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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청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나를 도우러 올 천사 군단이 없는 줄 아느냐? 그에겐 있지만 내겐 없다. 만약 내게 그런 특수 군단이 있다면 나는 당신들을 도륙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당신들을 쓸어버릴 천사 군단만 없는 게 아니라, 당신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평생 내가 써온 글을 통해, 내 마음의 휴식과 평화를 몽땅 불태워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수도사처럼 정일되게 사는 것이었으나 나의 글쓰기는 마음의 평화와 휴식을 불태웠다. 내가 저질러놓은 글들은 그러므로 내 마음의 평화와 휴식이 검게 탄 재다.


솔직하게 말하자. 이 인용문은 내가 <보트하우스>를 읽도록 만든 구절이자, 이 글을 전부 읽고 나서도 여전히 제일 좋은 구절로 남아 있는 구절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이 구절을 읽었다면 <보트하우스> 전체를 읽고 나서 추가로 얻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글 전체에서 느껴지는 게 없는 건 아니기에 약간의 메모를 남겨둔다.


<보트하우스>는 큰 틀에서 봤을 때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장정일이라는 작가가 등장하는 사소설로 다시 쓰며, 이 판타지에 야설에 가까운 성적 요소를 집어넣어 섞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그는 대놓고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과 최근의 사화(<내게 거짓말을 해봐> 외설 논쟁 이후 구속)를 언급하며, 자신의 출옥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글로 쓰고 있다. 그는 집필의 활력을 되찾고자 옛 타자기를 구하고자 하고, 이 과정에서 타자기를 찾았다는 자신의 여성 팬과 만남을 가진다. 그녀는 스스로 타자기가 되고 화자는 그 타자기로 글을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이 새롭게 쓰는 글이 화자의 세상과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듯 작중 주인공인 애라는 결국 그의 타자기를 훔쳐내는 데에 성공한다. 이 살아 숨쉬는 타자기, 인간 가구에 가까운 타자기를 쓰다듬는 이들의 모습은 미묘하게 영화 <네이키드 런치>를 연상시키는데, 그 타자기는 결국 작중 인물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며 화자와는 상관 없는 삶으로 다시 돌아간다.


다시 정리하자면, 외부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 그 작가가 써내려가는 글의 이야기, 이 글과 작가의 이야기가 같은 층위에서 섞이는 이야기, 그리고 그와 상관 없이 멀리 나아가는 이야기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트하우스>다. 작가에게 있어서 글은, 다른 직업이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여기는 것처럼 몸을 싣고 정처 없이 나아가야 할 수단일 뿐이다. 이 글이 쌓여 있는 보트하우스는 사실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다. 연주하지 않는 악기가 쌓여 있는 수집가의 집, 읽지 않는 책이 쌓여 있는 장서가의 집. 작중 조직폭력배 두목 역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는데, 사람이 그 어떤 일이든 여기서 발을 뗄 생각을 하지 말고 늘 진심으로, 끝장나더라도 이곳에서 끝장날 생각으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트하우스는, 자신이 타고 한참 전에 떠났어야 할 배들을 쌓아만 놓고 있는 껍데기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쓰는 글이기도 할 테다. <장자>에서는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을 강조하며 글이 저자에게서 불필요한 것들만을 남겨둔 찌꺼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논한다. 여기에서 인용문으로 다시 돌아갈 때가 된 듯하다.


장정일의 글쓰기에는 무언가 허탈함이 있다. 글을 쓰는 과정의 열정에 비해 그 글은 실험적으로 빙빙 돌며, 대체로 그리 진지하진 않은 서사를 보여준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문학관을 비롯한 진지한 태도와 결부되었을 때 기이하게 불일치하는 것도 사실이다. <보트하우스>는 그에 대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한 적대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며, 종교적 신실함과 그에 실천으로 대응할 수 없는 죄책감이 끓어오르며 무언가 글이 나오지만, 그 글에는 정작 그 온기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보트하우스>는 이보다는 좀 더 진실된 글이 되었어야 했지만, 여전히 그럴 수 없었다. 대신 이 글은 다시금 그의 천사 군단을 대신해 세속을 공격하는 창이 되며, 이 창은 찌르기 위해 벼려지는 동안 너무 짧아져 버렸다. 사람들은 창을 내미는 그를 보며 이렇게나 신기하게 생긴 단검이 무엇을 의미할까 묻지만, 그는 이 창이 조금만 더 길어 지금 다가온 이들을 전부 찔러버릴 수만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글은 진지하게 읽어야 할 것이 아니었을 것이며, 대신 그 껍데기 너머에 있는 모종의 열망을 느끼는 것으로 그쳤어야 한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읽었고, 그 점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