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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잡고 진지하게 리뷰하기엔 기력이 딸려서......
2025년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수상작이다. 작년 한과상은 단편에서 상당한 개편을 보이며 수상작 기조에도 변화를 보였었는데, 장편도 과연 다를까? 라는 의문이 있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한과상 장편은 2022년부터 근 3년간 딱히 기조랄 게 보이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2024년 장편 스파이라는 생각보다 준수한 장편이긴 했다.(분량이 부족해서 삐그덕거리는 부분이 있다고 느끼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어쨌든 2025년 장편인 몸덮세는 뭐랄까...... 잘 썼지만 내 취향은 아닌 작품이었다. 사실 잘 썼다는 것도 이 작품이 목표로 하는 것 중에 하나인 이미지 구축 면에서 잘 썼다고 하는 거고, 동시에 그렇기에 뇌내 그래픽카드가 좋지 못한 나로선 이미지 구축이 주가 되는 소설을 별로 좋게 읽을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의 특징인 이미지 구축을 얘기하기 위해선 전체적인 설정부터 짚고 넘어가자.
몸덮세는 아포칼립스~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고 있다. '움'이라는 미지의 물질이 빗속에 섞여 내리게 되고(이 때문에 비는 초록빛이 된다), 이 비에 맞아 몸에 스며든 움이 일정 비율(절반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해당 유기체는 '증발'해버린다.
처음엔 섬 하나가 증발해버리고, 어느 공연장에서 비에 노출된 관객들이 통째로 증발해버린다.(이 부분은 심사평에서도 호평했듯 미증유의 재난으로서 연출을 잘했다)
이로 인해 전국가적으로 패닉이 일어나게 되고 인류의 상당수가 증발해버리지만, 인류는 끝끝내 답을 찾고 만다. ww2 시절 우생학스러운 일본의 어느 실험으로부터 탄생한 아기가 우연찮게 움에 대한 저항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으면 움에게 면역이 되는 대신 끊임없이 성장하게 된다. 결국 이 유전자 시술을 거침으로써 상류층은 새로운 인류 종인 호모 사피엔스 루쿨렌투스(줄여서 루시)라고 불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루시를 수종드는 사가르(줄여서 르)라는 새로운 꼬마 인종이 나오고, '움'에게 보호받는 돔 바깥의 버려진 기존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또 따로 있게 되는 게 몸덮세 세카이의 기본 골자다.
근데 움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은 이런 신인류의 출현과 종의 분화를 얘기하기 위한 장치로서 작동할 뿐이다. 미증유의 재난으로서 나타나는 건 딱 세계관 빌드업을 한창 하는 초반부 뿐이고, 그 이후 움에 의해 증발되는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뭐, 흐름상으로 따지면 작품은 애당초 움에 대한 어떤 인류의 저항을 그려내려고 했다기보단 움으로 인해 변형된 세계를 담아내고 그 이후의 세계까지 담아내고자 한 듯하지만......
전체 분량의 1/3을 미증유의 재난으로서 움을 다뤄놓고 나머지 2/3에서 움은 분위기 메이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뭔가 뭔가였다. 아, 물론 중간에 사가르랑 움이 결합해서 새로운 중성미자 에너지원을 만드는 설정도 잠깐 나오지만...... 이 부분은 움의 성질이 너무 확 바뀌어서 같은 설정 맞나 싶긴 했다.
작중에서 움의 근원과 움의 정체는 단 한 번도 서술되지 않았는데, 미증유의 재난에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조명 받으니 이러한 전환이 그다지 매끄럽다고 느끼진 못했다.
움에 대한 이미지가 1/3과 나머지 2/3이 서로 다르게 가지듯, 작중 전개 역시 초반 1/3은 철저한 세계관 빌드업 파트고, 본론은 2/3에 모두 집약돼 있다. 루시들로부터 배격 당한 호모 사피엔스 빈민들 사이에서 사이비 교주로 거듭난 '회'와 루시들의 시종이었으나 루시들의 성장 폭주로 자유를 얻게 된 '카'가 이때 나오기 때문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사이비 교주로서 빈민들을 이끌고 지하 세계로 숨어들어가 루시들의 종말을 기다리며 자력구제가 가능한 사회를 구축한 회의 이야기나, 루시들의 밑에서 자라다가 루시 소년 '아난'과 로맨스 이야기가 극후반부에 서로 엮이게 되고 작중에서 계속 반복되는 파괴-창조의 테마가 이들의 이야기에서도 다시 반복된다.
이 모든 전개들 사이사이엔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있다. 회의 이야기에선 빈민들의 모습과 돼지 우리의 모습, 심지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성기가 이마에 달린 인면돼지를 서술하질 않나(난 솔직히 이런 설정과 장면을 삽입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끼워맞추라면 맞추겠는데...), 루시 가족들의 관광 안내 하면서 빈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도 있고,
카의 이야기에선 이미지가 더 많이 제시된다. 사가르로서 루시와 살아가는 모습부터 루시들의 축제에 아난과의 만남에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가르에 사가르와 움이 결합해 새로운 에너지원이 나오는 걸 시연하는 모습에 각종 공연에 루시들의 성장이 폭주하는 모습에 카가 아난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주한 모든 것들까지......
이미지의 폭주라고 불러도 될 만큼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엄청나게 공을 들여 묘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작가 본인이 자기 세계를 내적으로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게 와 닿았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루시들이 지나치게 커져서 더는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거듭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게 설득력을 지니는가는 별개로 이미지로서 충격을 줬으니 유효하단 느낌이랄까.
끝의 끝까지 가서야 움의 역할이 다시 조명 받아 '카'를 증발시키고 증발된 '카'의 의식은 전 우주에 섞여 새로운...... 뭐 대충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마지막 장면 같은 이미지로 연상은 했지만, 난해하긴 해도 자기 세계를 끝까지 확장시키려고 했단 점에선 삼체 3권에 대한 나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호평할 만했다. 이 역시 그게 설득력을 지니고 독자에게 와 닿았는가는 별개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미지의 폭주라고 불러도 될 이 소설에 가지는 불만 중 하나는 회와 카란 주요 인물들에 대한 구축이었다. 회는 루시들이 살던 돔에서 쫓겨났단 언급만 있고 사이비 교주 밑 돼지치기로 살다가 교주를 죽이고 본인이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하면서 새로운 교리를 전파하고 빈민들을 이끌어 움이 닿지 않는 지하세계에 정착하게 되는데......
회가 반항적이고 반루시적인 사상을 가진 것과 별개로 얘가 갑자기 교주로 거듭나면서 다 깨달은 현자 행세를 하는 데다가 나중에 가선 카와 논쟁하며 산파술로 카의 모순을 지적하고 설득하고야 마는데...... 뭐랄까...... 되게 편의주의적으로 인물이 각성하고 변화한 게 아닌지? 인물의 변화폭이 너무 커서 와 닿지 않았다.
카는 더 심하다. 얘는 루시들의 성장 폭주 당시 열심히 탈출하려다가 예언 능력이 있다는 사가르 소녀에게서 능력을 전수받는데...... 진짜 농담 안 하고 그냥 판타지처럼 사가르 소녀가 뾰로롱 하니 뾰로롱 하고 카가 물려받는다. 근데 그런 능력 부여받고도 회한테 말빨 안 돼서 털린 것도 뭔가 그럼... 애당초 움에 대한 설정도 그렇고 과학적인 척만 하는 아이디어 전개형 소설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카'의 성장 파트만큼은 여태 보였던 '척'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읽기 곤란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사실 이미지에 더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둘을 비롯한 인물들의 심리가 지나치게 불투명한 면도 있다. 인물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기엔 또 메인 스토리는 카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전체 세계의 파괴-창조의 순환을 그려내는 거라......
사실 이미지를 좀 매끄럽게 받아들이거나 상상할 수 있었으면 나처럼 혼란을 느끼거나 불투명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나야 몸덮세가 제시하는 이미지들이 너무 과하고 많다고 느꼈다만, 그게 아닌 사람도 있을 테니까.
어떻게 보면 몸덮세를 이루는 조각들이 그렇게 매끄럽게 다듬어진 편도 아니고, 난해함을 넘어서 이게 맞나? 싶은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조립된 몸덮세는 작가 본인이 구축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인상이다.
그게 내 취향이 아니었을 뿐. 그러니 잘 썼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2024년 장편 수상작인 스파이라랑 비교하면? 나는 취향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스파이라가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스파이라 손을 들 것이다. 스파이라의 단점은 전개 과정이 매끄럽지 않고 틱틱 끊긴다는 점과 악역 조형이 다소 클리셰적인(평면적인) 지점이 문제지, 나머지는 괜찮았는데, 몸덮세는 일단 이미지의 파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호불호를 가를 것 같단 느낌이다.
아, 제목은 몸덮세가 좀 더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몸으로 덮인 세계'라는 제목이 처음엔 잘 와 닿지 않았었는데, 후반부에 정말로 '몸으로 덮인 세계'가 만들어질 때엔 작가의 이미지 구축 능력 하나만큼은 정말 좋다고 느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의 미래부 번역중이라던데 거기 초반에 몸에 덮힌 세계 나온다. 진짜 존나 강력하게 묘사함. 나오면 꼭 봐라. 스탠리 로빈슨이 최적화(?)를 잘해놔서 머리 그래픽 카드가 후져도 (내가 그럼) 저사양에도 독서 잘 됨.
오 알아두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