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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글을 읽다보니 별 남는 것도 없고 감상할 시간도 없어서 함 써봤습니다.
마침 글 솜씨가 똥이라 도움도 될 것 같고 해서...
인생 주기 중 靑年
젊은 날의 초상 – 이문열
‘초상’은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이라는 뜻도 있지만 ‘사람이 죽어서 장사 지낼 때까지의 일.’이라는 뜻도 있다. 이 작품은 늙은 주인공이 젊은 자신을 떠올리는 모습인지 <젊은 날>이 끝나는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첫 시작부터가 의도적이다. 학교도 다니지 않은 채 방황하다 정신을 차리고 형에게 온 주인공은 이 책이 끝날 때까지 그 전의 방황에 대해 자세히 알0리지 않는다. 마침 나이도 20살. 대학 입학 후 같이 야자를 째고 공부라곤 전혀 안했던 친구들이 대학 가서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학점을 잘 따오는 모습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다(난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방황을 더 심하게 했을 뿐). 그렇게 한참을 공부에 빠져 지내다가 장티푸스에 걸린 ‘나’는 시대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모래장사에 부는 변화의 바람부터 시작해서 별장집과 서동호의 엇갈린 가족관계는 나에게 의문을 남겼다. 왜 하필이면 이런 환경일까?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정신을 차리면 주인공의 대학합격처럼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단 걸까? 이것보단 이 세상 모두가 각자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그것을 참고 있다는 설명이 더 와닿는다. 아무튼 ‘나’는 형의 모래 장사의 몰락과 함께 대학을 합격하고 환경 대신 자신 스스로의 방황을 겪는다.
‘방황’은 순전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언어다. 이 책에서는 방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내 젊은 날(현재 내가 23살이니 20-21살)은 말 그대로 방황에 생산성 없는 후회되는 기간이라 그런지 ‘젊은 날’이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뭐, 주인공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정보-정확히는 지식-의 홍수를 맞딱트린 20대는 하찮기 그지없다. 지 나름엔 책 좀 읽어보겠다고 도서관을 돌아다니는 꼴이란. 난 주인공보다도 못했다. 1년간 빌린 책이 아마 20권은 될 거다. 그중에 완독은 0권. 도서관에서 사귄 친구도 없다. 오히려 다행인 걸까? 김형과 하가와 친해진 ‘나’는 문학회까지 가입하면서 학문적 소양을 기른다. 정확히는 기르는 척일 것이다. 문학회에서 다른 회원들을 농락한답시고 활동을 거짓으로 하는 데 재미를 들였으니 말이다. 결국 문학회에서 쫓겨나고 김형을 포함한 문학회 회원들에게 모욕도 당하게 되는 결과는 ‘나’가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결과일까?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해 겨울> 중에서 <우리 기쁜 젊은 날>은 독자까지도 기쁘게 했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술 이야기는 내 오랜 기억을, 아마 대학생을 겪어본 모든 독자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없이 웃고 넘어가는 부분은 아니다. 중반에 나오는 해 따는 순례자는 해를 따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한다. 속아도 보고 틀려도 보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처음 해를 따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던 나무 앞에서 죽는다. 그러고서 해가 된다. 무슨 뜻일까. 아마 이것은 <그해 겨울>에 나오는 먼 친척 누이의 ‘절망의 힘’과 연결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진심으로 절망하지 않아서이다.’ 순례자는 죽고 나서야 해를 딸 수 있게 되었다. 해를 딴다는 이야기는 ‘나’의 그 시절 연인에게 해준 말이었는데, 이는 헤어진 후에서야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이런식으로 언제나 기쁠 수는 없는 일. 김형의 죽음과 함께 ‘우리 기쁜 젊은 날’은 끝이 나고 ‘나’는 절망의 동굴로 이동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확률이 높다. 아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빠져나오려는 듯, ‘나’는 술집에서, 그리고 여관에서 잡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문득 바닷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바다를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이 여정에서 기억나는 인물은 3명이다. 폐병 환자와 복수의 칼날을 가는 노인, 먼 누이. 먼 누이는 절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절망의 끝에 다다렀었던 것 같다. 교단에서 교수로서 수업도 한다고 한다. 폐병 환자, 이 인물의 의미는 겸손인가 무의미인가? 나름 지난 시절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주장하는 ‘나’보다 높은 층위의 지적 수준을 보여준 남자. ‘나’가 그를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무모한 해석들을 내뱉다가 모욕을 당한 걸 보면 ‘겸손’을 의미하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이 <그해 겨울>은 젊은 날의 ‘초상’ 중에서도 장사 지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지난 날의 시간들은 무의미하니 매몰비용으로 여겨서 새로운 여정을 떠나보자는 얘기일 수도 있다. 복수의 칼날을 가는 노인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배신자를 찾아 복수를 할 수 있었던 직전 포기한다. 이미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배신자를 죽이기보다는 그 삶을 계속 살게 하는 것이 더 복수에 걸맞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외적’이유이니 진실된 이유를 생각해보자. 단순히 생명을, 또는 한 가장을 죽이기 싫어서 포기했을까? 이 책은 생명이나 가족의 의미를 다루는 책은 아니다. 초장부터 어쩔 수 없이 동생을 받아주는 형과 문어발 가족으로 시작하는데, 일관적이지 않은 해석이다. 복수의 중반과 끝에 만나는 ‘나’는 이 노인과 바닷가에서 재회하고 다음날 상행선 기차를 타고 복귀한다. 아마 삶의 정상궤도로 복귀 또는 ‘이젠 안 젊은 날’로의 진입일 거다. 젊은 날을 청산한다는 뜻이다. 아! 노인은 더 이상의 복수를 원하지 않아서 자신의 복수를 포기한 것이 아닐까? 앞에 말했던 주장대로 자신의 포기도 정당화할 수도 있으니 그 기회에 자기가 복수를 하게 될 경우 새로 만들어질 배신자의 자식들의 복수를 없앤 것이 아닐까? 노인도 수십 년간 이어온 ‘복수의 날’을 청산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젊은 날은 기쁘다. 두 번째 장 제목도 <우리 ‘기쁜’ 젊은 날>이지 않은가.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나’의 가장 친한 두 명 중 한 명인 김형의 죽음처럼 나의 젊은 날도 언젠간 끝난다. 그 날을 굳이 대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저 나의 힘으로 젊은 날 이후의 삶도 잘 보낼 수 있다는 것만 알아둬도 이 책의 작가는 흡족해할 것 같다.
좋은 감상입니다. 읽지는 않았습니다. 개추는 눌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