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이 소설은 인물이 왜 그런 행동과 말,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독자에게 이해와 공감이 되도록 설정하기보단 그냥 캐릭터의 성격, 특성 을 깔아놓고 이야기를 전개함. 그래서 좀 오메메 뭔 해괴망측한 인물이여 갑자기 먼소리당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음.


사실 난 요즘 소설을 읽을 때 내포된 의미보단 서사, 캐릭터의 매력도에 초점을 둬서 읽다보니 그런 점에서 읽는 맛은 좀 떨어졌음.


근데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자본주의와 기계화 문명에 따른 인간의 소외다 보니,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꽤 생각해볼만 함. 


특히 냉소적인 표현이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대화가 자본주의에 대한 작가의 냉소를 드러낸다는 생각도 들었음.


마지막에 마을 주민들의 배신이 결국 사회시스템에 의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한다면 결국 인간은 사회의 산물이 되고, 그 지점에서 인간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복속된다는 점이 좀 갑갑하게 느껴졌음. 


그리고 작품의 주요 소재인 주인공을 미친놈으로 낙인 찍으려는 일종의 피후견인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더 활성화되고 있는데, 결국 후견제도의 본질은 후견받는 자의 재산 관리기에 결국 돈이란 게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또한 어쩔 수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음. 결국 돈에 의해 우리 사회가, 우리 인간이 결정되고 움직일 수밖엔 없는 것인가? 그 점에서 또 다시 갑갑해짐.


엘리엇의 마지막 선택은 으잉하는 선택이지만서도 때로는 이런 인물도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음. 자본주의에서의 인간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결정만을 하지만 비합리를 추구하는 인물이 등장할 때 눈이 번쩍 뜨이는 건 어쩔 수 없달까


예수의 이웃사랑이든 부처의 자비든 아니면 무신론자로서의 인본주의든 간에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진 인물이라면 어찌됐든 마음의 정화가 되기에.. 그런 점에서 감화를 받을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함.


그런 의미에서 내용과 서사 캐릭터는 다르지만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의 미시킨공작이 생각난달까.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