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진 / 문혜진
가끔씩 난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곤 해.
같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러면 어떤지 알아?
하드보일드하게 지루하지 뭐.
전인권의 <행진>을 탕진으로 바꿔 부르는데
그것도 지루하면 펭귄으로 불러
그럼 정말 썰렁해지지.
전인권은 왜 행진에서 한 발짝 더 나가지 못했을까?
그러면 탕진이 됐을 텐데
스카이 라이프 광고에서 선글라스를 벗은 전인권은
애송이 개그맨의 폭탄 맞은 개그 같아.
펑크스타일로 뇌쇄적이야.
제대로 서글프다는 이야기지.
그 폭탄 머리를 만드는 데
노련한 코디네이터가 몇 시간을 주물러댄다지?
그의 선글라스를 벗길 수 있는 건
태양도, 비도 섹시한 허벅지도 아니야.
스타일리스트로 사는 것도
돈 앞에선 귀찮아진 거겠지.
하지만 누가 그를 비난하겠어?
탕진을 흥얼거리며 스니커즈가 닳도록 걷다가 문득,
지금 내가 부르는 이 노래는
원유를 잔뜩 부은 베트남 식 커피 같아.
하드보일드하게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지.
그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두 써버리겠어
아무 것도 아끼지 않겠어.
우리동네 미대사관 앞 전경 아저씨들도 탕진!
우리 삼촌을 닮은 과일가게 총각도 탕진!
붕어빵 파는 뚱뚱한 아줌마도 탕진!
피스!로 인사를 대신하던 시대는 갔어
아무리 외쳐도 평화 따윈 오지 않잖아?
탕진!
나는 가끔씩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거장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병신이 되고야 만 미시마를 떠올리곤 해
하드보일드하게 할복이지 뭐
뛰어난 시는 이런 시가 아닐까 읽자마자 와닿는 그런 시 진짜 천재적이다
이 시,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처음 접했는데, 정말이지 곱씹을수록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