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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면서 슬픈 책
이 책, 제목이 기괴하다. <멘토를 읽다>. 멘토를 누구로 삼는가는 본인 의지에 달려 있으나, 대놓고 그를 멘토로 삼을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 유교탈레반국가에서 마광수와 멘토라니 어불성설이다. <즐거운사라>가 나온지 십수년이 지난 2015년 대한민국을 봐보자. 지금이 그때와 달라진 건 딱하나 있다 낙태 허용. 마광수를 멘토로 삼는다?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괴하고도 슬프다.
말년에 교수는 슬펐다. <즐거운사라> 사건 이후 그에겐 연금도,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시던 노모도 별세해 교수는 혈혈단신이 됐다. 물질과 육체는 그리됐고 정신은 어땠을까? <즐거운사라>로 재판장에 왔다갔다 하면서 찍힌 사진을 보자. 'X같네'를 속발음으로 내고 있는 듯하다. '세상이야 어찌됐든' 굳건히 서있는 그런 불굴의 정신이 그에게 자리 잡힌 듯했다. 하지만 그의 생전 인터뷰에서는 그의 정신은 조금씩 완전히 무너졌음을 알수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날 쫓아낸 동료 교수들을 복도에서 만날까봐 연구실에서 나가는 게 두렵다. 만나면 하루 종일 가슴이 떨린다”고 털어놓았다. ‘아, 정말 심약한 사람이구나.’ 부고를 접하고 그 생각부터 났다. 여린 천성이 풍파를 겪으면서 남은 삶을 조금씩 갉아먹었으리라. (한국경제. 마광수와의 인터뷰. 2017. 9. 5)
결국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조심해서 읽어야
<멘토를 읽다>는 조심히 읽어야 한다. 책은 10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파트가 ‘인생을 읽다’다. 책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다. 첫 문장부터 독자는 경계해야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 안 있어 정신병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그야말로 ‘무(無)’자체이다.
교수의 저작 속 인생론과 실제 삶을 연결하면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인생의 의미는 무(無)라고 선언했던 그였다. 그런데 자살을 했다. 그렇다면 그는 말년에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일까? 그럼 인생의 의미는 찾았나? 찾았다면 그가 자살을 하진 않았겠지. 반대로 못찾았다면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가 선언한 무(無)로 돌아온다. 그럼 다시 의문이 생긴다. 무로 돌아왔는데 왜 자살을 했을까? 무한루프에 빠지게 된다. 초반부터 이 책은 독자를 강하게 밀어 붙인다
그러면서 또하나의 부차적인 의문이 생긴다.. 교수의 삶과 책 사이에서 진짜는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답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삶은 아이러니인 듯 하다.
그럼에도 흥미를 가질만한, 유경험자의 진심이 담긴 디테일
교수의 성에 대한 입담은 화제였다. 결혼관도 그렇다. 이 부분은 그가 실제 삶에서 얻은 것이기에 실효성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제시하는 롱런하는 연애비법을 우선 들어보자.
연애를 할 때는 오럴 섹스 등의 헤비 페팅은 자주 하되 절대로 삽입성교까지는 가지 마라. 삽입성교는 '싫증'의 원인이 된다. 연애를 할 때 즐기는 '헤비 페팅' 중에 가장 재미있는 성희는 역시 'SM Play'이다.
아직 총각이라면 명심해야될 부분이다. 그 다음은 결혼이다.
승부욕에 의해 사랑의 라이벌을 다 물리치고서 이루어지는 결혼 역시 곧바로 권태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성공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현자는 절대 승부욕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현자타임을 유지할 뿐이다. 아 물론 교수도 한번 실수했다. 결혼했다가 얼마안가 이혼을 했다. 교수가 말하는 성공우울증에 대한 경계는 귀감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우울한 책이지만, 밝은 구석을 찾으려 노력했다. 굳이 추천은 드리고 싶지 않은 책이다.
알라딘 서재에서 많이 본 글쓰기 방식이네
인생에 의미가 없으니까 자살할만하지 않을까?
의미가 없다는게 애초에 내린 결론이라...
마광수 좋아(소설 빼고)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