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바이스의 <마라/사드>


페터 바이스가 희한하게 국내에 꽤 번역이 많이 되었고, <마라/사드>도 현재는 절판이지만, 두 차례나 희곡이 번역되어서 도서관 뒤지면 아마 있을 것이고,

국내에도 꽤 많이 공연된다기에 조만간 다시 나올거 같지만, 진짜 돌아버린 갓작, 그 자체다.


제목이 <마라/사드>지만, 사실 이건 축약이고, 


정식 제목은 <사드 후작의 지도 하에 샤량통 정신병원 수감자들이 공연하는 장 폴 마라의 박해와 암살>인데,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사드가 정신병동에서 미치광이들 데리고 연극 했다는 일화를 밑바탕으로, 정신병동에서 사드가 마라의 암살을 주제로 희곡을 쓴 걸 관객들에게 보여주는데, 그 연극 속에서 사드가 직접 마라와 혁명에 대해서 논쟁하는 희곡임.


이 희곡이 더 미쳐버린 점은, 현대 희곡의 두 이론가가 베르히트의 <서사극 이론>과 아르토의 <잔혹극 이론>인데, 사실 이 두 이론이 서로 대립적인 면모가 있어서 대부분의 후대 희곡가들은 둘 중 하나만 접목함.


근데 이 희곡은 이 대립되는 이론들을 동시에 적용했고, 성공적이게 적용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줌.



진짜 갓작이니까 꼭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읽자.



다음은 일부 대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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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당신의 책을 읽어봤소, 무슈 사드, 당신은 자신의 불멸의 작품 속에서 자연의 살아있는 힘은 파괴이며 삶을 재는 유일한 도구는 죽음이라고 했더군. 


사드: 

맞아, 마라. 하지만 인간은 죽음에게 잘못된 의미를 부여했지. 

동물, 인간 혹은 식물이 죽어도, 아무 것도 자랄 수 없고, 만들 수 없는 비료더미로 변해. 죽음은 과정의 일부야. 모든 죽음, 가장 잔혹한 죽음조차 자연의 완전한 무심 속에 사라지지. 우리가 모든 인간을 죽여도 자연은 무심하게 지켜볼 거야. 나는 자연을 증오해. 그 무심한 관중을, 부술 수도 없는데 모든 것을 짊어질 것 같은 빙하 같은 얼굴을. 우리를 더 위대하고도 위대한 행동을 하도록 몰아넣어.


(중략)


다미앵의 처형을 생각해보자고, 루이 15세 암살이 실패한 이후를. 다미앵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해봐. 그가 당했던 고문과 비교하면 기요틴이 얼마나 신사적인지.


(중략)


그건 축제였어, 오늘날 그 어떤 축제와 비교할 수 없었지.

우리의 심문조차 더 이상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아. 우리가 이제 막 시작했지만, 우리의 혁명 후 살육엔 열정이 없어. 이제 그건 모두 형식적이야. 우리는 어떤 감정도 없이 사형을 선고해, 개인적인 죽음은 없어. 그저 값싼 익명의 죽음들이야. 수학적 기반 아래 모든 국가에 조금씩 벌을 줄 뿐이지, 때가 되어 모든 생명이 사라질 때까지.


마라: 후작 시민동지, 당신은 지난 9월 우리와 함께 싸웠지, 우리가 음모를 꾸미던 귀족들을 감옥 밖으로 끄집어낼 때 동참했어. 하지만 당신은 아직도 높으신 분처럼 말하는 군, 당신이 말하는 자연의 무관심함은 그저 당신의 결여된 열정에 불과해.


사드: 열정이라, 이제는 마라, 자네야말로 귀족처럼 이야기하는 군. 열정이란 특권층의 재산이야. 동정을 느끼는 자가 구걸하는 자에게 몸을 숙일 때, 그는 모멸감으로 두근거리지,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하여 감상적인 척 하지만 그가 거지에게 적선하는 건 발길질뿐이야. 제발, 마라, 작은 감정에 대해서 떠들진 말자고. 자네가 느끼는 게 작았던 적은 없어. 자네나 나나 가장 극단적인 행위들만 상관있었지.


마라: 설령 내가 극단적이라도, 난 당신과는 방향이 달라. 자연의 침묵에 맞서서 난 행동해. 거대한 무관심 속에서 의미를 찾지. 나는 무관심하게 지켜보지 않아, 나는 참견해. 이것과 저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 나는 그들을 바꾸고 개선시키기 위해 일해. 중요한 것은 자신의 머리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을 뒤집어놓아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 전체를 보는 거야.>



<사드:

처음에 난 혁명 속에서 복수심을 성대하게 분출할 기회라고 봤지. 내 모든 꿈보다도 거대할 난장판이라고. 

하지만 내가 법정에 앉아있을 때 나 자신을 돌아보았어, 전처럼 죄수가 아니라 판사로서. 내가 희생자를 집행인에게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보았지.

난 그들을 풀어주거나 도망시키려고 최선을 다했어. 내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수단이 살인이었지만, 난 죽일 수 없었어. 

그리고 이제는 그 생각 자체가 날 두렵게 만들어. 

9월에 가르멜 수녀원에 일어난 약탈을 보았을 때는 뜰에 수그린 채 토했지.

내 예언이 현실이 되는 걸 보았어. 남자의 잘린 성기를 피에 젖은 손에 든 채 달려가는 여자들을 보았지. 

몇 달이 지나선 단두대로 주기적으로 호송차가 오기 시작했고 칼날이 떨어졌다 올라갔다 다시 떨어졌지. 

모든 의미가 이 복수 속에서 흘러내려갔어. 그건 인정 없었고, 무뎠지만 흥미롭게도 기술적이고 형식적이었어.


이제는, 마라, 이제 난 당신의 혁명이 어디로 향하는지 볼 수 있어.

개인의 위축, 선택의 죽음, 획일성, 개인 간의 접촉 없는 치명적인 허약함, 무척이나 견고하지. 

그래서 난 뒤돌았어. 나는 부서져야할 이들 중 하나야. 

하지만 내 패배 속에서 나는 내 힘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취하고 싶어.

난 내 장소에서 나가선 참여하지 않되 무엇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았지. 관찰하며 그걸 모두 적었지. 

내 주위엔...고요함뿐이야. 내가 사라질 때면 내가 존재했던 모든 증거가 사라지길 바랄 뿐이지.>



<마라: 

힘을 사용하지 않고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속지 마시오. 우리의 혁명이 완전히 뭉개지면 저들은 이제 모든 게 나아졌다고 말할 거요.

가난이 숨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고, 임금이 올라도 새롭게 쓸모없는 것만 더 살 수 있게 되었을 뿐이며 

많이 가져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도, 말하겠지. 그게 당신보다 많이 가진 자들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구호니까


받아들이지 마시오. 그들이 부모인양 당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더 이상 외칠 불평등은 없으니 싸울 이유가 없다고 말해도, 

당신이 그걸 믿으면, 저들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척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훔친 걸로 광나는 집과 견고한 은행들을 만들곤 자신들이 맡겠지.


조심하시오. 저들이 기뻐할수록,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당신을 전쟁터로 내몰 거요.

굽실거리는 과학자들이 만든 무기는 빠르게 발달해선 더더욱 치명적이게 되겠지,

백만 명의 당신들을 손가락 튕기는 것만으로 산산 조각낼 수 있게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