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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그리스인이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30년 동안 공무원으로 살아온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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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또 다른 남자가 있다.


현대 그리스의 최대의 시인으로 불리는 남자가.





선생님이 좋아하는 시인을 물어볼때면



아이들은 모두 윤동주, 예이츠, 이육사 등을 말하곤 했다.



난 나지막이 말했다ㅡ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선생님 : "얘야 그건 누구니 ? 위인이니 ? "



아아ㅡ 모르는건가



이곳저곳 전부 되다만 인간들 뿐이다



나 : "한때 . . . 호메로스를 쫓던 알렉산드리아 사람 . . . 입니다 "



선생님 : " 아 . . . 그러니 . . . "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마 이해하기 어려웠겠지 저 선생.



요즘 시대에 '호메로스' 라니



그저 사춘기 아이를 슥 보고 지나치는 그런 눈빛으로 날 봤다.








공무원과 위대한 작가는 왠지 어울려보이지 않지만, 사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대-시인이 된 사람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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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오스만 제국 땅이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한때 알렉산드로스가 만들었던 그리스인들의 도시에서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란 이름의 알렉산드리아인이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혼란의 시대였다.


쇠락하는 오스만을 앞에 두고 영프 열강이 개입하면서 혼란이 일어났고, 사실 카바피의 부모는 콘스탄티노플에 살다가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다시 혼란이 일어나자, 안전을 위하여 카바피 일가는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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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을 먹었으니 오스만은 제3의 로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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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제국을 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콘스탄티노플 생활은 카바피의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케밥과 일간베니스가 판치는 것과 달리, 비잔틴과 그리스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은 카바피로 하여금 '그리스인'이라는 자각을 갖게 만들었으니까.


거기에 더하여, 그의 아버지는 영국과 무역을 하며 영국 국적까지 있던 인간이라, 사실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하기 전, 잠깐 카바피는 리버풀에서 살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인으로서의 자각과 영국, 서유럽에서의 삶이 모두 미래의 카바피의 시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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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끝내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리스가 독립하고, 그리스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바피는 알렉산드로스의 도시에서 살며, 옛 선조들에 관한 시를 조금씩 써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사실 삶적으로 보면, 그의 삶은 독특할 수도 있지만, 무척이나 단조로었다.


잠시 언론인으로 일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는 영국 지배 하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30년간 공무원으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늘 시를 썼고, 고쳐썼고, 또 고쳐썼다.


그는 여러모로 특이한 시인이었다.


그리스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어로 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변방에 남았다.


그가 살아있을 적에 그를 아는 이들은, 말년을 제외하면 드물었다.



사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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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츄라이 츄라이!"



그는 결코 문예지나 출판사에 자신의 시를 보내지 않았다.


간혹 알렉산드리아의 작은 신문에 발표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소규모였다.



사실 그는 자신의 시를 그저 주변과 나누는 것을 즐겼다.


자신이 손수 자신의 시를 종이에 인쇄하며 주변 친구들에게 주곤, 그들이 그걸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공무원처럼.



하지만 그는 모더니즘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하나였고, 호메로스 이후 가장 위대한 그리스 시인이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알게 모르게 퍼져나갔고, 말년에 이르러선 제법 명성도 갖추게 되었다. 정식 시집은 사실상 출간된 것이 없지만.




물론 그가 죽고 나선 그의 시를 인쇄한 시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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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유독 <그리스인 조르바>가 유명하지만, 사실 현대 그리스 문학의 강점은 시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적인 그리스 시인들은 모두 카바피의 후배들이자 그의 영향 아래 자라났다.


대표적으로 그리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세페리스와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모두 카바피의 영향을 받은 시인이었다.


살아있을 적엔 변방에서 조용히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였지만, 죽고 나선 그리스 문학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 그는 고대 그리스와 비잔틴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 같은 시들,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바탕으로 희랍식 소년성애에 관한 시, 철학적인 사색에 가까운 시 등을 조용히 남겼다.


물론 그가 살아있을 적부터 E.M. 포스터가 그의 시를 직접 번역한다거나, 사후 t.s. 엘리엇이 극찬을 하는 등 그리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유럽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자리 잡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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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말하면, 이 알렉산드리아인이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끼겠지만,

사실 생각 외로 많은 독서인들은 카바피의 시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J.M. 쿳시의 대표작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제법 많을 것이다.


이 <야만인을 기다리며>라는 제목과 주제가 카바피의 대표작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따왔다.



적어도 이 알렉산드리아인이 완전히 생소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는 아주 평온하게 살았다, 안정적인 30년간의 공무원 라이프와 함께, 죽고 나선 위대한 시인이 되는 영광까지 누린다.


인생은 카바피처럼 평온하게.



<야만인을 기다리며>

-C.P. 카바피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광장에 모여서?

- 야만인들 때문이다. 그들이 오늘 이곳에 올 것이다.


왜 원로원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가?

왜 의원들은 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그냥 앉아 있는가?


-야만인들이 오늘 오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지금 무슨 법을 만들겠는가?

야만인들이 이곳에 오면, 그들이 법을 만들 것이다.


(중략)


어째서 모든 거리와 광장이 이리도 빨리 텅 비어지는가?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깊은 시름에 잠긴 채 다시 집으로 향하는가?

-저녁이 되었어도 야만인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령들이 변경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더 이상 야만인이 없다고 알렸다.

야만인들이 없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분명 해결책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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