먼저 생산적 요소에 대한 투자가 아닌 철저히 금융 분야에서의 자본이고, 두 번째로는 철저히 독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상업 자본주의는 대규모 원거리 무역(후추 무역, 비단 무역)을 통해 성장했는데, 이 분야는 철저히 소수 가문이나 상인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상업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음. 즉 여기서 출발한다.


먼저 왜 독점적이여야 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자본의 축적에 대한 질문인데, 소수의 사람만이 참여하여 이익이 소수에게 돌아가기에 자본의 축적이 쉬워진다. 만약 다수에게 돌아간다면 그 다수에게는 자본이 아니라 생업을 위한 돈이 되어버린다. 즉 소수에게 집중되어 그 소수는 재투자를 할 만한 여력이 생겼다는 것(주로 산업 자본주의 이전에는 이자와 작위 구매를 통해 자본이 이동함)


또한 브로델이 기존의 자본주의 도식(상업-산업-수정-..) 이런 도식에 대해서 이런 의견을 남긴다.(아래 글은 3권에서 맨 마지막 결론 부분 중 일부)


"상업 자본주의, 산업 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하는 식으로 단계별 발전 또는 연속적인 도약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런 방식의 파악에서는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연속적인 진보가 이루어지되 '진정한' 자본주의는 생산을 수중에 장악한 이후 시기에서야 가능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 이전 시기에서는 상업자본주의 또는 선자본주의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처럼 예전의 대'상인들'은 결코 전문화를 하는 법이 없었으며 상업, 은행업, 금융업, 증권투자, 산업생산(선대제와 매뉴펙처)등을 차별없이 또는 연속적으로 수행했다. 상업, 산업, 은행업이 부채꼴처럼 연속상에 펼쳐져 있는 것, 즉 여러 형태의 자본주의의 공존은 13세기 피렌체, 17세기의 암스테르담, 18세기 이전의 런던 등지에서 이미 볼 수 있었다. 19세기 초가 되면 기계류의 사용으로 산업이 고수익 영역이 되었고 이 영역에서 자본주의가 대규모로 집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반드시 이 영역에서만 한정되지는 않았다. 영국에서는 면직업의 붐 당시에 엄청나게 높았던 수익률이 경쟁의 심화로 인해 2-3%로 떨어지자, 강철이나 철도 등 다른 산업분야로 자본이 이전했다. 게다가 금융자본주의, 은행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띄었던 증권투기, 대규모 국제무역, 식민지 수취, 국채 등이 되살아났다. 이때에도 역시 전문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또 예컨데 프랑스의 벤델 가문은 철공소 주인, 은행가, 보주 지방에서의 직물업자, 1830년의 알제리 원정대에 대한 군보급어자 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즉,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가 모든 시대에 동시에 공존했고, 독점이라는 기본적인 성질이 있다는 이야기로 할 수 있다. 그러면 브로델이 자본주의가 무조건 독점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또 잘 모르겠다. 근데 독점의 성질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그런 내용이 많음. 경쟁의 영역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기에 요약하면 '경쟁은 짧고 독점은 길다'이렇게 해석이 가능함. 이 책에서 어마하게 많은 내용이 '상인이 광업에도 투자해 지분을 얻고, 투기도 하고, 심지어 생산에도 관여한다.'라는 내용에 할애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빌드업인듯. 즉 자본주의가 형태가 바뀐 게 아니라 이미 존재했고, 바뀌는 국면에 대한 자본주의의 '적응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뒤에서는 또 이런 이야기를 제시하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최상의 체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최악의 체제는 넘어서며, 개인의 재산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도 사회주의체제보다 효율적이고, 개인의 자발성을 옹호한다고 말하고는 한다(이것이야말로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의 영에를 돌리는 것이다!)...... 1920년 케인스는 무조건적으로 "부의 분배에서의 불평등"에 찬성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이것이야말로 경제가 활력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자본의 축적을 확대시키는 최상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 사회는 언제나 부정의하고 계서화되어 있었으며 불평등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최악의 체제를 넘는게 아니라, 이미 최선의 체제이며, 심지어는 뒤에서 추가로 덧붙이면서 앞으로 어떤 체제가 나오더라도 자본주의와 '친형제처럼 닮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현대에 들어와서도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전산업화 시대의 유럽에서 위기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았다. 그것은 소기업, 행복한 시기에 만들어진 취약한 기업, 혹은 반대로 너무 오래되어 낡아빠진 기업을 정리한다. 그러므로 위기는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감시키고 핵심적인 경제활동들을 소수의 수중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서도 전혀 변화가 없다. 국내적인 차원이든 국제적인 차원이든 트럼프 카드를 새롭게 돌리는 현상, 즉 뉴딜이 일어나면 강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뿐이다. ... '위기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핵심이며 인플레이션, 실업 등은 자본주의의 중앙화 및 집중화를 강화한다. 이것은 발전의 새로운 단계의 시작이지, 결코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위기가 아니다.' ..... 앞으로 미래에는 전 세계에 6-7개의 자동차 브랜드만 남게 될 것이다. 오늘날(당시 70년대)에는 9개의 그룹이 전세계 생산 80%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자본주의의 종말이니 하는데 이미 꽤나 과거부터 이에 대한 반박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맞았는데, 위기가 오히려 자본가, 자본주의에게 이익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흑사병'에 대한 생각이었다.(물론 흑사병은 자본가보다는 평민들에게 이익이었기에 주체가 다르지만 '위기'라는 것과 전개가 매우 유사하다.)

이 책의 1권에서 흑사병에 대해 묘사하는데, 흑사병이 오면서 물질 문명의 변화에 대한 것이었다. 흑사병은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그로 인해서 평민들은 죽은 귀족의 땅까지 차지하며 많은 땅을 거느리게 되었고, 기존에서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고 경작지가 이미 대부분 개간되어서 황무지를 개간해야 했다. 즉 수확 체감의 법칙이 냉혹히 적용되어 매우 가난했지만, 흑사병이 한번 쓸고 간 이후에는 기름진 농토만 경작하며 어마어마한 소출을 올렸다. 그 결과 농민들은 읍(burg) 시장에 들려 1주일에 3번은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간단 정리
1. 자본주의는 경쟁의 영역도 있지만 대부분 독점의 영역이다. 또한 기생의 영역이다.
2. 위기가 올때마다 그 독점이 더 강해져서 자본주의가 쇠퇴하는게 아니라 더 강해진다.
3. 애초에 자본이 생길려면 독점의 형태일 수 밖에 없다.(중세든 근대든)
4.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인류의 멸종과 동의어다. 많은 창작물,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세계가 망해도 대체 화폐를 통한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5. 자본주의는 특정 우물에만 머무는게 아니라 모든 우물에 존재한다. 정확히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따라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