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파리엔 사실 한 미국인이 예술계의 빅보스, 혹은 빅맘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테니까, 그림 다 내놔."
그녀의 이름은 거트루드 스타인.
사진만 봐도, 빅보스스럽지 않은가?
금방이라도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것 같은 그녀는 그 당시 파리 사교계 및 예술계의 말 그대로 중심이었다.
'스타인'이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거트루드 스타인은 유대계 상위 중산층에서 태어나, 그럭저럭 자라난다.
그러던 중 1903년 그녀의 그녀의 형제들은 파리로 넘어온다.
"캐피탈리즘 호! 그림 내놔, 거렁뱅이들아."
거트루드와 그녀의 오빠 및 동생들은 중산층 유대인의 재산을 바탕으로, 파리에서 미술중개업을 시작한다.
거기에서 돋보인 것은 거트루드 스타인의 역할이었다.
그녀는 예술가였고, 예술적 안목이 있었으므로, 누구보다도 빠르게, 더러운 트럴 놈들을 제치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예술가들을 상회입찰하기 시작한다.
거기엔 대표적으로 세잔이 있었다.
오늘날에야 현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당시엔 아직까진 무명이었고, 거트루드는 자신과 형제들의 유산까지 모조리 꼴아박아선, 세잔의 작품을 대거 수집한다.
물론 대박 투자였다.
이렇게만 본다면, 그녀가 무척이나 부자처럼 보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스타인 일가는 상류층에 조금 못 미치는 상위 중산층 정도였다.
그녀와 가족 또한 그림 판매가 망한다면 망했겠지만, 거트루드 스타인은 언제나 뛰어난 뉴비들을 투자하는데 큰 몫을 해내었다.
자연스럽게 파리에서 성공하기를 꿈꾸는 예술가들에게 있어 거트루드 스타인은 빅맘 같은 존재가 된다.
어떻게 보면 거트루드 스타인과 그녀의 가족들은 일종의 '마름'일지도 모른다.
그녀 자신도 아주 부유층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한국의 일제 문학에서 알 수 있듯, 가난한 이들에게 지주와 소작인 사이를 중개하는 마름은 하늘 같은 존재이므로, 거트루드 또한 그러했다.
재능이 있으면 알아봐주고, 자신의 그림을 사주고, 투자를 해준다. 하지만 꼬우게 보이면, 스타인의 파리 인맥으로 뒈진다.
이런 역할만 봐도 이미 그녀의 예술사에서의 역할을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눈에 띈 뉴비 화가론, 마티즈와 피카소가 있었다.
당장,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을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하여, 거트루드 스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초상화까지 그려준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뎃데~ 스타인상, 와따시가 마티즈보다 뛰어나니까, 와따시의 그림을 많이 사주는데스웅~"
(피카소가 조공으로 바친 스타인의 초상화)
이렇게만 본다면, 굳이 거트루드 스타인이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에 나올 일이 없겠지만,
그녀 자신부터가 뛰어난 예술가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신의 예술적 안목과 재산을 바탕으로 파리에서 예술가들의 갓-마더로 군림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자신의 예술을 글쓰리고 승화하기까지 한다.
"글쓰기는 나의 사명이지만, 출판은 취미지."
우리의 빅보스에게 장애물이란 없었다.
중산층이라도, 그녀는 다른 작가들보다 유리했고, 이는 그녀가 처음 20권 가까이 자비출판으로만 작가 활동을 했다는 것에도 잘 나타난다.
참고로 모두 손해였다. 하지만 어림없지! 본인 자비출판 계속하는 상상함~ 엌ㅋㅋㅋㅋㅋ
남들이 꼴아박을 것을 20번 해도 거트루드에겐 큰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오늘날까지 높게 평가받는 것은 그 언어 실험에 있었다.
사실 스타인의 작품은 오늘날, 영어 초보자가 읽어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쉽다.
그녀는 단순한 문장을 썼고, 어려운 단어도 별로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실험적이었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스타인은 그걸 끝없이 반복했으니까.
오늘날 거트루드 스타인이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으론 '장미는 장미는 장미다'가 있다.
장미는 장미일 수 있고, 장미는 로즈(장미)일 수도 있고, 또 로즈는 로즈일 수도 있다.
이러한 언어철학적으로 흥미있을 만한 고찰을 거트루드 스타인은 끝없이 비슷한 문장으로 변주하며 반복한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작품은 컬트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꼬우면 네가 왕초로 군림하던가?"
물론 그녀의 이러한 언어 실험적인 글쓰기는 비교적 짧은 산문이나 희곡, 혹은 시에선 굉장히 효과적이었고, 또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결국엔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그 당시 최첨단 유행의 음악가들이 자신의 오페라를 위해서 스타인에게 대본을 의뢰하기도 한다.
그녀의 대표적인 희곡인 <파우스투스 박사, 전깃불을 밝히다 Doctor Faustus Lights the Lights>를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그녀의 실험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파우스투스 박사:
내가 신경쓰는건 이곳도, 그곳도 없다는 것. 나는 누구인가.
나는 파우스투스 박사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너는 네 덕분이라 하겠지만 아니야,
내가 서둘지 않고 내 시간만 챙겼더라면 나는 이 백색 전깃불을 만들고, 대낮의 빛과 밤의 빛도 만들었겠지
내가 무엇을 했는가 나는 너란 불쌍한 악마를 본다, 나는 너를 보고, 나는 속았고, 또 나는 불쌍한 악마를 믿었고
나는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나는 악마에게 유혹당했다고 생각했고,
악마가 네게 말해주기 전까지 어떤 유혹에도 홀리지 않았을 것이라 난 알지.
너는 내 영혼을 원했지만, 알게 뭔가, 네가 내 영혼을 무엇 때문에 원했을까 내게 정녕 영혼이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까 >
거투르드 스타인은 파리에서 계속 군림하며 수많은 예술가들, 국적을 가리지 않은 이들의 대모로 활동하였다.
자신의 은신처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은신처도 제공하고, 또 살롱을 열고, 화가들에게 투자하며, 헤밍웨이 같은 뉴비들도 키운다.
헤밍웨이와 거트루스 스타인의 우정은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뉴비에 불과한 헤밍웨이를 처음 알아보곤, 그를 후원하며 그에게 여러 에술가들을 후원한 것이 거트루드 스타인이었으니까.
물론 그들의 우정은 그리 오래 가진 않는다.
사실 이는 헤밍웨이 본인이 자처한 것이 크다.
뒤이어서 그녀의 대표작에도 언급하겠지만, 거트루드 스타인은 레즈비언이었다. 자신의 애인이었던 앨리스 토클라스와 파라에서부터 함께하고,
또 이는 다른 예술가들도 익히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 헤밍웨이가 시비를 건 것이다.
우리의 속 좁은 마초 코스프레 헤밍웨이께선 거트루드 스타인의 성생활에 불평하며 시비를 걸었고, 이에 스타인은 자신의 저서에 은근히 헤밍웨이를 돌려깐다.
이를 빌미로, 헤밍웨이는 스타인과의 사실상 절교를 선언하는데, 생각 외로 우스운 광경이었다.
'
"야! 내가 너하고 친구인데, 이렇게 통수를 치냐? 그럴 수 있어, 어!"
"꼬우면 존만아, 나한테 해꼬지 해보든가.
막말로 내가 아무 것도 없는 네놈 키워주고, 후원해주고, 친구 소개시켜주고, 내가 호구처럼 다 퍼주었지, 네가 나한테 준 게 뭐 있냐?
파리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냐?"
"아...시바..."
(결국 이 두 사람은 2차대전 끝난 직후에야 '화해'하지만, 헤밍웨이가 또 다시 자신의 회고록에서 통수를 친다. 과연 통수왕 헤밍웨이!"
이렇게 파리에서 왕초로 계속 군림하던 거트루드 스타인.
그렇지만 사실 그녀에게도 흑역사는 다가오고 있었다.
"엘랑스는 누구보다도 엘랑을 잘 해요!"
거트루드 스타인은 사실 2차 대전 중에도 계속 파리에서 머물렀다.
문제는 그녀가 유태인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거투루드 스타인에겐 아무 문제 없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했는가?
여기엔 당시 나치의 괴뢰 정부였던 페탱의 비시 프랑스와의 협력이 있었다.
사실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협력이 어디까지였는지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거트루드 스타인이 비시 정부에게 협력하며 무사했던 것만은 확실하며, 이는 그녀의 연구자들에게도 무척이나 껄끄러운 주제로 남는다.
에즈라 파운드만큼은 아니지만, 페탱과 친분을 보이며, 페탱의 연설을 영어로 번역하려고 시도까지 한 점 등은 여지없이 불편하다.
"데....뎃?"
뭐, 사실 그녀의 말년의 행적 자체는 많은 모더니스트들이 파시즘에 협력한 것처럼,
어쩌면 모더니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오늘날까지 미국 시의 실험 정신의 대모로 남았고,
또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회고록으로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엃어버린 세대'란 용어를 만든 이로도 명성 높고.
거기에 더불어, 한국에도 번역되었지만,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는 그녀의 글쓰기와 사상을 동시에 접하기 쉬운 책이기도 하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수많은 자비출판 중 처음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고, 대중에게도 유명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한 책인만큼,
스타인의 글쓰기와 20년대 파리를 맛보기엔 최적화된 책이기도 하다.
스타인은 스타인은 스타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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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케보니까 ㄹㅇ 개멋진사람이긴하네 상남자보다 더 상여자
모...모더니즘은 한계가 없어!
모더니스트 중에도 유대인 싫어하는 놈 많았다더니 유대인 싫어하는 놈들이 유대인돈보고 알랑거린거임?
개꿀잼ㅋㅋㅋㅋㅋ
책내도 될듯
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