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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전집 제 1권 『궁핍한 시대의 시인』의 제 1부는 주로 식민지 시기 한국 문학을 다룬다.

<일제하의 작가의 상황>에서 김우창은 부분과 현실을 균형 있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광수, 염상섭, 이상, 윤동주, 한용운 등 일제시대의 작가들이 식민지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다룬다.

이 작가들을 톺아보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식민지란 내면이 외면화 될 수 없는 공간이며 그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작가들의 노력이 대부분 타락이나 좌절로 끝났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은 이 시기에 쓰인 문학의 발전 위에 성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국 시의 형이상>에선 최남선에서 서정주까지의 한국 현대시의 발전과 실패에 대해 다룬다. 한국의 구질서가 외세에 의해 무너지자 시인들은 그 폐허에서 가치를 찾아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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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와 최남선은 유교 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외쳤으나 유교의 추상적 도식과 분류를 버리지 못했고, 그로 인해 지금 읽기엔 낡고 공허한 시를 썼다. 이 공허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시인은 내면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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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은 <불놀이>로 한국의 낭만적 감정주의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일은 감정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성과 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닌다. 이 가능성은 슬픔에서 희망으로 가는 에너지로 인해 생긴다.

그러나 한국의 낭만적 감정주의는 어둠과 빛의 대립 속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슬픔만이 남는 특이한 경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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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가는 김소월이다. 그러나 김소월의 슬픔, 부정적 에너지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대로 해소되어 버린다.

김우창은 김소월을 릴케, 횔덜린, 랭보 등의 서구 시인들과 비교하는데, 이들은 절망을 절망 그대로 해소하지 않고 절망을 주는 세계에 대한 저항으로 바꾼 시인들이다. 또한 서구 시인들은 제대로 '보기' 위해 감정으로 향해 갔다. 즉 그들에겐 사물을 꿰뚫어 보려는 '형이상학적 충동'이 있었던 것이다.

김소월을 포함한 한국 시인들에게 형이상학적 충동이 부재했기에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김우창의 주된 비판점이다. 아무튼 이것도 나름 이유가 있는데, 외부(일제)의 억압이 너무 강해 보고자 하는 에너지조차 남지 못해 슬픔을 슬픔 표현으로 해소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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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이미지스트인 김기림과 정지용은 내면 대신 외면을 통해 접근했다. 김기림은 사회의 외면적 모습을 가져다 지적인 성질의 이미지를 만드는 덴 도가 튼 시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이미지는 한국의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정지용은 감각적 경험을 고착시키는 데에 있어선 김기림보다 뛰어났고, <백록담>에 이르러선 주관이 해소되고 객관의 세계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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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박목월,조지훈,박두진)는 정지용의 이미지즘과 김소월의 감정주의를 결합해 독자적 세계를 창조했다. 그러나 자연을 보며 찾은 그들의 시는 부분적이고 주관적 세계에 머물러 전체적 인식에까지 확장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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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는 초기에는 경험의 모순, 대립과 갈등을 인정했으나 그것이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신라초>에 이르러선 일원적 감정주의와 신비주의로 후퇴해 버렸다.

김우창은 한국 현대시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가 전통 질서의 붕괴와 외압 속에서 새로운 가치 질서를 세우지 못했고, 경험의 모순을 구조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형이상학적 충동의 부재로 인한 구조적 실패이며, 한국 현대시 발전과 동시에 핵심적 한계였다. 다만 이 시인들 중 빠진 시인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한용운이다. 그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한국 현대 소설의 형성>에선 이인직-이광수-김동인-염상섭을 통해 문학의 근대화와 사회 정치의 근대화에 대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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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직은 <혈의 누>, <치악산> 등의 소설로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가 그리는 20세기 초 한국의 세계는 완전히 황폐화된 윤리를 지닌 세계이며 사람들의 일상적 관계 자체에 폭력이 배어 있는 세계다. 그렇기에 이인직 소설의 등장인물은 상당히 오락가락하는 심성을 지니고 있으며 갑자기 튀어나온 괴한들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등 구조 면에 있어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의 묘사와 비판적 의도는 그가 그리는 세계를 넘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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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무정>은 이인직의 세계와 3.1운동 이후 문학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전근대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의 그늘을 벗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를 주제로 한다. 이광수는 이 소설에서 개인주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을 통한 공동 작업의 가능성을 논하며 근대화에 대한 이상과 희망을 드러냈지만, 근대적 인간의 형상화에는 실패했다.

김우창은 <무정>의 결말부에 나오는 근대화 이념 제시가 '역사상 가장 기이한 현상의 하나'라고 평한다. 이광수가 조선이 식민지 통치 하에 있다는 사실을 완전 잊고 인간성 해방 문제를 모방 문화(서양과 일본)의 예속으로 잘못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후일 그의 친일 행적과도 연관할 수 있다. 이광수는 한국 사회의 합리화 양상을 포착해 냈으나, 한국 현실의 근본바탕을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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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과 염상섭은 만세 전후 식민지 지식인의 일상적 의식을 담아냈다. 긍정적 계기든 부정적 계기든 한국의 근대화는 진행되었다. 그 결과 삶 전체에 대한 각성이 성장했고 이 자각의 표현이 정치 운동으로 나타난 것이 3.1운동이다.

3.1운동은 국민의 의식까지 들어가지 못한 과거의 근대화 시도(개화사상, 동학농민운동)와는 다르게 사회의 모든 성원을 동원하는 대중 운동이었다. 이는 사회의식을 높이고 삶 전체에 대한 얼크러짐에 대한 일반적 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3.1. 운동 이후 문학에서의 촘촘한 현실 묘사는 이 의식의 한 표현이다.

김동인은 <약한 자의 슬픔>, <김연실전>으로 지금까지 나온 소설 중 가장 근대적인 작품을 써냈다. 김동인은 자만심과 풍자적 시선을 가졌기에 계몽주의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거부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으나, 동시에 그 때문에 사회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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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은 김동인의 (상대적으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감각과 이광수의 사회의 넓은 문제를 다루려는 노력을 전체적 의식 속에 결합하는 작가였다. 그는 <만세전>으로 근대화+고통의 양면 과정을 하나의 전체적 의식으로 그려냈다. 이 소설의 이해에 중요한 점은 개인적 사건과 사회 전체의 모습이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염상섭은 개인적 삶의 자유로운 실현, 새 윤리 속 남녀 관계, 일본에 대한 지식인의 태도, 제국주의의 수탈, 자주독립 등의 주제를 <만세전>에서 전체적 연관 속에 파악되게 했으며, 그에 이르러 한국 소설은 개체와 사회의 삶의 내면과 외면을 하나로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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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의 시인>에선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한용운의 생애와 시 세계에 대해 다룬다.

먼저 김우창은 뤼시앵 골드만의 글을 인용하며 어려운 시대에 사는 인간의 유형에 대해 설명한다. 세상이 어지럽고 썩어 있을 때 고뇌하는 인간은 두 가지 방법으로써 처세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거짓된 세상을 버리고 초월적 진실 속으로 은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거짓된 세상을 진실된 세상으로 고치기 위해 현실 속에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과 진실의 거리가 도저히 이어질 수 없다면 세 번째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용운의 길, 진실의 관점에서 세상을 거부하되 현실의 관점에서 세상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길이다. 한용운은 불교 세계관에 기초해 현실을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바라봤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가장 각별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그 존재를 하나의 보편성의 광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한용운이 생각한 부정이었다. 그에게 부정은 진실에 이르는 길이며, 타락한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민낯을 직시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한용운이 바라본 식민지 세상은 ''이 침묵하고 부재하는 세상이다. 그의 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부정과 비진리의 세계에 굽히지 않으려는 투쟁 속에만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와 자아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해가 한용운을 가장 철저한 개인 인격의 옹호자이면서 가장 강인한 독립운동자이게 했다.

 

이어 <한용운의 소설>에선 한용운의 소설이 그의 시와 다르게 왜 실패했는가에 대해 탐구한다. 아까 말했듯이 한용운은 불교적 부정의 정신을 바탕으로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은 현실 세계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초월적 세계에 머무르게 했고, 그로 인해 그의 소설은 전근대적 세계관에 갇히게 되었다.

또한 한용운의 문체는 현대적 문체라기보단 전통적 사설에 어울린다. 시라는 장르에선 그의 문체가 제법 어울린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추상적이게 읽힐 뿐이라 현실적 감각을 잃고 만다.

내용 면에서도 그의 소설은 현대적이지 못했다. 그의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복수·보은·배신 같은 테마는 내면의 갈등 하나 없이 즉각적인 반응으로 처리되었고, 인물들은 주어진 가치 체계와 심리 공식에 의해 규정된 자동인형처럼 움직였다. 한용운 소설의 등장인물은 은혜를 받았으면 무조건 갚아야 하고, 원수가 생기면 무조건 복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고대 소설의 권선징악적 전통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보수적인 유교와 불교를 비판하고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양립 가능성을 논의하는 등 상당히 개방적 태도를 보인 한용운이었지만, 소설에서는 도덕주의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해 현실적 사회성과 인간적 윤리성을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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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내면적 인간>에선 윤동주의 짧은 생애와 시 세계를 다룬다. 윤동주는 자아의 미적 실존적 윤리적 완성을 원했다. 또 그것을 구체적 삶으로 구현하는 데 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가혹한 시대는 자아의 탐구자에게 비장한 수난자의 지위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자화상>이나 <병원> 같은 시를 보면 그에게 좁은 의식을 벗어나려는 욕구, 극한 상황에서 밖으로 나오라는 부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운 시대에 자신을 완성하려던 그는 비극적 결과를 알면서도 직각적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고 믿었다. <별 헤는 밤>이나 <십자가>, <초 한 대>와 같은 시에는 그의 실존적 결단이 담겨 있다.

<참회록>에선 어둠의 시간에도 자신의 이상적 가능성을 비출 수 있는 의식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며, 실제적 행동을 통해 이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동주의 삶은 미완성인 채 끝났으나, 누구보다도 삶의 깊이에 이르려 했고, 의식이 적극적인 행동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요소들이 윤동주의 삶을 비극적이게 했고 또 영광스러운 것이 되게 하였다.


창작은 고통에서 탄생한다지만 생활상의 깊이까지 침투하는 고통이 있는 상황에선 작가들이 어떻게 할 건덕지가 안 보이는 것이다. 어려운 시대의 작가들은 실패했다. 계속 실패하면서 나아갔다. 몇은 친일로 전향했고, 몇은 제대로 꽃을 틔우기도 전에 죽어 버렸다. 몇은 죽기 전까지도 현실에 맞서 싸웠다. 우리 문학은 이들의 몸부림이 있었기에 그 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아직 확실히 개념을 이해하진 못 했지만, 김우창은 부분에서 전체로 향하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1부밖에 안 읽고 내린 결론이라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 아직 2 34부가 남았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