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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홍보에서 SF 태그가 박혀있길래 궁금해서 빌려봤다.
진짜 시알못이니 그 점 감안하고 리뷰 읽기를...
- 「심해의 사랑」중 일부 발췌(12p)
첫 시에서부터 저자는 선언한다. '가볼 수 없는 곳', '심해나 우주, 마음같은'. 이런 관념적인 것들. 그것을 어떻게 쓰려는 것인가?
저자는 이 관념들을 마치 만지고 감각하고 우리의 일상에 침투한 물질로 탈바꿈시킨다. 해설의 말을 빌리자면 '유물론적 변화'(191p)라고 할 수 있다.
- 「시뮬레이션」 중 일부 발췌(84p)
이 탈바꿈을 가히 SF적 재해석과 같다. 마치 "성직자에서 과학자로" 역할을 바꾸듯이, 시인은 마치 어느 평행세계의 과학교사가 되어 독자에게 과학적 분석을 제시한다. 물론 하드SF적으로 엄밀한 과학적 사유를 펼치지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적 용어/사례들을 패러디하여, 이 시적 세계(마치 평행세계와 같은 세계)에서는 당연한 것이든 뻔뻔하게 그 사유를 전개한다.
그렇게 저자가 제시하는 관념들은 과학으로 해체되고 분해된다. 이윽고 독자에게 그저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신, 세계, 천사 등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SF를 "과학적 방법론/언어로 소설가가 가진 허구를 표현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 시집 역시 SF라 충분히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의 특이한 점이자 주목할 점은, 그 뻔뻔한 과학적 사유를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다. 바로 '주석'이다.
(아쉽게도 시집에 수록된 해설은 주석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부분부터는 단순한 뇌피셜이다.)
주석의 재미난 특징을 하나 꼽자면, 본문과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텍스트라는 점이다. 신진용의 시집은 이러한 주석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 「섬 이야기」 일부 발췌 (22p)
위의 시처럼 허구적 시적-세계가 가진 과학적 정합성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혹은 호킹, 슈바르츠를 위시한 유명한 과학적 용어/인물을 패러디하여 평행세계와 같은 기시적이면서 생경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마치 유명한 과학원리에 물질 대신 마음을 넣는 식으로 (「블랙홀」, 52p)
혹은 극도로 실험적인 정신을 발휘해, 주석만으로 본문을 구성하는 시도 있었다.
이러한 점은 SF 장르가 가질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인, 과학 묘사에 뒤따르는 지루함을 해소해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먼저 읽다보니 지루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다른 형식을 취하지만 비슷한 주제가 반복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전술한 '관념의 유물론화'가 시집 전체에 적용되는 만큼, 후반부로 갈수록 형식만 다를 뿐, 말하는 바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관념적인 것들의 다양화가 부족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겠다. 작품 대다수가 비슷한 것들(마음이나 신)을 언급하니, 이 용어로부터 기인하는 매너리즘이 독자를 지치게 한다.
예를 들어 마음이라는 용어를 통일한다하면, 대신 다양한 특징을 주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보석은 보는 각도에 따라 비치는 빛깔이 다른 것처럼.
시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전술한 칭찬들(과학적 분석/주석) 등은 이미 앞선 시인들에게 충분히 다뤄졌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 그럼에도 시 초보인 내 눈에서는, 저자의 작품세계에는 명확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비록 단점들을 논했음에도.
이 시집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신진용 시인의 첫 작품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이 잘 되었으면 한다.
오? - dc App
별롤줄 알았는데 괜찮아보이네
광광 울면서 시집 찢을 정도로 재밌게 읽은 건 아니지만… 그냥 재밌게 읽은 정도?
주석 부분은 나보코프를 연상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