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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에 걸쳐 「성」을 읽었다. 그리고 나흘이나 투자해서 「성」에 대해 무엇을 알아냈는지 나도 모르겠다.


가장 난해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다. 한 사람이 보여준 진심 어린 태도는 다음 장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가식이 된다.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미스터리한 인물의 정체에 한 걸음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방금 벗겨낸 것보다 더 두꺼운 꺼풀이 정체를 가린다. 작품을 지배하는 정치 시스템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스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하는 K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형국이지만, 독자로서는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도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수수께끼다. 결국 성도 사람도, 마치 성을 향하는 듯 보이던 길이 빙 돌다가 아무것도 아닌 길이 되어버리듯이, 안갯속에 싸인 채 결말도 없이 소설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소설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이 소설이 미완성작임을 알면서도, 즉 결말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는 K의 여정에 동행하면서도 기괴한 즐거움을 느꼈다. 물론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성」도 불쾌한 부분들이 많다. 여관 안주인은 입을 꿰매고 싶었고, 조수들은 K에게 간접적으로 불이익을 줘도 좋으니 독자의 시야에서 사라져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말 그대로 예측불허의 조류를 타니 즐거움이 들었다. 의미가 있든 없든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독자를 설레게 하는 법이다. 그리고 카프카 자신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 몰라도 카프카의 작품은 해석의 가능성이 무궁하게 열려 있다. 「성」은 카프카의 작품 중 가장 방대한 작품이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읽는 재미가 있어서 나흘 동안 전혀 지치지 않았다.


그래서 성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성이라지만 이 백작은 이름만 한 번 나오고, 수많은 중간 관리들만이 시스템의 일원으로서 얼굴을 비춘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정말 무의미해 보인다. 형식에 파묻힌 그들의 모습은 사실 크게 낯설지는 않다. 결정과 행동은 기피하는 대신 보고와 서류를 우선시하는 습성은 우리 시대에도(특히 한국 군대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성」의 시스템이 유독 기괴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영향력이 그래봤자 국가 전체에 비하면 턱없이 좁은 한 마을에 미칠 뿐인데도 그토록 복잡하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체계가 민생과 상관이 없다면 별 문제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관료제에서 업무의 형식은 무의미해도 위계는 매우 중요하다. 결국 상부에 가까운 사람은 그만큼의 권력을 얻는다. 바르나바스의 가족이 겪은 일을 보면 이 권력은 꽤나 절대적이어서 무서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시스템의 매듭 끝자락에 매달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줄을 타고 무작정 걸어야만 한다. 문제는 쌓이는데 해결하려면 길을 잃게 돼있는 곳, 이것이 성의 모습이자 관료제의 초상이다.


그런데 「성」이 마냥 정치를 풍자하는 소설일까? 그보다는 더 심오한 무언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정체성에 관한 철학이 여기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성은 형식으로 충만하지만 의미로는 공허한 곳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성의 지배에 철저히 적응한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무지 독자적인 의중을 알 수 없고, 독자적인 의지를 갖고 성에 접근하려는 K를 막아선다. (그나마 욕망에 충실한 모습은 꼬박꼬박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고 일부는 마을 안에서 자신의 계획대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사실 그들의 의지가 진실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프리다는 그런 듯 보여도 페피의 이간질인지 폭로인지 모를 무언가를 생각하면 섣불리 믿을 수 없다. K는 성에 접근하려는 의지는 진실되지만 그의 진정한 목적이 단순히 성에 들어서는 것뿐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들의 움직임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는 듯 보여도, 적어도 (무려 독수리에 비유되는) 클람에게 무언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권력이 부여하는 형식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름을 소개할 필요조차 없는 단역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고 이를 취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름이 있는 주역이 될 수 있다. 이 주역이 일으키는 일이 혁명 같은 거창한 일이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그런 무모함은 체제의 반발을 강하게 사서 정체성을 포기할 만큼 강한 반동을 일으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을 건 줄다리기에서 줄을 놓지 않는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형식을 파악하며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하는 법을 터득해가기 위해 경험이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세상이 세운 장벽에 꺾이지 않는 소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성」은 이렇게 독자에게 실존주의를 권하는 희망찬 소설은 아니다. 막스 브로트를 마냥 믿을 수는 없지만 그에 따르면 K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고 한다. 실제로 K의 여정에 희망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이, 그가 나름의 소신을 품고 행동한 결과가 그에게 대개 안 좋은 쪽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K는 이제 모든 관계가 끊어져 버린 것 같았고, 물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 다른 때 같으면 그에게 출입이 금지된 이곳에서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기다려도 될 것 같았다. 이 자유를 그는 다른 누구도 해낼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 냈기에, 아무도 자기를 건드린다거나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며 자기에게 말을 붙이는 것조차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 이런 확신도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강했는데 - 동시에 이 자유, 이 기다림, 이 불가침성보다 더 무의미하고 더 절망적인 것도 없을 것 같았다." K는 이 문장에서 기술하는 것보다 더 나아지지 않는다. K는 적어도 작품이 끝나는 시점까지 철저하게 외부인이다.


그런 K를 보면서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의문이 있다. 그는 왜 성에 들어가야만 하는가? 자신을 찾는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성에 그가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측량사라면 다른 임지를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아니, 그가 애초에 측량사가 맞기는 할까? K가 측량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일이 실제로 한 번도 나오지 않지 않았던가. K에게 성은 왜 목표여야 하는가? K가 오기 전에 머물던 곳이 있었을 것이니 단순히 기거할 곳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테다. 프리다와의 사랑이 목표라면 둘이 함께 떠나는 선택지도 있었고 실제로 그에 관한 얘기도 나왔는데, K는 끝내 성에 접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프리다는 K에게 성으로 향하는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베스트베스트 남작의 성의 측량사'라는 정체성을 K는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측량과 무관한 굴욕을 겪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K 스스로가 규정한 자신이 어떤 모습이길래 그는 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만약에 K가 스스로 설계한 목표가 정말 '성의 측량사'라면 그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그는 성에 들어서기 위해 성의 방식을 거스르고 있다. 그의 목표는 성에 속하는 것이지 성의 체제를 뒤집는 것이 아닌데, 그의 행적은 종종 성을 고의로 도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격적이다. 이 모순점을 감안하면 막스 브로트가 말한 결말은 사뭇 합리적이다. 원하는 곳에 가려고 배를 탔으면서 해류를 거슬러 배를 모는 꼴이기 때문이다. K가 해피엔딩을 맞으려면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K가 마을 사람과 사상적으로 동화됨으로써 '측량사'로서 인정받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성의 휘하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K가 '측량사' 내지는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을 추구하기 위해 성이라는 소속을 포기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지지한다. 진정한 정체성은 소속에 얽매이지 않는다. 즉 성이 없더라도 K는 K일 수 있다. 하지만 K가 성이라는 소속을 좇는 이유는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았으니, 이 모든 의문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어쩌면 가장 단순한 해석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그냥 성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는데 막상 가보니 푸대접이 어이가 없어서 처음의 약속을 관철하려다 성의 체제 속에서 길을 잃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쪽은 심오함은 없지만 일반인의 시선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일 것이다.


결국 「성」에 대해 뚜렷이 알아낸 것은 없지만 그 불분명함 덕분에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무의미한 플롯에서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발굴하게끔 하는 카프카의 방식은 참으로 신묘하다. 오히려 「성」이 완결이 안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선택지가 좁아질수록 생각하는 재미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또 정치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요 근래 읽은 소설 중에서도 아주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분량은 길지만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고, 내용보다는 자유로운 해석에 초점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