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af307c2e76df5498ce69a4188060aa349f7cd85bb3cf5718d550e6624f953748e05



작가 김승옥의 문학적 성가(聲價)는 대체로 1966년에 나온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생명 연습」을 비롯하여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한 권으로 김승옥은 단편작가로서의 역량을 현란하게 보여 주면서 누구도 부인할 길 없는 뚜렷한 흔적을 우리의 현대문학사에 남겨 놓았다. 단편집 발간 이후에도 그는 「다산성」, 「내가 훔친 여름」과 같은 중장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작품들이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개성을 보여 주는 매력있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지만 첫 단편집이 보여 준 작품세계를 크게 수정하거나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충격을 딛고 선 작품이기 때문에, 또 새로운 충격을 더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양적 추가라는 국면이 크게 돋보인다. 첫 단편면집 이후에 보여준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과 같은 단편은 작가의 본령이 단편 쪽에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면서 『서울 1964년 겨울』의 세계를 한결 풍요하게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이 1960년대 독자들에게 던져 준 충격은 압도적이면서도 공통적인 것이었다. 한동안 이의를 제기하는 소리도 없었다. 작가에 대한 호의에 찬 비평적 반응과 부수적인 기대는 그 후 작가 쪽에 크나큰 부담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단편집 후기에서 김승옥은 "이젠 한국 문단의 계관이라는 동인문학상까지 받아 놓았으니 끝장이 날 때까지 '쇼'를 계속해야 할 모양이다. 그러나 손님들이 웃지 않는 때가 오면 언제든지 집어치워 버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뒷날 그는 젊은날의 객기가 없다 할 수 없는 이 말을 사실상 현실화하였다. 사정을 헤아릴 길이 우리에게는 없고 또 그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짤막한 후기가 많은 시사를 던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들의 그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것을 구태여 찾자면, 우리의 일부에게는,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도 낯설어했던 기독교적 정신 또는 합리주의가, 일부에게는 배금사상이, 일부에게는 상업공부를 한 민족주의가 그것들이다. 생활하기에는 그만한 것들로써도 충분한 것이다." 위의 발언과 그후에 전개된 사회적 지적 풍토를 떠올리면서 언제든지 집어치울 각오가 되어 있다는 오기를 포개어 본다면 김승옥의 부분적 전념 포기에 대한 맥락은 얼추 잡히는 셈이다.


어쨌거나 김승옥은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과 몇몇 후속 단편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성취는 너무나 섬세하고 휘황하여 작가 자신마저도 숨가쁘게 할 정도였다. 혼히 한 세대로 가늠하는 3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우리는 한결 차분하고 정돈된 눈으로 그 문학적 성취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0년 전 하나의 경이로 다가왔던 그의 문체와 그것을 낳게 했던 풋풋한 감수성은 오늘날 얼마쯤 바래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문체는 후속 세대들에게 문체의 위엄과 위력을 보여 줌으로써 한국 소설 일반의 문제를 더욱 섬세하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정작 김승옥 문체의 눈부심을 삭감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렇지만 문학의 역사가 한편으로 '낯설게 하기'의 교체현상이라는 일면이 있기 때문에 김승옥 문체는 여전히 평면적 사실주의에 대한 대조이자 해독제로서 매력 있는 사례가 되어 주고 있다. 비속한 재치나 개그가 문학 내부를 혼란시키고 있는 오늘 그의 신선하고 섬세한 문체는 문학 고유의 자신과 이정의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문학에서는 문체가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학의 고유성이 거기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문체적 매력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은 여전히 「무진 기행」이다. 이 작품의 리얼리티가 전혀 그 문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역시 30년 전에 씌어진 「감수성의 혁명」이란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몇 줄의 손놀림으로 등장인물의 성격묘사를 끝내는 솜씨도 요약하면 문체의 효과인 것이다. 옛 글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중언부언하지 않겠지만 김승옥 문체의 사실적이고도 환정적(喚情的)인 기능은 표피적인 약간의 부침(浮沈)을 겪는 대로 항상적(恒常的)인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김유정의 몇몇 단편이 오늘날까지 읽히는 것이 그 말솜씨라는 것과 사정은 같다. 문학과 비문학을 구분해 주는 것도 문체이다. 문체 없는 문학은 흘로 서지 못한다. 그렇지만 문체만 가지고도 안 된다. 참다운 문체는 세상과 사람을 지각하고 읽는 방법이다. 「무진 기행」에서도 속물 중의 속물인 세무서장과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여교사와 그녀를 짝사랑한다는 무진이 고향인 젊은 교사의 생동감 있는 성격묘사는 만만치 않은 세상읽기의 결과이고 그것이 문체와 어울려서 이룩하는 것이다.


- 『문학의 즐거움』(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