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메넥세노스의 요청으로 본인이 이전에 '아스파시아'님에게 들었다는 연설을 들려주고 있다.
메넥세노스는 딱히 할 말이 없다. 해석도 내 개인적인 관심분야는 아니거니와 지금까지 읽은 변론 크리톤 이온 히피아스 고르기아스에서 했던 논의가 반복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암학당 작품 안내에 소개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이다.
1.메넥세노스는 그 자체로 연설 기술에 대한 패러디이다.
2.메넥세노스는 페리클레스의 정치철학적 입장에 대한 안티테제이다. (페리클레스 추도사는 정암학당에 부록으로 들어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입장은 박종현 역도 마찬가지다.
어쨌건 연설술에 대한 풍자와 페리클레스의 지혜를 모르는 정치에 대한 비판의 의미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246d에서 이루어진 부친 이야기는 좀 더 플라톤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246e ~ 247a(박종현 역)
-올바름과 그 밖의 사람으로서의 훌륭함과 떨어진 상태의 모든 지식은 못된 짓이지 지혜로 보이진 않아.-
248c(정암학당 역)
-우리들의 최후는 이미 인간에게 생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누리는 것이므로, 그 최후를 슬퍼하기보다는 예찬하는 것이 더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메넥세노스가 나온 근원적인 것도 전쟁이니 잠깐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아래는 긴 인용문. 말이 인용이지 책의 일부를 그대로 가져와본다.
소은 박홍규 전집 <형이상학 강의 2> 173p~
-내 체험을 좀 얘기 해야겠는데, 왜냐하면 나는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까.
플라톤 철학을 우리가 하나하나 느끼면서 읽어야 돼.
논리적 공간에서 추상적으로 읽으면 안 돼.
내가 그 속에 들어가서 공감하면서 느끼면서 읽어야 이해가 된다는 말이야.
그 느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서론 격으로 내 체험을 얘기하는 거야.
나는 맨 전쟁 시대에 살았지만, 전쟁에서 내가 가장 화를 많이 입은 것은 태평양 전쟁이야.
하와이 진주만 공격 때, 나는 동경에 있는 대학에 있었단 말이야. 진주만 공격을 하니까 어떤 사태가 났느냐 하면 당장에 달걀도 없어져. 설탕도 없어져. 과자도 없어져. 소고기도 없어져. 다 없어져 버려. 거리에서.
왜 그럴까?
우리나라하고 똑같이 일본도 사료를 미국에서 가져와. 태평양 건너 바다에서. 그런데 전쟁이 났으니 어떻게 사료가 오느냐 말이야. 당연한 얘기지. 전쟁통에 닭도 죽고, 소도 죽고, 돼지도 죽고, 다 죽었다는 얘기야. 요는. 그럴 것 아냐? 우유도 안 오고 계란도 없어 설탕이 어디서 와? 남쪽에서 오잖아 그런데 남쪽에서 어떻게 와.
버스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택시도 없었어. 기차 타고 여행했어. 그 기름이 남쪽에서 오는데, 조금밖에 없는 기름은 군수 공장에다 넣어야지. 쓸 수가 없잖아. 돈은 돌아. 그러나 모든게 통제가 되어버려. 먹을 것도 동회에서 다 통제한다고. 쌀이고 뭣이고 배급 제도로 나가. 돈을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살 것이 없어. 설탕 하나 파는 데가 없어. 여행도 못해. 못 가게 해. 어디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데 사적인 여행은 차표를 못 끊어.
공적인 증명서가 있어야 돼. 출장을 간다든지, 취직을 했다든지 그런 증명서가 나와야 기차표를 팔아.
배급이란 것은 평균치야 어떤 사람은 많이 먹고 어떤 사람은 적게 먹는데 그리고 영양가가 없는 걸 배급해 주거든.
항상 배가 고프지. 무슨 놈의 취직이야. 노동밖에 할 일이 없어. 어떤 사람이 저녁에 어디를 가라고 소개를 해주더라고. 어디론가 가보니까 군수 공장인데 산소통이 하늘같이 있어. 그걸 일일이 목로. 네 사람이 메고 가는 목로로 메고 옮겨야 돼. 그 작업을 했어 하루 저녁 내내. 그러고는 아침에 나와요.
아침에는 공장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산더미같이 나온다고. 코피가 막 줄줄 훌러. 그래서 나는 못하겠다고 그랬어. 조금 있다가 공장이 폭격을 맞았어.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며칠만 더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 행방불명이 됐을 거야. 우리 집에서는 내가 공장에 가서 일하는 줄도 몰랐거든. 아무도 몰랐거든. 그럴 거야 뼈도 못 찾았을 거란 말이야.
저녁에는 비행기가 폭격을 해. 소이탄을 던져. 이천 개고 삼천 개고 막 뿌리고 다녀. 그래서 소등을 하고 가만히 있으면 라디오로 말을 해줘. 후지산이라는 데가 있어 거기서 동경으로 꺾어져. <후지산까지 15분, 동경은 20분, 자 후지산까지 왔습니다. 이제 동경 왔습니다.> 그래. 나가 보면 하늘에서 비행기가 막 곡예를 하면서 놀아. 그래 가지고 막 뿌려. 일본 집은 목조로 된 2층 건물이야.
불이 10분이면 한 층을 다 태워버려. 일본 사람들은 집이 불에 탄다고 하지 않고 불이 집을 핥는다고 해. 핥고 가. 거기서 못 빠져나오면 죽는 것이지. 내가 있는 집은 네거리의 모퉁이에 있었는데, 용케도 그 블록만 빼고 그 주위는 다 타버렸어.
그리고 또 동경이 다 타버렸어. 아무것도 없어. 동경 인구가 천만명인데 동경은 평지야 대판도 그렇고. 서울은 산이 있잖아. 폭격을 맞으면 이재민들은 다 어디로 갈 거야?
시골로도 가고 하는데 못 간 사람들은 방공호를 팠어. 깊이가 한 1미터 반 정도, 길이가 2미터 폭이 한 1미터 그 속에서 살아.
그 속에 옷이 있나 변소가 있나. 갈아입을 셔츠가 있나. 몸만 빠져나왔거든. 일본은 비가 자주 오는데 비가 오면 질질 흐르지. 거지 생활이지.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지. 저녁에는 어떻게 자? 거기 발 뻗을 데도 없거든.
비 오고 화장실도 없고, 밖에다 놓고 배급 준 거 가지고 끓여 먹고 사는 거라. 내가 어떻게 거기서 살아남았는지 불가사의야.
한국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전쟁 중이라 못 나와. 그래도 동경 역을 한번 가보자 싶어서 폭격 맞은 이튿날 동경 역을 갔다고. 한 십 킬로는 되는데 도중에 보니까 전부 잿더미라.
전에는 거기에 집도 있고, 학교도 있고, 절도 있고, 교회도 있고, 아름다운 저택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어. 나 이런 얘기 하는데 이유가 있어. 길가에는 사람이 타고, 타고, 타서 말이야. 골진 시체가 굴러다녀. 숯이 타면 골이 지지. 남잔지 여잔지도 몰라. 동경 역을 가보니까 거기도 폭격을 맞았는데 소제를 하고 있어. 쓸고 있어요. 햐~
그런데 나는 여기 와서 6.25때 또 전쟁을 당했어. 6.25 전쟁은 저쪽 전쟁하고 또 다르지. 내가 직접 대상자니까. 일요일 아침에 군인들이 메가폰으로 뭐라고 막 소리치면서 돌고 다니더라고.
나는 돈암동에 살았는데 그게 미아리에서 의정부로 넘어가는 길목이야. 딱 길목인데 인민군이 막 들어오니까 어떻게 됐냐면, 인심이 완전히 바뀌어 버려.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어린애들이 김일성 노래 부르고 다녀. 그전에는 이승만 노래 부르더니. 청년들은 빨간 천으로 완장을 차고 총 들고 길가에 섰어.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려. 광기에 의해서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날뛰어.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 참 허무감을 느꼈어 왜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얼마 안 되는 군대 때문에 이리저리 움직여.
사람이라는 게 어떤 사람인지는 전쟁을 통해야만 알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 전쟁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봐야만 알지. 그렇지 않으면 평화시에는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전쟁을 겪으면서 일본 사람이 어떻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거든. 전쟁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서울 시내가 실업자로 가득 차. 서울 시내 어디를 가도 실업자야. 어디 생활 근거가 있나. 식량은 급하니까 보리쌀이라도 사려고 임진강을 갔다고. 임진강 넘어 개풍군이라는 데가 있어.
뤽작에다 보리쌀을 지고 갔는데 임진강에 가보니까 갯벌이야. 젊은 시체 열댓 구가. 남한 사람 시체인데 물이 들어서 몸이 불었어. 그래서 떠내려가지 않고 갯벌에 걸려 있어.-
본격적인 플라톤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대화편으로...
다음 주는 라케스입니다.
고르기아스와 짝을 이루는 듯 보이는 대화편 온갖 메타적인 장치들이 서로 얽혀 사용되어, 실험 문학의 먼 조상님으로 봐도 무방하게 느껴짐 고르기아스에서 언급한 연설문의 문제를 명백하게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이 연설을 페리클레스 비판에 사용한다는 점이 흥미로움
눈팅으로만 독회 따라가고 있었는데 플라톤 정주행하다보니 너무 즐거워서,댓글이라도 하나 남기는게 aretē인거같아서 씀고르기아스를 읽고 나니 연설이라는 이 대화편 형식부터가 거대한 조리돌림이었음.그런데 아무렇게나 똥글을 싸내도 됐을텐데 왜 굳이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담았을까?예컨대 최선자 정체에 대한 연설(238c-239c, 앞뒤 자르고 인용 많이 될듯함)이나맨 뒷부분에 진지하게 쓴 것 같은 "죽은 자가 남기는 말" 파트 등등.그에 관해서, 이 대화편 전체가 일종의 정치적 팜플렛이었을거라는아카넷 해설에서 소개한 연구 인용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광장이 점점 무너지다가 결국 스승의 죽음까지 다다른 걸 목도한 제자의 분노였을까?그나저나 본문에 인용된 소은 선생 경험담 너무 생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