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단락과 비약이 심한 나머지 가끔은 작가가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음.
가라타니 고진 같은 사람이 고유명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태도, 또는 3인칭 객관시점의 방기를 이유로 하루키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였다고 생각함.
그런데 김응교나 가토 노리히로의 경우 이러한 무의식적 단락 지점을 역사적 층위에서 설명하고자 함. 물론 이렇게 해석해도 딱히 무리가 없으나(그것이 문학 장르의 힘이겠죠?) 사실 하루키의 작품은 설명하는 순간 매력이 상실되는 것도 사실임.
그래서 나는 하루키를 비판하는 무리와 하루키를 '풀어서' 이해하는 무리 모두가 그의 매력 자체는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임. 가라타니 본인의 용어로 설명하자면 그 매력은 하루키만의 고유한 시차적 관점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함(사실 이것도 너무 게으른 생각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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