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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감상 이후 거의 2주 만인 것 같은데

역사책 하나가 너무 어렵네요

삶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드라마 셜록 시즌4 2화에는 여자 의뢰인의 가방에 자살용 권총이 있는 걸 알고 셜록이 말리는 장면이 있다. “당신의 목숨은 당신 것이 아니니 그 권총을 사용하지 마시오.” 그럼 내 목숨은 누구 것일까? 필자는 이것이 나를 아껴주는 사람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아끼는 사람이 없다면 내 삶의 의미가 사라진다. 뫼르소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이후 줄곧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소통이 없는 어머니와 동네, 별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 회사생활은 그를 혼자로 만들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 무의미를 더 확실하게 만들며 이미 이 시점에서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고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와 같은 이론을 생각해낸 이유는 두 남자와 함께 아라비아인을 마주쳤을 때는 총을 쏘지 않았다가 혼자서 아라비아인을 만났을 때, 즉 외로움을 느꼈을 때 총을 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라비아인을 쏜 시점은 결혼 예정자와 자신의 동네 친구와 놀러갔을 때 아닌가. 충분히 사랑받는 시점 아니었나? 이미 인간사 전체를 무의미하다 판단한 모양이다.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못 찾은 듯하다. 뫼르소에겐 언젠가부터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지, 살아가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마리의 결혼 얘기에도 너가 요구하면 받는다.’ 무관심하다. 자신이 어떻게 살지에 대해 관심이 없고 거대한 세계에서도 변화를 일으킬 생각이 없다. 재판을 앞두고서도 자신이 그저 악한 살인자로서 평가받길 원하면서 신부와 변호사의 도움을 거절한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반사회적 살인자는 사형을 받으며 우리의 외지인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걸림돌 없이 퇴장한다.

 

감옥 안에서 본 태양에 대해서도 쓰고는 싶은데 확실하지가 않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간통하는 여인’(‘부정’)에서도 자연물과 교감하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친구도 무의미한 삶 속에서 뛰쳐나가 자연을 맞이한다. 작가는 자연물을 동경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