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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번역본으로 읽으면 원서의 감흥을 반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발목을 잡았다.


셰익스피어의 번역이 힘든 이유는 그의 작품이 운문인 데다 그 속에 언어유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중세 영어는커녕 현대 영어조차 읽기 버거워하는 사람이라 최적의 번역본을 찾아 헤맸다.


그 답은 아직 얻지 못했으나, 번역가들의 골치를 썩이는, 햄릿의 첫 등장 후 대사 몇 줄을 보고 괜찮은 번역문이 떠올라서 이 글을 쓰게 됐다.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1막 2장에 들어서야 비로소 등장한다.


햄릿의 아버지가 죽자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는 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왕이 되고, 햄릿의 어머니, 즉 자신의 형수 거트루드와 결혼한다.


1막 2장에서 왕 클로디어스는 선왕을 추모하고, 자신을 도와준 신하들을 치하하고,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의 프랑스 유학을 허락한다.


그 후에야 햄릿을 부르는데, 이때 햄릿의 첫 대사가 방백으로 나온다. (방백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건 차치하자.)


King: (전략) But now, my cousin Hamlet, and my son―

Hamlet: (방백) A little more than kin, and less than kind.


햄릿이 한 순간에 숙부에서 아버지가 된 클로디어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박에 드러나는 대사다.


음보가 같고 "than kin"과 "than kind"가 각운을 이루어 리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어로 의미를 그대로 옮기면서 운율까지 살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번역가들은 어떻게 번역했는지 살펴보자.


(명역이라는 최재서 역본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었으니 궁금한 사람은 올재 판본을 사서 직접 봐보길 바람.


김재남 역본은 원본인 을지서적 판본 내용을 찾지 못해 신원문화사 판본, 하서출판사 판본, 해누리 판본을 대조하여 가장 나은 문장을 발췌했음.


2012년에 나온 여석기, 여건종이 번역한 시공사 판본은 미리보기의 한계로 볼 수 없어, 2006년에 나온 문예출판사 판본에서 발췌했음.


셰익스피어 연구회 역본은 2019년 7월에 나온 판본 내용을 찾지 못해 2007년 판본에서 발췌했음.)


숙질 이상의 관계가 되고는 말았지만, 그렇다고 부자(父子) 취급은 싫다. (김재남 - 신원문화사)


핏줄은 가깝지만, 마음은 구만리 밖이라. (신정옥 - 전예원)


동족보단 좀 가깝고 동류라긴 좀 멀구나. (최종철 - 민음사)


조카보다야 가깝겠지만 부자 취급은 어림없어. (여석기 - 문예출판사)


핏줄은 통해도 마음은 통하지 않아. (셰익스피어 연구회 - 아름다운날)


친척보단 조금 더 친하고, 자식보단 조금 덜 친한. (김정환 - 아침이슬)


친척 이상이지만 친척만도 못 하죠. (박우수 - 열린책들)


친척보다는 가깝고 혈육만큼은 못 되지! (노승희 - 펭귄클래식코리아)


숙질 이상의 인척관계가 되었으나 부자지간은 될 수 없는 법. (이경식 - 문학동네)


촌수로는 친척 이상, 마음으로는 친족 이하. (설준규 - 창비)


조카보다 가깝지만 살갑지는 않군요. (이상섭 -문학과지성사)


기존 역본 모두 의미를 완전히 살리고 운율을 죽이는 쪽과 조금 의역을 하여 의미가 퇴색되더라도 운율을 살리는 쪽, 둘 중 하나를 고른 것으로 보인다.


김재남, 여석기, 이경식 역본 등이 전자, 신정옥, 최종철, 김정환, 박우수, 설준규 역본 등이 후자에 해당한다.


친족 이상은 될지 모르나, 친자까지는 못 하겠구나. (본인)


나는 "kin"-"kind"(kin)에 대치되는 단어로 "친족"-"친자"(친ㅈ)를 써서 원문의 말장난을 최대한 살리려 하였다.


또, 쉼표를 기준으로 앞과 뒤를 똑같이 10자로 하여 음수율을 이루었고, 원문의 각운을 살리기 위해 "르나"-"구나"(ㅜ나)로 압운을 맞췄다.




바로 이어지는 다음 대사는 이렇다.


King: How is it that the clouds still hang on you?

Hamlet: Not so, My lord, I am too much in the sun.


어째서 아직 너에게 구름이 껴 있냐는 말에 햄릿은 오히려 햇빛을 너무 많이 받고 있다고 맞받아친다.


겉으로 보기엔 클로디어스의 구름 비유에 맞춰서 성은을 햇빛에 비유한 재치 있는 아부지만, 사실 "sun"과 "son"의 발음이 유사함을 이용한 언어유희다.


당신의 아들이 되기 싫으며 자신을 아들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Not so"-"My lord"(a o), "so"-"sun"(so)으로 이룬 압운은 덤이다.


사실상 한국어로 의미, 비유, 언어유희, 운율을 그대로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역가들은 이 대사를 어떻게 번역했는지 살펴보자.


(신정옥, 노승희, 이상섭 역본은 미리보기의 한계로 볼 수 없어 여기선 제외함.)


네 얼굴에는 늘 구름이 덮여 있는데, 어쩐 일이냐? / 천만에요. 이 태자태양의 혜택이 너무도 많습니다. (김재남 - 해누리, 신원문화사)


어째서 왕자는 아직도 구름에 덮였는가? / 아닙니다 전하, 과분한 성은에 덮인 걸요. (최종철 - 민음사)


그 얼굴에 낀 구름, 어째서 걷히지 않는가? / 천만의 말씀. 을 너무 받아 아들 노릇이 눈부십니다. (여석기 - 문예출판사)


어찌된 일이냐? 요즘 네 얼굴엔 먹구름이 가시질 않는구나. / 천만에요, 햇볕을 너무 많이 쬐어서 그렇습니다. (셰익스피어 연구회 - 아름다운날)


왜 아직도 먹구름이 네게 끼어 있는고? / 그게 아니죠, 폐하. 오히려 햇볕을 너무 많이 쬐고 있는 거죠. (김정환 - 아침이슬)


어언 일로 얼굴에 이리 먹구름이 가득한고? / 아닙니다, 폐하. 너무나 햇빛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박우수 - 열린책들)


구름이 아직도 네 몸에 끼어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 아닙니다, 전하. 소신은 햇빛을 지나치게 받고 있습지요. (이경식 - 문학동네)


아직 구름이 드리웠으니 어쩐 일이냐? / 아닙니다, 전하. 태양 볕이 과분하옵니다. (설준규 - 창비)


언어유희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의역한 쪽과 직역한 쪽으로 나뉜다.


김재남 역본에선 역자가 "태자"-"태양"(태ㅏ)으로 압운을 이뤄 언어유희를 살리려 한 듯하다. 그러나 원문을 모르면 이를 알아채기 힘들지 않나 싶다.


최종철 역본에선 역자가 "sun"의 의미를 버리고 "덮다"라는 말을 써서 나름의 언어유희를 시도한 듯하다. 김재남 역본보단 알아채기 쉬우나 "son"의 의미조차 사라져 원문에서 너무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석기 역본이 그나마 "sun"과 "son"의 의미를 잘 살려 번역한 것 같다.


이경식, 설준규 역본의 경우 역자가 주석으로 원문의 의미를 설명해놓았다.


나는 원문을 그대로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비유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대신 언어유희와 운율을 살려봤다.


어찌하여 아직 얼굴이 빈자(貧者)처럼 어두운가? / 그럴 리가요, 전하. 성은이 망극하여 하루 아침에 부자(父子)가 된 기분인 걸요. (본인)


"부자"가 겉으로는 돈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와 아들을 뜻하게 함으로써 원문의 "sun"의 언어유희를 최대한 살렸다.


"빈자"-"부자"(ㅂ자)로 원문에 없던 압운을 이루는 뜻밖의 부가효과도 얻었다. "리가요"-"인 걸요"(ㅣㄱ요)로 원문의 운율도 살려봤다.




이제 햄릿의 어머니이자 왕비 거투르드의 대사가 나온다.


Queen: (전략) Thou know´st ´tis common: all that lives must die,

Passing through nature to eternity.

Hamlet: Ay, madam, it is common.


거투르드는 햄릿에게 죽은 친아버지를 잊고 클로디어스를 왕이자 아버지로 인정하라고 종용한다.


햄릿의 대답은 겉으로는 그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투르드와 햄릿은 "common"의 의미와 대상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거투르드는 햄릿의 아버지의 죽음, 즉 생명의 죽음은 "흔한" 일이라고 말하고, 햄릿은 숙부와 어머니의 결혼이 "저속한" 일이라고 말한다.


"common"이 가진 여러 뜻을 활용하여 어머니의 빠른 재혼을 참으로 흔한 일이라고 비꼬는 것이다.


또한, "Thou"-"all"(a), "tis common"-"lives must"(i a), "die"-"eternity"(i)로 촘촘하게 압운을 이루고 있다. 번역가들은 이 대사를 어떻게 번역했는지 살펴보자.


너도 알잖니. 삶이 있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누구나 한 번은 세상을 마치고 저승으로 가게 마련이야. / 네, 그렇습니다. (김재남 - 하서출판사)


그게 흔한 인간지사라, 생자는 필사라 했으니, 이승에서 영겁의 세계로 떠나는 법이란다. / 예, 왕비 전하, 흔한 인간지사죠. (신정옥 - 전예원)


넌 모든 생명은 죽으며, 삶을 지나 / 영원으로 흘러감이 흔한 줄 알고 있다. / 예 마마, 흔한 일이지요. (최종철 - 민음사)


산 사람은 언젠가 죽고, / 이승은 저승으로 통하게 마련임은 자연의 이치, / 잘 알고 있겠지. / 그렇지요. 누군들 모르겠습니까. (여석기 - 문예출판사)


누구든 한 번은 세상을 떠난다는 걸 잊었느냐? / 네, 물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연구회 - 아름다운날)


너도 알다시피 흔한 일 아니냐―산 자는 모두 죽는 법. / 자연에서 영원으로 가는 거란다. / 그럼요, 마마. 흔해빠진 일이죠. (김정환 - 아침이슬)


너도 알고 있듯이 누구든 삶은 끝나고 / 지상에서 영원으로 넘어가는 법이란다. / 맞습니다. 그런 법이지요, 마마. (박우수 - 열린책들)


너는 생자필멸이 인간지상사임을 알고 있으렷다. / 사람은 태어나 살다가 영원으로 간다. / 예, 왕비님. 인간지상사지요. (이경식 - 문학동네)


흔한 일 아니냐, 산 자는 다 죽기 마련. / 이 세상 거쳐서 영원계로 가는 것. / 예, 마마. 흔한 일이지요. (설준규 - 창비)


"common"을 "흔한"이라고 직접적으로 옮긴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뉜다.


전자 중에서도 유일하게 김정환 역본에선 역자가 "흔해빠진"을 써서 원문의 비꼬는 투를 어느정도는 살렸다. 운율은 신정옥, 최종철, 설준규 역본에서 그나마 느껴진다.


사실 "common"이 "sun"처럼 완전히 답 없는 언어유희는 아니다.


"천(賤)하다"에는 "지체, 지위가 낮다", "하는 짓이나 생긴 꼴이 고상한 맛이 없다"라는 뜻 외에도 "너무 흔하여 귀하지 아니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common"을 무조건 "천하다"라고 번역하기에는 단어 자체의 어감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햄릿의 대사에서는 몰라도 왕비의 대사에서는 상당히 어색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의역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너도 알다시피 천하(天下)에 널린 일이잖니. 누구나 죽음의 운명에 걸리기 마련이야. / 자연에서 영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지. / 그럼요, 마마. 천(賤)하여 널린 일이지요. (본인)


"천하에"-"천하여"(천하ㅇ)로 "common"의 이중적 의미를 최대한 살렸다. 실제로 발음해봐도 같은 말처럼 비슷하다.


또한, "천하다"에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의 뜻이 있기에 저속하다는 의미와 참으로 흔하다며 비꼬는 의미를 모두 내포할 수 있다.


"에 널린 일이잖"-"에 걸리기 마"(ㅔ 얼리ㅣ ㅏ)로 요운, "마련이야"-"과정이지"(ㅏㅓㅣ_)로 각운을 이루었다.


셋째 문장은 어절마다 글자수가 같은데, 둘째 글자가 모두 중성이 ㅓ여서 리듬감을 형성한다.


첫째, 둘째 문장으로는 음보율을, 둘째, 셋째 문장으로는 16자로 음수율을 이루었다.




여기까지 <햄릿> 1막 2장 중 햄릿의 첫 대사 세 줄을 중점으로, 기존 번역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직접 번역해보았다.


이제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분들도 셰익스피어 번역이 왜 어려운지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위 예시들을 보고 번역본을 골라도 좋을 것이다.


영어를 그래도 좀 한다 하는 분들은 원문과 현대 영어 번역문을 같이 실은 'No fear Shakespeare' 시리즈('스파크노트'라는 사이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원문에 한글 주석을 달아놓은 <주석과 함께 읽는 햄릿>(한국문화사, 2018), 한글 해설과 영어 주석이 달린 영한대역본 <햄릿>(태일사, 2004) 중에 골라도 괜찮을 듯 싶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전공자도 아니고 영어 실력도 좋지 못하니 적당히 걸러 읽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