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잃어버린 미래들
‘미래의 느린 취소’,
‘여기에는 더 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 TV 시리즈 <사파이어와 스틸(Sapphire and Steel)>의 마지막 장면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설계된 듯했다. 조애나 럼리와 데이비드 맥컬럼이 연기한 두 주인공은 1940년대의 어느 도로변 카페처럼 보이는 곳에 갇힌다. 라디오에서는 글렌 밀러 스타일의 매끄러운 빅밴드 재즈가 흘러나온다. 1940년대 옷을 입은 다른 남녀 한 쌍이 옆 테이블에 앉아 있다. 여자가 일어나 말한다. “여기는 함정이에요. 여기는 아무 곳도 아니며(Nowhere), 영원한 곳이죠.” 그녀와 동행인은 유령 같은 형체만 남긴 채 사라지고, 이내 허공만 남는다. 사파이어와 스틸은 공포에 질린다. 그들은 탈출에 쓸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카페 안의 집기들을 뒤지지만 아무것도 없다. 커튼을 젖히자 창밖에는 오직 검은 별빛이 흐르는 허공뿐이다. 카페는 마치 깊은 우주를 떠다니는 일종의 캡슐처럼 보였다.
지금 이 비범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면, 카페와 우주의 병치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결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의 나에게 그런 참조점들은 없었다. 사실 나중에 호퍼와 마그리트를 접했을 때, 나는 분명 <사파이어와 스틸>을 떠올렸을 것이다. 때는 1982년 8월이었고 나는 막 15살이 된 참이었다. 그 이미지들을 다시 보게 되기까지는 20년이 넘는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그때쯤엔 VHS, DVD, 유튜브 덕분에 거의 모든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기억의 조건 속에서, 상실 그 자체가 상실된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자 이 시리즈는 당시보다 훨씬 더 기묘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우주선도, 레이저 총도, 인간형 악당도 없는, 장르의 전통적인 도구들이 전혀 없는 공상과학물이었다. 오직 시간이라는 복도의 해어지는 직물(fabric)만이 존재했고, 그 결을 따라 사악한 존재들이 기어와 시간적 연속성의 틈새와 균열을 착취하고 확장했다. 우리가 사파이어와 스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아마도 인간은 아닐 것이며, 시간의 붕괴를 수선하기 위해 신비로운 ‘기관(Agency)’에서 파견된 특수한 종류의 ‘탐정’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시리즈의 제작자 P. J. 해먼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파이어와 스틸>의 기초는 시간을 결합한 탐정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시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J. B. 프리스트리와 H. G. 웰스의 아이디어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 주제에 대해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시간을 앞뒤로 오가는 대신, 시간이 깨져서 침범해 들어오는 방식을 택했죠. 그런 전제를 세우고 나니, 그 침입을 막는 일을 하는 두 인물이 가진 잠재력을 깨달았습니다.”
해먼드는 이전에 <젠틀 터치(The Gentle Touch)>나 <헌터스 워크(Hunter’s Walk)> 같은 경찰 드라마와 <에이스 오브 완즈(Ace of Wands)> 같은 아동 판타지 쇼의 작가로 활동했다. <사파이어와 스틸>을 통해 그는 다시는 반복하지 못할 일종의 작가주의적 성취를 거두었다. 이런 환상적인 공영 방송의 조건은 1980년대에 사라지게 되는데, 텔레비전의 또 다른 거장 데니스 포터(Dennis Potter)가 말한 신자유주의라는 ‘점령군’에 의해 영국 미디어가 장악되었기 때문이다. 그 점령의 결과로, 이제는 그런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 TV에, 그것도 당시 영국의 유일한 상업 네트워크였던 ITV에서 방영되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졌다.
당시 영국의 채널은 BBC1, BBC2, ITV 세 개뿐이었고, 채널 4는 몇 달 후에야 첫 방송을 시작했다. <스타워즈>가 만들어낸 기대치에 비하면 <사파이어와 스틸>은 매우 저렴하고 소박했다. 1982년 당시에도 크로마키 특수 효과는 설득력이 떨어져 보였다. 세트장은 최소한이었고 출연진도 적었기에(대부분의 ‘임무’에는 럼리와 맥컬럼, 그리고 소수의 인원만 등장했다) 마치 연극 공연 같은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싱크대 리얼리즘(kitchen sink naturalism)’의 친숙함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사파이어와 스틸>은 1970년대 BBC에서 자주 방영되었던 해럴드 핀터(Harold Pinter) 연극의 수수께끼 같은 압박감과 더 닮아 있었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리즈의 몇 가지 특징이 특히 인상적이다. 첫 번째는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방식인 ‘시청자에게 절반쯤 다가가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개념적인 문제다. <사파이어와 스틸>은 난해했고, 그 이야기와 세계관은 결코 온전히 공개되거나 설명되지 않았다. 이 시리즈는 <스타워즈>보다는 존 르 카레의 스마일리 소설을 각색한 BBC의 <틴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1979년 방영)나 그 후속작 <스마일리의 사람들>(사파이어와 스틸 종영 한 달 후 방영)에 훨씬 가까웠다.
감정적인 톤의 문제이기도 했다. 시리즈와 두 주인공은 오늘날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의 당연한 특징인 따뜻함이나 재치 있는 유머가 결여되어 있었다. 맥컬럼이 연기한 스틸은 자신이 마지못해 얽히게 된 삶들에 대해 기술자 같은 무관심을 보였다. 의무감은 잃지 않았지만, 그는 까칠하고 참을성이 없었으며, 인간들이 ‘삶을 어지럽히는(clutter)’ 방식에 자주 분개했다. 럼리의 사파이어가 더 동정심 있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그녀의 겉모습뿐인 애정은 마치 주인이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갖는 인자한 매혹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늘 뒤따랐다.
시리즈 시작부터 특징적이었던 이 감정적 엄숙함은 마지막 임무에서 더욱 명시적으로 비관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틴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처럼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편에 의해 배신당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들면서 르 카레와의 평행이론은 더욱 강화된다.
또한 시릴 오나델(Cyril Ornadel)의 부수 음악이 있었다. 닉 에드워즈가 2009년 블로그 포스트에서 설명했듯, 이 음악은 “소규모 앙상블(주로 목관 악기)을 위해 편곡되었고, 드라마틱함과 공포의 암시를 강화하기 위해 전자적 처리(링 모듈레이션, 에코/딜레이)를 자유롭게 사용했다. 오나델의 신호들은 오늘날 주류 미디어에서 들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게 소름 돋고 암시적이다.”
<사파이어와 스틸>의 한 가지 목표는 유령 이야기를 빅토리아 시대의 맥락에서 끄집어내어,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거나 최근에 버려진 현대적 장소로 옮겨 놓는 것이었다. 마지막 임무에서 사파이어와 스틸은 작은 주유소에 도착한다. Access, 7 Up, Castrol GTX, LV 같은 기업 로고들이 정비소와 인접한 카페의 창문과 벽에 붙어 있다. 이 ‘중간 지점(halfway place)’은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1995년 동명의 저서에서 명명한 ‘비장소(non-places)’—후기 자본주의 공간을 점점 더 지배하게 될 일반적인 전이 구역(쇼핑 단지, 공항 등)—의 초기 버전이다. 사실, <사파이어와 스틸>에 나오는 소박한 주유소는 이후 30년 동안 고속도로변에 증식하게 될 복제된 거대 건축물들에 비하면 기묘할 정도로 개성적이다.
사파이어와 스틸이 해결하러 온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시간과 관련이 있다. 이 주유소에는 이전 시대의 시간이 스며 나오는 현상(temporal bleed-through)이 발생한다. 1925년과 1948년의 이미지와 인물들이 계속 나타나서, 사파이어와 스틸의 동료 실버가 말했듯이 “시간이 그냥 섞이고 뒤죽박죽이 되어 아무런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다.
시대착오(Anachronism), 즉 서로 분리된 시간대들이 서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현상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 붕괴의 주요 증상이었다. 이전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스틸은 이러한 시간적 변칙이 서로 다른 시대의 유물들을 섞어 놓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성향 때문에 발생한다고 불평한다.
이 마지막 임무에서 시대착오는 정지(stasis)로 이어진다. 시간이 멈춘 것이다. 주유소는 ‘주머니 속, 진공 상태’에 있다. ‘여전히 교통 소음은 들리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차 소리는 루프된 웅웅거림 속에 갇혀 있다. 실버는 “여기에는 더 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치 이 전체 시나리오가 핀터의 <노 맨즈 랜드(No Man’s Land)> 속 구절을 문자 그대로 구현한 것 같다. “그 누구의 땅도 아닌 곳(No man’s land), 결코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더 늙지도 않고, 영원히 차갑고 고요하게 남아 있는 곳.”
해먼드는 시리즈를 반드시 거기서 끝내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리즈가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트워크 텔레비전으로의 복귀는 없었다. 2004년, <사파이어와 스틸>은 일련의 오디오 어드벤처로 돌아왔지만, 해먼드, 맥컬럼, 럼리는 참여하지 않았고, 그때의 청중은 일반 시청자가 아니라 디지털 문화에서 쉽게 충족되는 특정 관심사를 가진 니치(niche) 팬층이었다.
영원히 유예된 채 결코 풀려나지 못하고, 그들의 곤경—그리고 그들의 출처조차—결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아무 곳도 아닌 곳’의 카페에 갇힌 사파이어와 스틸의 고통은 보편적인 상황에 대한 예언이다. 삶은 지속되지만, 시간은 왠지 멈춰버린 상황 말이다.
이 책의 주장은 21세기 문화가 <사파이어와 스틸>의 마지막 모험에서 그들을 괴롭혔던 것과 동일한 시대착오와 관성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지는 영원한 움직임이라는 ‘새로움’의 표면적인 열광 뒤에 매장되어 있다. ‘시간의 뒤섞임’, 이전 시대의 몽타주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너무나 만연해서 더 이상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는 그의 저서 『미래 이후(After The Future)』에서 “1970년대와 80년대에 시작된 미래의 느린 취소”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이렇게 부연한다.
“내가 ‘미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시간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진보적 근대성이라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생겨난 심리적 지각, 즉 근대 문명의 긴 기간 동안 만들어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절정에 달한 문화적 기대감을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은 비록 방법론은 다를지라도 끊임없이 전진하는 발전이라는 개념적 틀 안에서 형성되었다. 헤겔-마르크스주의적 ‘지양(Aufhebung)’의 신화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전체성의 확립, 복지와 민주주의의 선형적 발전에 대한 부르주아적 신화, 과학 지식의 전지전능한 힘에 대한 기술 관료적 신화 등이 그것이다. 나의 세대는 이 신화적인 시간화의 정점에서 자랐으며, 그것을 떨쳐버리고 이런 시간적 렌즈 없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어렵고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새로운 현실이 아무리 명백하고 눈부실지라도 결코 그에 맞춰 살 수 없을 것이다.” (After The Future, 2011)
비포는 나보다 한 세대 앞서 있지만, 우리 둘은 이 시간적 균열의 같은 편에 서 있다. 나 역시 이 새로운 상황의 역설에 결코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 즉 구세대가 신세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생각—젊은 세대가 자동으로 문화적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는 가정—이야말로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구세대가 공포와 이해 불능 속에서 ‘새로운 것’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 시대에 기대치가 형성된 사람들이 인식 가능한 형태들이 끈질기게 지속되는 현상에 더 놀라곤 한다.
대중음악 문화보다 이 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없다.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자란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문화적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법을 배운 것은 대중음악의 변이 과정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21세기 음악을 마주했을 때 사라진 것은 바로 그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의 감각이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통해 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발표된 아무 음반이나 골라 1995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보내 라디오에서 틀어준다고 상상해 보자. 청취자들에게 어떤 충격도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1995년의 청취자들을 놀라게 할 법한 것은 그 사운드들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다음 17년 동안 음악이 정말로 그렇게 조금밖에 변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를 1960년대와 90년대 사이의 급격한 스타일 변화와 대조해 보라. 1993년의 정글(jungle) 음반을 1989년의 누군가에게 들려주었다면, 그것은 음악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할 정도로 새로운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20세기 실험 문화가 새로움이 무한히 가능하다는 느낌을 주는 ‘재조합의 황홀경(recombinatorial delirium)’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21세기는 압도적인 유한성과 고갈의 감각에 짓눌려 있다.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면, 21세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사파이어와 스틸이 도로변 카페에 갇혔던 것처럼, 우리도 20세기에 갇혀 있다.
미래의 느린 취소는 기대감의 수축을 동반했다. 다가오는 해에 스투지스(The Stooges)의 <Funhouse>나 슬라이 스톤(Sly Stone)의 <There’s a Riot Goin’ On>만큼 위대한 음반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틀즈나 디스코가 가져왔던 것 같은 단절을 기대하는 일은 더욱 드물다. ‘뒤늦음(belatedness)’의 느낌, 즉 황금기가 지난 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정된다. 현재의 척박한 지형을 이전 시대의 풍요로움과 비교하면 즉시 ‘향수(nostalgia)’에 젖어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예술가들이 오래전에 확립된 스타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가 ‘형식적 향수(formal nostalgia)’에 사로잡혀 있음을 시사한다.
미래의 느린 취소가 시작된 기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지난 30년은 거대하고 트라우마적인 변화의 시기였다.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의 당선은 소위 전후 사회적 합의라는 불안정한 타협의 시대를 끝냈다. 정치에서의 대처주의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자본주의 경제의 초국가적 재편에 의해 강화되었다. 세계화, 유비쿼터스 전산화, 노동의 유연화(casualisation)를 동반한 소위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m)’으로의 전환은 일과 여가가 조직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한편 지난 10~15년 동안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 기술은 일상적인 경험의 질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이 모든 변화 때문에 문화가 현재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이 커지고 있다. 아니면 매우 중요한 의미에서, 더 이상 파악하고 표현할 ‘현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음악에서의 ‘미래지향적(futuristic)’이라는 개념의 운명을 생각해 보라. 음악에서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다를 것이라 기대하는 그 어떤 미래를 가리키는 용도로 쓰이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것은 마치 특정한 타이포그래피 서체처럼 하나의 확립된 스타일이 되었다. 미래지향적인 것을 생각해보라는 요청을 받으면 우리는 여전히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음악 같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비록 이 음악이 이제는 독일 그룹이 1970년대 초 신시사이저를 실험하기 시작했을 때 글렌 밀러의 빅밴드 재즈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오래된 유물이 되었음에도 말이다. 크라프트베르크의 21세기 버전은 어디에 있는가?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이 이미 확립된 것들에 대한 참을성 없는 불만에서 나왔다면, 현재는 과거에 대한 비정상적인 수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이상으로, 과거와 현재의 구분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1981년에 196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졌다. 그 이후 문화적 시간은 스스로 접혔고, 선형적 발전의 인상은 기묘한 동시성(simultaneity)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 독특한 시간성을 소개하기 위해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첫 번째, 내가 악틱 몽키즈(Arctic Monkeys)의 2005년 싱글 ‘I Bet You Look Good on the Dancefloor’의 비디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것이 1980년경의 유실된 유물이라고 믿었다. 조명, 헤어스타일, 옷차림 등 비디오의 모든 것이 BBC2의 진지한 록 프로그램인 <The Old Grey Whistle Test>의 공연처럼 보이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비주얼과 사운드 사이에 어떤 이질감도 없었다. 적어도 가볍게 듣기에는 1980년대 초반의 포스트펑크 그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확실히 앞서 언급한 사고 실험을 해본다면, 이 곡이 1980년 <The Old Grey Whistle Test>에서 방송되었다고 가정해도 청중에게 아무런 혼란을 주지 않았을 것임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처럼 그들도 가사 속 ‘1984’라는 언급이 미래를 가리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무언가 놀라운 점이 있어야 한다. 1980년에서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록앤롤의 시작점에 도달한다. 1980년에 버디 홀리나 엘비스 같은 소리가 나는 음반이 나왔다면 시대착오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음반들이 1980년에도 나왔지만, 그것들은 ‘레트로’로 마케팅되었다. 아틱 몽키즈가 ‘레트로’ 그룹으로 치부되지 않은 이유는 부분적으로 2005년에는 그들의 회고적 성향과 대조할 만한 ‘지금(now)’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브릿팝의 복고주의를 영국 댄스 언더그라운드나 미국 R&B에서 일어나는 실험주의와 비교함으로써 비판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5년쯤에는 두 분야 모두 혁신의 속도가 엄청나게 둔화되었다. 영국 댄스 음악은 록보다 훨씬 활기차지만,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는 매우 작고 점진적이며 주로 매니아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1990년대 레이브에서 정글로, 정글에서 개러지로 넘어갈 때 느꼈던 감각의 탈구(dislocation)는 더 이상 없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 팝의 지배적인 사운드 중 하나(R&B를 대체한 글로벌 클럽 음악)는 1990년대 하우스와 테크노의 가장 맛없는 성분들로 만들어진 밋밋한 칵테일인 ‘유로트랜스(Eurotrance)’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두 번째 예. 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버전의 ‘Valerie’를 쇼핑몰을 걷다가 처음 들었는데, 아마도 그 노래를 소비하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였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Valerie’가 인디 밴드 주톤스(The Zutons)의 곡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 동안, 이 음반의 고풍스러운 1960년대 소울 사운드와 보컬(처음엔 와인하우스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때문에 내 믿음을 수정해야 했다. ‘주톤스 버전이 사실은 내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이 ‘더 오래된’ 곡의 커버였던 게 아닐까?’ 당연히 이 ‘60년대 소울 사운드’가 사실은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주톤스의 곡을 프로듀서 마크 론슨(Mark Ronson)이 전문으로 하는 보강된 레트로 스타일로 커버한 것이었다.
론슨의 작업물들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향수 모드(nostalgia mode)’라고 부른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제임슨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놀랍도록 선견지명 있는 저술에서 이러한 경향을 식별했다. ‘Valerie’와 아틱 몽키즈가 포스트모던 레트로의 전형인 이유는 그들이 시대착오를 수행(perform)하는 방식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 들었을 때 자신들이 흉내 내는 시대에 속한 것처럼 들릴 만큼 충분히 ‘역사적’이지만, 무언가 맞지 않는 점이 있다. 현대적인 스튜디오와 녹음 기술의 결과인 질감의 불일치는 그들이 현재도 과거도 아닌, 어떤 암시된 ‘시대를 초월한(timeless)’ 시대, 즉 영원한 1960년대나 영원한 80년대에 속해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적 생성의 압박으로부터 평온하게 해방된 ‘클래식’한 사운드 요소들은 이제 새로운 기술에 의해 주기적으로 다듬어질 수 있게 되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하는 ‘향수 모드(nostalgia mode)’가 무엇인지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제임슨은 심리적인 의미에서의 향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제임슨이 이론화한 향수 모드는 오히려 심리적 향수를 배제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향수 모드가 역사적 시간의 일관성이 붕괴했을 때에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은 사실 패러다임적으로 ‘모더니즘적’ 순간에 속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하려 했던 프루스트나 조이스의 독창적인 시도들을 떠올려보라. 반면 제임슨의 향수 모드는 동시대적 경험에 부합하는 문화적 형식을 혁신해야 한다는 모더니즘적 과업으로부터 퇴각한 결과로, 과거의 기법과 공식에 형식적으로 부착된 상태를 의미한다.
제임슨이 든 예시는 로렌스 캐스단(Lawrence Kasdan)의 영화 『보디 히트(Body Heat)』(1981)다.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마치 1930년대 작품처럼 느껴진다. 제임슨은 이 영화가 현대의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하기에 엄밀히 말해 ‘향수 영화’는 아니라고 썼다. 그러나 이 ‘기술적 동시대성’은 매우 모호하다. 작중 소품(가령 자동차)은 80년대 제품이지만, 영화의 모든 요소는 동시대적 참조점을 흐리고 이 작품을 ‘역사를 초월한 영원한 1930년대’라는 정의 내릴 수 없는 노스탤지어적 과거로 수용하게끔 공모한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조차 향수 영화의 양식이 침습하고 식민화하는 현상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증후적 사례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현재를 직시하거나, 현재의 경험을 미학적으로 재현할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소비자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가혹한 기소장이자, 시간과 역사를 다루는 능력을 상실한 사회의 병리적 징후라 할 수 있다.
『보디 히트』가 명확한 시대극이나 향수 영화가 되지 못하게 막는 것은 과거에 대한 명시적인 참조를 거부하는 ‘부인(disavowal)’이다. 그 결과는 시대착오(anachronism)로 나타나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공식적 동시대성의 흐릿함’과 ‘역사성의 쇠퇴’는 우리가 문화 산물을 경험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제임슨이 든 또 다른 예는 『스타워즈』다. 1930~50년대에 성장한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문화적 경험 중 하나는 ‘벅 로저스(Buck Rogers)’ 스타일의 토요일 오후 연재물이었다. 『스타워즈』는 이러한 경험을 파스티슈(혼성모방)의 형태로 재발명한다. 멸종된 장르를 패러디하는 것은 무의미하기에, 『스타워즈』는 죽은 형식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그것을 다시 경험하고자 하는 깊은(혹은 억압된) 열망을 충족시킨다. 어린 세대는 모험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만, 성인 관객은 과거의 기묘한 미학적 산물을 다시 한 번 살아보고자 하는 노스탤지어적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특정 역사적 시기에 대한 향수가 없다. 제임슨이 쓴 갈망은 ‘형식(form)’에 대한 갈망이다. 『스타워즈』는 고전적인 형식을 은폐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적 시대착오의 공명력 있는 사례가 된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모더니즘적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형식을 출현시켰다면, 향수 모드는 기술을 낡은 것을 수선하는 과업에 종속시킨다. 그 결과 미래의 소멸이 마치 그 반대인 것처럼 위장된다.
미래는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것이 아니다. 프랑코 베라르디(Berardi)의 ‘미래의 느린 취소(the slow cancellation of the future)’라는 표현이 적절한 이유는 지난 30여 년간 미래가 점진적이면서도 가차 없이 침식되어 온 과정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이 문화적 시간성의 위기가 처음 감지된 순간이었다면, 사이먼 레이놀즈가 ‘시간 착란(dyschronia)’이라 부른 현상이 만연해진 것은 21세기 첫 10년에 들어서였다. 이러한 시간적 단절은 본래 기괴함(uncanny)을 자아내야 하지만, ‘레트로 마니아(retro-mania)’가 지배하면서 그 섬뜩한 충격마저 사라졌다. 이제 시대착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회고와 파스티슈를 특징으로 하는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제 자연화되었다. 가령 경이로운 성공을 거둔 아델(Adele)을 보라. 그녀의 음악은 레트로로 마케팅되지 않지만, 그녀의 음반 어디에도 그것이 21세기에 속한다는 지표는 없다. 아델의 음악은 구체적인 역사적 순간을 소환하지 않으면서도 과거라는 막연하고 지속적인 느낌에 흠뻑 젖어 있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던적 ‘역사성의 쇠퇴’를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와 동일시했지만, 왜 이 둘이 동의어인지에 대해서는 상술하지 않았다. 왜 신자유주의적 포스트 포디즘 자본주의의 도래는 회고와 파스티슈의 문화를 불러왔는가? 여기에 두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첫째는 소비의 측면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연대와 안전망을 파괴하면서, 사람들은 보상 기제로서 이미 검증된 익숙한 것에 굶주리게 된 것은 아닐까? 폴 비릴리오는 통신 속도의 거대한 가속에 대한 반작용이자 결과로서 ‘극적 관성(polar inertia)’에 대해 쓴 바 있다. 비릴리오는 하워드 휴즈가 15년 동안 호텔 방에 틀어박혀 영화 『제브라 작전』을 무한 반복 시청한 사례를 든다. 한때 항공 역학의 선구자였던 휴즈는 사이버 공간이 열어젖힐 실존적 지형의 초기 탐험가였던 셈이다. 그곳은 문화의 전 역사를 향유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혹은 베라르디가 주장하듯, 후기 자본주의의 노동 문화가 주는 강도와 불안정성이 사람들을 탈진과 과자극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로 몰아넣었을 수도 있다. 불안정한 노동과 디지털 통신의 결합은 주의력을 사방에서 포위한다. 베라르디는 이러한 불면과 과잉의 상태에서 문화가 ‘탈에로스화’된다고 주장한다. 유혹의 기술은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에, 비아그라와 같은 처방은 생물학적 결핍이 아닌 문화적 결핍(시간과 에너지, 주의력의 절대적 부족)에 대한 즉각적인 해결책으로 기능한다. 베라르디의 또 다른 예시인 포르노그래피처럼, 레트로는 이미 익숙한 만족감 위에서 최소한의 변주만을 제공하며 쉽고 빠른 보상을 약속한다.
둘째는 생산의 측면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새로움과 혁신을 수사로 내세우지만, 점진적이고 체계적으로 예술가들에게서 ‘새로운 것’을 생산할 자원을 박탈해 왔다. 영국에서 전후 복지국가와 고등교육 보조금은 1960~80년대 대중문화 실험의 간접적 자금원이었다. 그러나 이후 공공 서비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실천적 공격은 예술가들이 즉각적인 상업적 성공의 압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공간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공영 방송이 ‘시장화’되면서 이미 성공한 모델을 복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결과적으로 노동에서 물러나 문화 생산에 몰입할 수 있는 사회적 시간은 급격히 감소했다.
문화적 보수주의에 기여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임대료와 주택 담보 대출 비용의 막대한 인플레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런던과 뉴욕에서 펑크와 포스트 펑크 씬이 만개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그 도시들에 무단 점유가능한 빈 건물(squat)과 저렴한 부동산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후 사회 주택의 감소와 무단 점유에 대한 탄압, 미친 듯한 집값 상승은 문화 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디지털 통신 자본주의의 도래는 이 위기를 종말적 단계로 밀어 넣었다. 베라르디가 묘사한 주의력의 포위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에게도 적용된다. 새로운 것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화적 형식뿐만 아니라 사회성으로부터도 일정한 ‘물러남(withdrawal)’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한한 미세 접촉과 유튜브 링크의 범람을 특징으로 하는 현재의 지배적인 소셜 네트워크 공간은 그러한 단절을 그 어느 때보다 어렵게 만들었다. 사이먼 레이놀즈의 촌철살인처럼, 최근 몇 년간 일상은 가속되었으나 문화는 감속되었다.
이러한 시간적 병리의 원인이 무엇이든, 서구 문화의 어떤 영역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자음악과 같은 과거 미래주의의 요새들조차 이제는 형식적 향수로부터 도피처를 제공하지 못한다. 음악 문화는 여러 면에서 포스트 포디즘 자본주의 아래 놓인 문화의 운명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형식의 차원에서 음악은 파스티슈와 반복의 굴레에 갇혀 있다. 반면 그 인프라는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겪었다. 다운로드가 물리적 매체를 대체하고 레코드 숍이 문을 닫으며 커버 아트가 사라지는 등, 소비와 유통의 구 패러다임은 붕괴하고 있다.
왜 유령론인가?
그렇다면 유령론(hauntology)이라는 개념은 이 모든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사실 지난 10년 중반의 전자음악에 유령론이라는 용어를 적용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분히 주저하고 있었다. 이 용어의 창시자인 자크 데리다를 나는 대체로 당혹스러운 사상가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창시한 해체주의라는 철학적 프로젝트는 학계의 특정 영역에 안착하자마자 일종의 ‘불확정성에 대한 경건한 숭배’로 전락했다. 최악의 경우 그것은 확정적인 주장을 회피하는 것을 법률가적인 미덕으로 삼는 태도였다. 해체주의는 추종자들에게 울타리 치기, 목적의 허약함, 의무적 회의를 유도하는 일종의 회의주의적 병리학이었다. 그것은 하이데거식의 사제적 불투명성이나 모든 해석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문학 이론과 같은 특정 학술 관행을 준신학적 명령으로 격상시켰다. 데리다의 완곡어법은 강도를 약화시키는 영향력처럼 보였다.
여기서 내가 데리다를 처음 접한 곳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미디어 환경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1980년대 『NME(New Musical Express)』의 지면에서 당대 가장 흥미로운 필자들이 데리다의 이름을 언급하곤 했다. (사실 데리다의 저작에 느꼈던 좌절감의 일부는 실망감에서 기인했다. 이언 펜맨이나 마크 싱커 같은 NME 필자들이 데리다에 보여준 열광과 그들의 글에서 촉발된 형식적·개념적 독창성은 내 기대를 부풀렸지만, 정작 데리다의 원전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NME는 공영 방송과 더불어 일종의 보충적 비공식 교육 시스템이었으며, 그 안에서 이론은 기묘하고 찬란한 매력을 획득했다. 또한 나는 채널4 초창기 심야에 방영된 켄 맥멀렌의 영화 『고스트 댄스』에서 데리다를 본 적이 있다. VCR이 없던 시절이라 잠들지 않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하며 버텼던 기억이 난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유령론’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는 “출몰한다는 것은 현존한다는 뜻이 아니며, 개념의 구축 자체에 출몰(haunting)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유령론은 일종의 ‘개념적 언어유희(puncept)’였다. 이는 존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철학적 연구인 ‘존재론(ontology)’에 대한 언어유희다. 유령론은 ‘흔적’이나 ‘차연(différance)’과 같은 데리다의 이전 개념들을 계승한다. 이 용어들은 그 어떤 것도 순수하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칭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에 앞서고 그것을 둘러싼 일련의 ‘부재들’을 근거로 할 때에만 가능하며, 그 부재들이야말로 존재가 일관성과 이해 가능성을 갖도록 허용한다. 유명한 예로, 특정 언어 기호는 스스로의 긍정적 자질이 아니라 다른 기호와의 ‘차이’를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나 유령론은 흔적이나 차연에서는 다소 미진했던 ‘시간의 문제’를 명시적으로 끌어들인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반복되는 문구 중 하나는 『햄릿』의 “시간이 이음매에서 어긋나있다(the time is out of joint)”이다. 마틴 헤글런드(Martin Hägglund)는 데리다의 모든 작업을 이 ‘고장 난 시간’의 개념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헤글런드에 따르면 데리다의 목표는 자기 동일적 현존으로 존재를 사유하는 전통적 존재론에 맞서 일반적인 ‘유령론’을 정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망령(specter)이라는 형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온전히 현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 존재를 갖지 않으며, ‘더 이상 없음(no longer)’ 혹은 ‘아직 아님(not yet)’과의 관계를 표시한다.
그렇다면 유령론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부활시키려는 시도인가, 아니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인가? 이 소모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유령론을 ‘가상적인 것의 작용(agency of the virtual)’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망령은 초자연적인 무엇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의미한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라는 근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이러한 유령적 인과성의 각기 다른 모드들을 발견했다. 금융이라는 추상에 의해 지배되는 후기 자본주의 세계는 가상적인 것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세계이며, 아마도 가장 불길한 ‘마르크스의 유령’은 자본 그 자체일 것이다. 또한 데리다가 영화 『고스트 댄스』의 인터뷰에서 강조하듯, 정신분석학 역시 정신 속의 잔향적 사건들이 어떻게 귀환하는지를 연구하는 ‘유령의 과학’이다.
헤글런드가 제시한 ‘더 이상 없음’과 ‘아직 아님’의 구분을 빌려와, 유령론의 두 가지 방향을 잠정적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째는 실제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가상으로서 여전히 실효성을 갖는 것(트라우마적인 ‘반복 강박’이나 치명적인 패턴)을 가리킨다. 둘째는 실제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가상 속에서 이미 실효를 거두는 것(현재의 행동을 형성하는 유인책이나 예견)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 서두에서 경고한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유령이었다. 그것은 도래할 것이라는 위협만으로도 이미 현재의 질서를 침식하는 데 일조하는 가상이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데리다 개인의 해체주의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소련 제국의 붕괴라는 즉각적인 역사적 맥락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이기도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떠벌린 ‘역사의 소멸’에 대한 대응이었다. 현존하는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전 방위적인 지배를 확립한 지금,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통치에 대항하는 것은 더 이상 거대한 진영이 아니라 쿠바나 북한 같은 작은 저항의 섬들뿐이다.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믿음이 널리 퍼진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시대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의 ‘출현’이 아니라, 그 ‘소멸’에 의해 유령 들려 있다.
자크 데리다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특정 담론이 존재한다. 이 지배적 담론은 프로이트가 이른바 ‘애도 작업의 승리 단계’라고 명명했던 가학적이고 환희에 찬 주문(incantation)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주문은 애니미즘적 마법과 같이 자가 반복과 의례화를 거듭하며 특정 공식을 고수한다. 그것은 격조 있는 행진의 리듬에 맞춰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마르크스는 죽었다, 공산주의는 완전히 죽었다. 그와 함께 공산주의의 희망과 담론, 이론과 실천도 모두 사멸했다. 자본주의여 영원하라, 시장이여 영원하라, 경제적·정치적 자유주의의 생존에 건배를!” (『마르크스의 유령들』, 64쪽)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자본이 전 지구적 영토 위에 구축한 미디어(혹은 포스트 미디어) 기술에 대한 일련의 사유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유령론(hauntology)’은 결코 형이상학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테크노-텔레-담론성’, ‘테크노-텔레-도상성’, ‘시뮬라크르’와 ‘합성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의 보편적 현상이다. 이러한 ‘원격(tele-)’에 대한 논의는 유령론이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의 위기와도 직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폴 비릴리오나 장 보드리야르 같은 이론가들이 역설해 왔듯—그리고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데리다가 이들과 결산하는 텍스트로 읽을 수 있듯—‘원격 기술(tele-technologies)’은 시공간을 동시에 붕괴시킨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건이 청중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와 데리다 모두 시공간을 가장 급진적으로 수축시킨 원격 기술인 사이버 공간의 온전한 효과를 목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유령론이라는 개념이 21세기 첫 10년의 대중문화와 결합하게 된 첫 번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이버 공간이 문화, 특히 음악 문화의 수용과 유통, 소비를 완전히 장악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본인과 사이먼 레이놀즈, 조셉 스태너드 같은 비평가들이 음악 문화에 유령론이라는 용어를 적용했을 때, 이는 우선 특정 아티스트들의 ‘합류(confluence)’를 의미했다. 여기서 ‘합류’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윌리엄 바진스키, 고스트 박스 레이블, 더 케어테이커, 배리얼 등은 서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특정 지형 위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유한 것은 사운드의 유사성이라기보다 일종의 감성, 즉 실존적 지향이었다.
유령론적이라 명명된 이 아티스트들은 압도적인 우울에 침잠해 있었으며, 기술이 기억을 물질화하는 방식에 천착했다. 이들은 텔레비전, 바이닐 레코드, 오디오 테이프 및 해당 기술들이 붕괴하며 내는 소리에 매료되었다. 실체화된 기억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유령론의 핵심 음향 시그니처인 ‘크래클(crackle, 바이닐의 표면 소음)’의 활용으로 나타난다. 크래클은 우리가 ‘어긋난 시간(time out of joint)’을 청취하고 있음을 환기하며, ‘현존의 환상’에 매몰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언 펜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녹음(recording)의 ‘re-(다시/뒤로)’라는 요소가 억압되는 일반적 청취 질서를 전복하는 행위다. 우리는 듣고 있는 소리가 녹음된 것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기록에 접근하기 위한 재생 시스템의 물리성까지 의식하게 된다. 또한 수많은 유령론적 트랙의 배후에는 ‘디지털 에테르’의 시대에 아날로그 매체의 물리성을 재방문하려는 시도가 깔려 있다. MP3 파일 역시 물질적이지만, 바이닐이나 CD의 촉각적 물질성과 비교할 때 그 물질성은 은폐되어 있다. 과거의 물질적 체제에 대한 갈망은 유령론적 음악을 관통하는 멜랑콜리의 한 축을 형성한다.
이러한 우울의 심층적 원인은 레일랜드 커비의 앨범 제목인 『슬프게도, 미래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Sadly, the Future Is No Longer What It Was:)』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령론적 음악 안에는 전후 전자음악이나 90년대 댄스 뮤직이 고취했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증발했다는 암묵적 인식이 자리한다. 미래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제는 미래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음악은 미래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거부 방식은 우울에 정치적 차원을 부여하는데, 이는 곧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설정한 폐쇄적 지평에 대한 불응이기 때문이다.
유령을 포기하지 않기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애도와 멜랑콜리는 모두 상실에 기인한다. 애도가 상실된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서서히 철회하는 과정이라면, 멜랑콜리는 사라진 대상에 리비도가 고착된 상태를 의미한다.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언급했듯, 애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죽은 자를 ‘환기하여 쫓아버려야(conjuration)’ 한다. “사체가 안치된 곳에서, 혹은 모스크바에서 했던 것처럼 미라로 처리된 채로 매장된 곳에서 부패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함으로써 죽은 자가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120쪽)
그러나 시신이 안장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으며, 대상을 완전히 살해(overkilling)함으로써 그것을 순수한 가상적 유령으로 만들어버리는 위험도 존재한다.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쓴다. “자본주의 사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산주의는 끝났고 그것은 단지 유령이었을 뿐이라 자위한다. 그러나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일 뿐이다. 유령은 결코 죽지 않으며, 항상 도래하고 다시 돌아온다.” (123쪽)
따라서 유령들림(haunting)은 ‘실패한 애도’로 규정될 수 있다. 이는 유령을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것, 혹은 유령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망령은 우리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제공하는 저급한 만족감에 안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21세기 유령론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특정 사물의 소멸이 아니라, 일종의 ‘가상적 궤적’으로서의 경향성이 사라진 현상이다.
그 경향성의 이름 중 하나가 바로 ‘대중 모더니즘(popular modernism)’이다. 음악 언론, 공영 방송의 실험적 영역, 포스트 펑크, 브루탈리즘 건축, 펭귄 북스, BBC 라디오포닉 워크숍 등은 영국 대중 모더니즘의 근간이었다. 대중 모더니즘은 엘리트주의적 모더니즘 프로젝트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동시에, 대중문화가 반드시 포퓰리즘적(populist)일 필요는 없음을 증명했다. 모더니즘의 기법들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재해석되었으며, 당대에 부합하는 형식을 창조하려는 모더니즘의 과업은 지속적으로 갱신되었다. 나의 초기 미적 기대치를 형성했던 이 문화적 조건들의 소멸을 직시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여기서 유령론적 멜랑콜리를 다른 두 가지 우울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웬디 브라운이 명명한 ‘左파 멜랑콜리’다. 나의 주장은 언뜻 과거의 사회민주주의 제도가 현재보다 나았다는 식의 패배주의적 우울로 보일 수 있다. 브라운은 현상 유지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나 대안 없이, 자신의 실패와 불가능성에 집착하며 죽은 과거의 계보에 매달리는 左파를 비판한다. 그러나 브라운이 분석한 멜랑콜리의 핵심은 ‘부인(disavowal)’에 있다. 左파 멜랑콜리 환자는 자신이 현실적이라고 믿는 우울증자로, 변화에 대한 욕망을 포기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라캉이 말한 ‘자신의 욕망에 대한 양보’이자, 욕망에서 충동(실패를 통한 향유)으로의 전이를 보여준다. 반면 내가 말하는 멜랑콜리는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이 강요하는 ‘현실’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에 가깝다.
둘째는 폴 길로이의 ‘포스트콜로니얼 멜랑콜리’다. 길로이는 이를 제국주의 역사를 직시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의무를 회피하고 다문화적 국가 건설을 거부하는 ‘회피의 기제’로 정의한다. 이는 전능함의 환상을 상실한 데서 기인하며, 조증적 고양감과 비참함이 공존하는 부인된 형태의 우울이다. 이들은 변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쇠퇴로만 경험하며, 그 원인을 이민자 타자에게 전가한다. 유령론적 멜랑콜리를 잃어버린 기득권을 한탄하는 ‘백인 소년의 르상티망’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상실의 본질을 오독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향수(nostalgia)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유령론은 단지 과거의 제도를 그리워하는 향수에 불과한가? 하지만 질문은 “무엇과 비교했을 때의 향수인가?”가 되어야 한다. 현재를 과거와 불리하게 비교하는 것이 반드시 비난받을 향수는 아니다. 오늘날의 PR과 대중주의는 혁신이 모든 시대에 균등하게 분포한다는 상대주의적 환상을 심어준다. 과거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향수의 폐해라면, 우리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구축한 신화 때문에 70년대와 같은 과거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반면 PR에 의해 현재는 과대평가되며, 과거를 망각한 이들은 과거의 산물을 영원히 재판매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21세기 문화의 자본주의적 디스토피아는 강요된 동시에 우리의 포획된 욕망으로 구축된 것이다. 제레미 길버트가 지적했듯,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했던 동시에 원했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적 진보와 사회적 연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가짜 선택지 앞에 서 있을 필요가 없다. 유령론이 소환하는 ‘상실된 미래’는 통신 기술의 경이로움과 강력한 사회적 연대가 결합한 세계의 망령이다. 대중 모더니즘은 완성된 낙원이 아니었으나, 노동계급의 창의성이 문화 전반에 개입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기반 시설을 파괴하면서 계급을 인종, 젠더, 성적 지향의 문제와 분리시켰다.
유령론이 갈망하는 것은 특정 시대의 복원이 아니라, 중단된 민주화와 다원주의 프로세스의 재개다. 우리를 괴롭혀야 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했던 과거의 ‘더 이상 없음’이 아니라, 대중 모더니즘이 예고했으나 끝내 실현되지 못한 미래들의 ‘아직 아님’이다. 음악 문화는 이러한 미래를 투사하는 전위였다. 그러나 21세기 음악 문화는 ‘리얼리티’와 ‘평범함’의 함정에 빠져 후기 자본주의적 주체성을 비추는 거울로 전락했다.
이 책 『내 삶의 유령들』에서 유령론은 음악 문화의 구체적 현상부터 존재의 반복과 지속이라는 일반적 의미까지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비인칭적인 분석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는 곧 ‘개인적인 것은 비인칭적인 것이다’라는 통찰로 이어진다.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히는 것은 비참한 일이며, 문화 분석의 가치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데 있다. 이 책은 내 삶을 지배했던 악성 유령인 우울증을 유령론적 멜랑콜리의 집단적 황량함으로 외부화하며, 2003년 이후 황폐해진 문화적 지형 속에서 다른 가능성의 흔적들을 추적하려는 시도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주톤스 발레리 커버한건 이제와서 보면 그냥 귀여움. 요새 ai가지고 수많은 노래 다른 가수가 커버한듯이 만드는걸 넘어 장르 바꾸고 온갖 믹싱 다 하던데. 유튭에서 포스트 모던 주크박스팀이 작업할때는 그래도 진짜 작곡가가 시간과 공들여 아티스트들과 작업했다면 지금은 ai 딸깍으로 다품종 대량생산함. 피셔가 이걸 봤으면 뭐라했을지 궁금하네.
ai번역 3년뒤가 기대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