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를 걸어서 한껏 삐진 소크라테스 쨩이 나온다.
당연히 변론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박종현 네 대화 편은 이런 에우티프론-변론-크리톤-파이돈을 엮어서 한 권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읽기 편한 것도 있겠지만 우리 독회에서 하고 있는 읽기는 좀 다른 것이었으니까.
내가 우스갯소리로 들은 바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힌 대화편이 에우티프론이라고 한다.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박종현 역의 4 대화편으로 엮어지고 첫 장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걸 읽고서 더 읽을지 그만둘지 수문장 역할을 한다나. 그만큼 이번 대화편은 어렵다. <라케스>에 이어서 이번에도 난문으로 끝내고 있으니까.
에우티프론도 하소연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경건함. 그리고 신들에~, 신들에 관한~, 신들에 의한~, 신을 위한~ 등의 경건함.
5d
-경건한 것이 모든 행동에서 그 자체로는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이 아닌가요? 불경한 것은 또 그 모든 경건한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면서 그 자체로는 자기 자신과 같은 성질의 것이어서. 불경하다고 할 것이라면 무엇이든 불경함의 측면에서 어떤 하나의 형상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요?-(정암 역)
-경건한 것은 그 자체로는 모든 행위에 있어서 동일한 것이 아니겠소? 반면에, 경건하지 못한 것은 모든 경건한 것과 반대되는 것이되, 그것 자체와는 같은 것이어서, 무엇이건 그것이 경건하지 못한 것이려면, 불경과 관련해서 하나의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겠소?- (박종현 역)
하나의 형상이자 에우티프론이 말한 경건함의 행동의 본이 되어주는 것. 정암 해설과 박종현 해설 모두 이에 관한 이데아가 아직은 존재론으로 넘어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즉 보편적으로 기준이 되어주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향한 ti esti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정암학당 역 강성훈 교수님이 해제를 자세히 써놓으셨기 때문에 본문에 중복된 걸 쓸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포리아로 끝나기는 끝났다만 에우튀프론에서 말하는 경건함이란 첫 시작점에서 말한 대로 본이나 특성을 위한 탐구였는가?
신에게 사랑받는 것이 경건한가?
무엇이 신을 공경하고 무엇이 신에게 불손한가?
경건한 것과 불경한 것은 서로 반대되는가?
경건한 것을 파고들어가는 질문의 끝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경건한 것 그 자체와는 멀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경건함을 말하면서 결국 신을 끌어들이고, 사랑이라는 단어와 불경함이란 단어까지. 여러 갈래로 가지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사각형은 사각형이고 원은 원이고 둥근 사각형은 너나 처먹으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뱅뱅 돌기만 하는가?
11a~
-당신은 경건함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고서는, 내게 그것의 본질을 밝히려고 하지는 않고 그것과 관련된 어떤 상상을, 말하자면 이 경건함이 처한 상태를 곧 모든 신한테 사랑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소.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당신이 말하지 않았소. 그러니 만약에 당신만 좋다면, 나한테 숨기지 말고, 경건함이 도대체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말해 주시오. ~경건함이 그리고 경건하지 못함이 무엇이오?-
-우리가 뭘 내놓게 되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주위를 언제나 맴돌지, 그걸 우리가 어디에 세워두건, 도무지 그곳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닙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도덕경인가
이런 아리송함이 해결로 이끄는 실마리가 될지. 아니면 더 엉킨 실타래가 될지는 다음 주 <메논>에서 살펴보자.
마지막에 질려버려서 도망가는 에우티프론으로 대화는 끝난다.
다음 주는 <메논>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는 행위가 어떤 사상이나 인물, 가치를 위해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것이 정말 본인이 진정 추구하는 것인지, 혹시 허상을 좇는 행위는 아닌지 비판적 시선으로 반성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함. 가령 교리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사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하거나, 단지 실천을 하지는 않고 기도만 열심히 하거나, 이런 행위는 좋아하실 거야! 라는 본인의 의견을 앎으로 착각하거나 하는 것을 경건함이라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것 같음. 의견과 앎을 구분하기 위해 의견을 변증술로 충돌시켜 정제해내 앎으로 향하는 철학적 탐구의 본질을 이미 초기부터 그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음. - dc App
여담으로 마지막에 후다닥 도망가는 에우티프론은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아서 항상 웃김 - dc App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769860
음 업뎃된 시간표 확인 안하고 옛날 시간표 봐서 카르미데스 읽어버렸네 에우튀프론 짜피 얇으니깐 내일까지 함 읽어봄
수문장 역할의 대화편인만큼 오히려 이해하기는 쉬웠음 다만 아포리즘으로 끝나다 보니 그만큼 답을 찾는 건 꽤 어려운 듯
예전에 봤을 때는 궤변론자 테스형의 모습이 주로 보였던 것 같은데, 슬슬 대화편에 적응해서 그런가 그새 나이를 좀 먹었나 약간 다르게 보였음. 사고방식부터 낯선 책, 예컨대 구약을 읽다보면 지금 시대랑 너무 간극이 커서 자꾸 내 식대로 해석하게 되는데, 그 태도란 딱 특정 가치관을 대변하는 신을 선택해서 "아첨술"을 베푸는 것이었음. 그렇다면 대체 경건이란 무엇일까? 테스형은 그 본질이 진짜로 존재한다고 생각했을까?
메논이 플라톤 입문으로 되게 좋은 듯. 처음부터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