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중에서도 최민순과 한형곤, 김운찬의 번역본이 무난한 편에 속한다. 8개 국어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 있는 최민순은 본인이 수필가이 자 시인이기도 했기에 아름다운 우리말 용어들과 함께 사제로서의 가톨릭 용어를 정확히 사용하며 시인 번역자의 모습이 돋보인다.
한형곤 역 은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겼을 뿐만 아니라, 자세하고 풍부한 해설과 역주를 자랑하며 단테의 저승 구조를 보여주는 도해와 그림들까지 제공 한다.
둘 다 비교적 원본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이따금 가독성이 떨어지 는 표현들이 눈에 띄는 것이 흠이다.
반면 한형곤의 번역으로부터 약 30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김운찬의 번역은 가독성 면에서 앞의 두 번역서에 비하여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하다.
훨씬 꼼꼼한 이탈리아어 원본 번역과 여러편의 영역본을 참고한 번역으로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기에 좋은 가독성을 보여준다.
다만 원본의 자구에 충실하면서 가독성에 중 점을 두다 보니 시의 형식적 매력이 많이 훼손되고 시어의 긴장감이 희생되어 시가 주는 울림이 크지 못한 점이 아쉽다
(중략)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여러 번역본에서 공통적인 실수나 오류가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전의 번역본이 이후의 번역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신곡』의 경우 그런 경향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지적하자면 「지옥편」 21-22곡의 에피소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뜨겁 게 끓어오르는 역청(瀝靑) 속에서 삶아지는 탐관오리들이 수면 위로 떠 오르려 하면 강둑에 있는 악마들이 고통을 가하며 떠오르지 못하게 저 지한다. 그런 악마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도구를 단테는 raffio(XXI 52, 100; XXII 147) uncino(XXI 57, 73, 86; XXII 69, 149; XXIII 141), runciglio (XXI 71; XXII 35, 71) 등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하는데, 모두 ‘갈고리’ 또는 ‘갈고랑쇠’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본들은 거의 대부분 ‘(쇠)갈퀴’나 ‘작살’로 번역하고 있다
출처: 이상엽. (2024). 단테의 『신곡』 번역의 문제. 이탈리아어문학, 72, 99–125. 이상엽 한국외대 이탈리아어통번역학과 교수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111333
단테의 『신곡』 번역의 문제
www.kci.go.kr
요약:
1. 최민순(가톨릭 출판사), 한형곤(서해문집), 김운찬(열린책들)이 좋음
2. 최민순 역은 우리말 아름답게 잘쓰고 시적임, 한형곤 역이 주석 상세함, 김운찬 역이 가독성 좋은데 원문의 맛이 떨어지는 편
3. 공통적으로 틀린 번역을 모든 판본에서 똑같이 틀린 부분이 있음.
저 3개 중에 취향껏 고르면 될듯
가톨릭출판사가 제일 낫네
공통 실수라고 하는 부분에서 최민순 역은 다 구분해서 쓰고 있지 않나? 기억이 안 나네.
최민순의 번역본은 ‘작살’(XXI 52, 71, 73), ‘갈쿠리’(XXI 86, 100), ‘쇠 갈퀴’(XXII 69, 71) 그리고 ‘곱장칼’(XXI 57, ‘곱창칼’의 사투리이거나 오기로 보임)로 옮기고 있으며 어쨌든 이 세 용어는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 라고함
근데 논문보니까 이거 최민순역을 가톨릭출판사 현버전이 아니라 다른 구판본 보는거 같음
느낌 살리려면 최민순역 보는게 나을라나 - dc App
최민순역이 가톨릭출판사 오면서 원래 을유 때 옛말 쓴거 고치긴 했는데, 문체가 작품 분위기에 맞게 고풍스러운게 마음에 들었음
실수라고 지목하는 부분이 책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인가? 이건 뭐 긴 글에 고작 맞춤법 지적하는 느낌인데.
하지만 가장 최근의 완역판인 김운찬은 이들 모두를 ‘갈고리’로 통일하고 있다. ... 이러한 어휘 선택은 김운찬 번역본의 최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가 독성을 높이는 번역어의 통일성은 자칫 의외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갈고리’와 ‘갈퀴’, ‘작살’의 차이는 사소한 것이며 전체적인 흐름에 중 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단테가 원 본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표현이 담고 있는 의도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의미만 중요한 것이 아닌 시의 특징과 서양 글쓰 기 문화가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별 안중요한거 트집잡는거 같긴한데, 김운찬 역이 세개 구분안하고 통일해서 갈고리로 쓴거 지적하려고 나온 얘기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