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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떠오른 말이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확신한 적이 없었다."


이런 질문을 먼저 해야겠다. 《운명》은 증언 문학인가? 수용소 속에서의 생존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것은 하나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용소란 이랬었노라고 그 사실을 낱낱이 일깨워주는 성격의 글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특히 후반부에 붙은 케르테스의 실존적 논설이 일반 홀로코스트 문학과 이 책의 궤를 달리 두게 한다.


케르테스는 수용소에서 귀환된 이후, 한 기자와 마주쳐서 이런 얘기를 듣는다. "네 이야기는 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전체의 이야기란다!" 기자는 케르테스에게 증언으로써 자기 신문사에 수기를 연재해주기를 청하지만 케르테스가 이에 응하지 않는다.(그는 그와 포옹하며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했으나, 제안 자체는 결국 받지 않았다.)


케르테스는 시종일관 이 '전체'에 거리를 두며 '무언가' 자신 자체를 뒤흔들었고 그에 대해서만 자신이 좌지우지되었다는 관점을 거부한다. 심지어 그는 수용소의 행복에 관해 말해야겠다고, 쓰는데, 이것이 그가 운명ㅡ또는 원제인 '운명 없음'에서 발견한 기이한 실존일 터다. 그는 귀송 후 자신에게 남은 감정을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에 대한 증오"


수용소는 그 자체로 수용소였고, 수감자들은 그 자체로 수감자들이었으며, 운명은 그 자체로 운명ㅡ운명 없는 운명이었음을 말하는 극단적인 실존의 표명.


우리에게 증언은 없다. 그것은 오직 우리의 것이며, 그것,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사실만이 있다. 이제 그러면 그것에 관한 우리의 모든 말은 왈가왈부일 것인데, 문제는 왈가왈부를 얼마나 하느냐의 문제는 아닐는지. 라는 왈가왈부야말로, 지금 우리가 봉착한 '쓸 수 있음'의 운명이니, 아마 더 쓸 것은 남아 있으리라 믿어본다. 운명 없이. 없기에.


한 줄 평: 감상적이지도 비참하지도 않은, 독특한 위치의 홀로코스트 문학. 또는 '그냥 수기'


개추


이제 다른 책 읽으려는데 뭐 읽을까

암거나 추천 좀(사실 이거 물어보려고 감상 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