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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유는 재산의 축적과 낭비의 순환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고된 노동을 버티며 재산을 쌓지만, 그 축재는 결국 이 세월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극심한 소비의 순간을 위한 것일 뿐이다. 현재는 어디까지나 미래의 낭비를 위한 것일 뿐, 현재의 노동에서 점진적 진보와 같은 목표를 보는 것은 본질을 망각한 것이다. 이런 바타유의 인류학적 주장이 얼마나 실제에 적합한지는 불분명하지만, 인류 사회에서 삶과 죽음을 포함해 온갖 재화의 축적-낭비 순환을 볼 수 있는 건 분명하다. 이것은 도시처럼 밀집된 곳에서 더욱 심각했는데, 역사 속 수많은 도시들은 과밀화된 인구와 자원을 잘 쓰는 만큼 잘 버리지 못했고, 축제나 제전 같은 낭비의 날이 오는 순간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사람과 짐승의 분비물, 망가지고 짓밟힌 음식과 물건, 피어오르는 연기와 잿바람. 도시가 발전할수록 도시에서의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에는 아이러니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충 관계가 있다. 그렇기에 도시의 생존에는 이 낭비를 외부로 잘 쫓아내는 체계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지금도 대체로, 쓰레기의 처리는 이 추방에 의존한다. 혹은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려, 뱉거나 먹어치우거나. <웨이스트 랜드>는 다양한 쓰레기가 어떻게 재활용되거나 매각, 수출, 소각되는지를 심층 보도하며 이것이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되고 있는지, 그러나 그럼에도 어찌나 심각하게 누적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사실 쓰레기에 대한 책을 집으며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 있다. 원인이 분명하고 삐걱거리는 연결고리가 눈에 띄는 문제는 사실 그리 재미가 없다. 그런 문제는 해결 가능하고, 보완 가능하며, 심지어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하다. 그러나 쓰레기 문제는 환경 문제가 으레 그렇듯, 우리가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 문제가 심각해지는, 우리가 서 있는 지반에 맞닿은 문제다. 바타유를 언급하며 시작했듯, 쓰레기의 과잉 생산과 누적은 사실상 모든 인류 사회와 생명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며, 현대 사회는 그저 이것을 너무나 극심하게 많은 양으로 빠르게 가속시키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대량생산 자체가 문제라는 것도 맞긴 하겠지만, 이 문제는 모든 사람 안에 깃들어 있고 따라서 원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밖에 불가능할 테다. 오직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싶은 불쾌한 훼방꾼들만이, 이런 주제를 즐겁게 입에 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쓰레기의 선정성으로 인해 늘 간과되지만 사실 쓰레기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의류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옷을 잔뜩 사고 싶어하고, 실제로 잔뜩 사며,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멀쩡한-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멀쩡하지 않은-옷을 버리거나, '기부'한다. 이 옷들이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에 섰듯, 지금도 노동 착취의 선두에 서 있으며, 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더럽히는 폐기물을 쏟아내며 찍어내는 옷들이, 그대로 그 옆 나라의 사막에 마치 허물처럼 가득 쌓이고 있는 상황을 보고 이것을 '아이러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오스카 와일드를 연상시키는 위악이 필요하다. 건전한 대답은 그것이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살짝 회피하며 다른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일 테고, 아마 그런 사회적인 도덕이야말로 인류 공동체가 늘 소중하게 여기던 도덕일 테다. 그렇지만 잔반을 하인에게 넘겨주는 귀족과 잉여생산되는 의류를 아프리카에 기부로 넘겨주는 시민들 사이에서 그리 큰 차이를 찾을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범속한 악덕, 혹은 실리가 현대를 그저 내가 살고 있기에 더 좋아 보이는 시대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웨이스트>는 이런 비관주의자의 몽상보다는 더 현실적인 책이다. 산업 폐기물 가득한 땅에서 기형아가 나오고 비누 거품이 온 강을 뒤덮는 것과는 별개로, 이 땅은 나름의 기회를 노리는 모험가들의 땅이다. 돈이 되는 일을 찾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이곳으로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폐기물이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쓰레기의 다양성과 그 애매한 사회적 정의 때문에라도, 쓰레기가 버려지고 처리되는 과정에는 고통받는 사람들 뿐 아니라 거기서 수익을 거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웹소설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에는 저주받아 썩어가는 몸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을 찾아간 주인공 일행은 저주를 푸는 것이 그 부패한 몸뚱이의 피조물들을 전부 즉사시키는 것이며, 이것이 단지 도덕적 허영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량학살을 지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점차 눈치챈다. 쓰레기 처리 사업의 문제는 이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해외 수출 쓰레기가 수입국의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과, 수입국 시민의 경제에 미치는...... 총합으로 따졌을 때 여전히 악영향일 어떤 영향에 대해서.



다행히 <웨이스트>는 사람의 영역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다시 비관적인 어조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 쓰레기가 일부 영리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건 알겠다. 그 이외는? 쓰레기의 쓰레기는? 대부분의 쓰레기가 차지하는 이 쓰레기 중 쓰레기는 어떻게 되는가? 철저히 차폐되어 매장된 쓰레기장 바닥에 고이며 서서히 차폐막을 뚫는 끔찍하게 유독한 침출수, 약간의 열 에너지를 보조하고 쓰레기에 따라 오히려 소각용 연료를 더 요구하기도 하며 대기 중에 온실 가스+a를 가득 살포하는 소각장, 극히 일부만이 재활용되며 이 재활용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달은 산업계의 로비로 인해 그나마 재활용 가능한 영역이 잘 확대되지도 않는 허울뿐인 재활용. 도시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 위생 체계가 신설되고 고도화될 수는 있지만, 이 내쫓은 쓰레기가 처리되는 문제에는 여전히 조금도 진전이 없다. 이것이 그저 우리 시대의 새로운 맬서스 트랩일 뿐일까? 제3의 녹색 혁명까지의 시간을 벌어줄 제2의 녹색 혁명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까? 내가 아는 한으로는 기약이 없으며, 그래서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