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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쯤에 독갤에서 영업당해 큰 돈 주고 어문학사 율리시스를 구매했다가 몇 장 훑어 읽고 씨발 이게 뭐야 하면서 덮고 그 뒤 조이스는 더블린이랑 젊예초만 읽고 내버려두고 있었다. 근데 문학을 계속 파니까 궁금해지긴 했음.
그러다가 나이 들면 어려운 책들 읽는 기회가 안 오지 않을까 생각이 작년에 들어서 잃시찾이랑 율리시스를 2026년 겨울이나 봄 정도에 읽는 걸로 계획, 그리고 초독으로 읽을 문동 율리시스 역본을 구매함
먼저 조이스가 영향 많이 받은 오디세이아(를 비롯한 고대 문학들)랑 신곡을 먼저 읽어봤음 그 두 문학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밌길래(천국은 빡세긴 했지만) 바로 도전해보려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음. 율리시스를 비롯한 모더니즘 문학이 기존 문학에 반기를 들면서 생겨났으니 기존 문학들을 먼저 읽어본 뒤에 읽으면 더 뽕차지 않을까?
그래서 신곡 읽은 뒤로 여러 명작들을 시대 순으로 읽어나가봤음. 그렇게 두 달 간 르네상스~19세기의 대표적인 문학(대부분 소설)을 읽고 톨스토이에서 마침표를 찍은 후에 프루스트로 넘어감. '쾌락과 나날'은 꽤 괜찮은 시작. '스완네 집 쪽으로' 1, 2권은 읽기 빡셌지만 집중만 잘 하면 작가의 관찰력과 사유의 깊음, 계속 이어지는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만족스러운 소설이었음. 그 뒤에 젊예초 재독으로 넘어간 뒤 쉬한이 쓴 입문서를 먼저 읽어보고 율리시스를 읽기 시작함.
1, 2장은 그 악명에 비해 읽기 괜찮았음. 1장은 세속적인 친구들 사이에서 스티븐의 방황하는 의식의 서사, 2장은 꼰대 경멸해하는 스티븐의 이야기. 의식의 흐름? 프루스트나 울프에 비해 좆밥이고 포크너 '소리와 분노'보다 약간 어려운 정도?
하지만 3장에서 자길 좆밥 취급한 독자 대가리 깨버린다는 듯이 의식의 흐름 기법이 극한으로 활용됨. 그래도 읽는 건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문장의 1/4는 이해 못하고 아 스티븐 많이 힘들어하고 혼란스럽구나로 퉁치고 넘어감.
근데 4장부터 블룸이 등장하면서 꿀잼이 됨. 엄근진하고 예술적인 스티븐에 비해 유머스럽고 세속적인 스티븐이 하차 위기를 겪는 독자들의 에너지 드렁크가 됨. 내용 대충 요약하면 4장은 블룸이 집에서 밥먹고 싸는 내용, 5장은 블룸이 밖에 나가 권태를 느끼고 잡념을 생각하면서도 할거 다하는 내용, 6장은 친구 장례식 가서 여러 지인들(스티븐 아빠 포함)이 떠들고 블룸이 죽은 아버지와 아들을 생각하는 내용. 내용이 어렵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느낄법한 주제들이라 읽기 수월했음.
7장은 수십개의 신문 광고와 그 제목과 내용을 이어붙인 문체를 보여주는 장인데 그 실험적인 구조에 비해 읽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음. 내용은 대충 블룸이 일하러 왔다리 갔다리 했다가 블룸 지인들이랑 스티븐이 만나서 외출하는 내용. 스티븐 들어오고 나서는 서사가 재미가 없어지더라.
8장은 7장과 반대로 초반은 그렇게 재미 없는데 중후반부터 재밌어짐. 내용은 대충 블룸이 배고파서 밥 먹으러 가는 내용.
9장은 스티븐이 친구랑 사회적 지위 있는 인물들 앞에서 자신의 셰익스피어 이론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내가 율리시스를 너무 좆밥으로 생각했구나 싶었던 챕터였음. 읽기 어렵다기 보다는 문장의 의미를 알아차리기가 버거웠음. 셰익스피어 관련된 책들이라고 먼저 읽어볼 걸 그랬나 싶었다. 나중에 어문학사로 재독할 건데 그 때 제대로 읽어볼 거.
10장은 여러 더블린 시민들의 행위를 묘사하는 장인데 주인공들 등장 안 하는거에 비해 꽤 재밌었음. 9장 다음에 읽어서 그런가.
11장은 대충 블룸이 주점에 들어가서 지인들이랑 여종업원들이 노래하고 장난치는 걸 지켜보는 내용인데 야릇한 내용에 비해 문장들이 술에 취한 듯 혼란스러워서 읽기 빡셌음. 챕터 이름이 세이렌이라 이걸 노린건가 싶기도 하고... 가터벨트 입은 종업원 듀오랑 조이스 섹드립 아니었으면 하차 위기 겪었을 듯
개인적으로 12장부터는 거를 챕터가 없이 감탄스러웠음.
12장은 편협적인 성향의 화자의 시선과 생각이 이어지는 챕터로, 민족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인 시민과 블룸이 논쟁하다가 오해가 생겨 블룸이 마차를 타고 도망치는 내용인데, 화자가 블룸을 적대하는 태도를 보이기에 오히려 블룸의 사랑을 중요시하는 선량한 사상이 돋보이게 됨. 마지막에 무고한 사람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는 시민에게 말로 한 방 먹이는 블룸과 그의 신념이 멋있었음. 중간중간 서사 틈에 끼어서 여러 주제들을 과장되게 나열하는 서술도 신선했고.
13장은 블룸이 여자 팬티 보고 딸치는 내용임. 놀랍게도 사실이다. 근데 11, 15, 18장에 비해 야한 느낌은 덜 들었음. 여자를 중심적으로 묘사하는 초중반보다는 블룸의 내면을 묘사하는 후반부가 더 인상적이었던 챕터.
14장은 블룸이 지인의 부인이 있는 산부인과로 가서 의사와 의대생들(스티븐도 있읍)과 만나 술 마시다가 밖으로 나가는 내용임. 고대 영어부터 시작해 현대 영어의 문체로 끝나는 챕터인데 역자가 꽤 노력해서 그 문체를 의역했음. 술자리에서 음담패설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블룸이 조용히 부인의 출생을 머릿속에서 축하하며 생명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은 율리시스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장면 중 하나라고 느낌. 대학생들의 토론도 꽤나 재밌었고.
15장은 사창가로 간 스티븐과 그의 친구 린치를 블룸이 쫒아가서 여러 환상들을 겪고 빠져나와 군인한테 맞은 스티븐을 구해주는 내용임. 이 환상이라는게 물건이 말을 하거나 죽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블룸이 하녀가 되어 매춘부에게 TS SM 플레이를 즐기는 자극적인 서사가 이어지다가 후반부에는 스티븐이 어머니의 유령을, 블룸이 루디의 환영을 보면서 망자에 대한 생자의 괴로움과 욕망이 투시되기도 함. 이 장의 문체는 희곡으로 쓰였는데 뭔가 파우스트 2부가 생각나기도 했음
16장은 스티븐과 블룸이 마부 휴게소에 잠시 쉬어 작은 친교를 맺는 내용임. 진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선원 머피의 이야기와 파넬에 관한 인물들과 화자의 사유들은 혼란스러웠던 15장의 서사에 비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이고 문체도 장황하되 난해하지 않음. 스티븐의 안위를 걱정하는 블룸의 행위가 애틋하게 느껴졌던 챕터.
17장은 교리문답식으로 진행하는 특이한 챕터인데 여기까지 왔으면 이런 문체로 진행되어도 잘 읽을 거라고 생각함. 막상 읽으면 어렵지 않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음. 블룸의 집에 스티븐에 왔다가 가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그 일상적인 내용에 대한 질답이 계속 이어지면서 한 인간의 행위와 주변의 장소들을 과학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다루는데 성공함. 개인적으로 율리시스 최고의 챕터였음.
18장은 몰리의 의식의 흐름으로 쭉 이어지는 장인데 문장 부호가 없는 것 말고는 잘 읽히는 챕터였음. 몰리는 과거와 현재의 연인들을 의식 속에서 불러내지만 마지막에는 블룸의 청혼의 기억과 함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삶과 사랑에 대한 긍정을 보여줌.
나는 혁명적인 구조와 문체를 가졌으면서 서사까지 만족스러운 소설들을 많이 읽어봤지만(모비 딕, 잃시찾, 성, 창백한 불꽃, 백년의 고독 등등) 율리시스만큼 그 혁명을 극치까지 추구하면서 일상의 세속적인 모습까지 긍정한 소설은 처음 겪어봄. 조이스가 일상을 처음으로 주목한 작가는 아니지만(플로베르와 헨리 제임스라는 선구자의 존재) 일상의 작은 행위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까지 낱낱히 파헤치면서 한 인간의 하루를 완벽하게 다룬 모습이 놀라웠음. 그리고 신문 기사나 교리문답적으로 한 장을 이어나가거나 화자를 다르게 설정하거나 극작 용법을 사용하는 등의 실험성도 감탄스러웠음.
이 소설에서 블룸은 아내 몰리의 불륜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체념하여 자신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임. 블룸의 모습에서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결말의 레빈의 독백과 카라마조프의 알료샤가 아이들에게 하는 외침이 생각 났음. 레빈과 알료샤와 블룸은 삶을 긍정하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성장통을 겪은 레빈과 알료샤와 달리 블룸은 평이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고 세속적인 욕망이 가득하며 아내의 불륜을 겪는 자신의 처지를 바꾸지 못함을 알면서도 스스로 삶을 긍정하려는 태도를 보인게 인상 깊었음.
결론적으로 율리시스는 분명 어려운 소설이지만 조금 견디면서 읽어나다 보면 한 인간의 행위와 내면을 극한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의 다양성을, 문체와 구조의 뒤바뀜으로 실험성을,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화자의 언어유희로 희극성을, 처음 만난 두 인물의 친목과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묘사로 서정성을, 세속적인 삶을 긍정함으로써 보편성을 이끌어냄으로서 문학이 줄 수 있는 만족스러움을 대부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함.
그러면 율리시스 읽기 전에 뭔책들 읽은거임 - dc App
호머 비극삼대장 버질 단테 셱스 밀턴 디드로 괴테 오스틴 포 멜빌 플로베르 도끼 헨제 입센 똘이 프루스트
@책은도끼다 아니 그렇게까지 읽어야한다니잇 - dc App
@lsd사운드시스템 율리시스 읽기 위해 읽은 건 아니고 걍 재밌어 보여서 읽음
@책은도끼다 율리시스 전에 읽어야할책은 셰익스피어+조이스+오딧세이아 이정도인가 - dc App
@lsd사운드시스템 조이스가 영향 크게 받은 신곡도 읽어보면 좋고...플로베르 읽어보는 것도 괜찮고...
@책은도끼다 신곡 무슨출판사로 읽음? - dc App
@lsd사운드시스템 열린 합본
진짜 독갤에 독한 놈 많다 그걸 다읽다니
독한 놈 많아서 독갤인 듯
언젠가 재도전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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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시찾은 읽었지만 율리시스는 진짜 엄두도 안난다
~제임스 조이스 확회로부터의 초대장~ 강제 수락해드립니다
모모는 철부지
우리 같이 피네간의 경야도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