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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의 스토리는 요약하자면 퍽 단순하다. 한 여인이 불륜을 저지르다 집안이 개박살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그런 스토리다.
해설에서는 플로베르가 주제, 줄거리가 아니라 '스타일'에 집중하면서 글을 힘들게 썼다(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를 쥐어뜯으며)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담 보바리>의 묘사는 상당히 유려하고 또 특이하다. 캐릭터들의 감정과 관념과 배경 묘사가 서로 알맞게 섞이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구조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엠마 보바리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엠마가 아니라 남편 샤를르 보바리를 관찰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샤를르 보바리를 관찰하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시점은 자연스레 샤를르의 것으로 바뀐다. 소설은 샤를르 보바리의 시점에서 진행되다 샤를르가 엠마 보바리를 만나게 되면서 변한다. 조연이였던 엠마 보바리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자 소설은 또 엠마의 시선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시점이 역전되어 샤를르가 엠마의 눈에 의해 관찰되는 대상이 되며, 엠마는 샤를르에게 관찰되는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된다.
엠마 보바리는 누구인가? 엠마는 원래 평범한 시골 처녀였다. 그러면서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읽고 저 너머의 세상을 속으로 꿈꿔 왔던 처녀다. 샤를르 보바리와 결혼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엠마의 욕망은 무도회에 한번 들른 이후로 점점 그녀를 휘감게 된다. 그녀는 무도회에서 빠져나오질 못 한다. 책에 나오는 사랑과 정열, 그것을 원했다. 이 욕망은 토트에서 용빌로의 이사로 점점 구체화된다. 아까 말했듯이 엠마 보바리의 최후는 파멸이다. 그녀가 책을 자주 읽어 허영심에 빠져있었다는 것은 그녀의 몰락이 숙명적임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우연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첫 번째 우연은 자신이 바라던 사내아이가 아니라 여자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고 두 번째 우연은 용빌 사람들 중 오메 씨나 뢰르 씨처럼 남들 등쳐먹는 인간들이 좀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사 이후로 보바리는 레옹이라는 사내와 썸 비슷한 것을 타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옹이 엠마를 짝사랑하는 것에 가깝다. 엠마는 연애라는 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라 믿었기에 레옹의 사랑을 초반에 깨닫지 못한다. 엠마 보바리의 마음 속엔 뭔가 허한 기운이 있다. 레옹 역시 보답 없는 사랑을 가지고 기운이 빠져 있다. 이유가 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아마 업무 차 출장에 간 것이리라) 레옹은 파리로 가며 소설에서 잠시 퇴장한다. 읽으면서 의문이 들 수 있겠는데 대체 남편이란 작자는 어디에 있는가? 모른다. 이 새끼는 아무것도 모른다. 엠마가 레옹이 자길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확신하는 와중에도 샤를르는 아무것도 모르고 호구같이 군다. 엠마 보바리의 문제를 여기에서 볼 수 있는데, 작중 언급된 바를 그대로 옮기자면 "남편에 대한 증오를 연인에 대한 동경으로 착각했고 불타오르는 증오를 새로이 뜨거워지는 애정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레옹이 가고 이번에는 로돌프라는 훤칠한 사내가 엠마 앞에 당도한다. 그는 레옹보다 훨씬 정열적인 인물이다.
둘은 아마 <마담 보바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인 농사 공진회에서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이 과정은 시장의 연설과 둘 사이의 대화가 교차되는 식으로 묘사된다. 엠마의 입을 빌리자면 "젊은 시절의 긴 몽상이 현실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관계가 불륜 관계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니다. 둘 필요 없다. 어짜피 엠마도 알고 있다.
엠마는 여러므로 멘헤라 같아서 로돌프와의 관계를 누가 알아챌까봐 무서워하고 아주 제정신이 아니다. 자기랑 아무 관련 없는 대화를 듣고서는 뻘쭘해 하는 모습도 보인다. 매일 편지를 보내고 못 보는 일이 있으면 안절부절 못 한다.
로돌프는 처음엔 온갖 간드러지는 말을 막 던졌지만 엠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니 무관심을 대놓고 보이게 된다. 멘헤라 정병 엠마는 당연히 절망하고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옛날 생각을 하며 누가 자기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들었나 생각한다. 글쎄 누굴까...
이 와중 우리의 NTR맨 샤를르는 비중이 거의 없다. 하지만 엠마가 남편을 완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증오보다는 남편이랑 같이 있으면 환상의 세계가 아닌 지루한 일상의 권태의 세계에 자기가 있다는 게 계속 생각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인간도 뭐라도 쓸모가 있겠지 하고 기대를 걸어보는 사건이 바로 안짱다리 이폴리트의 수술 파트다. 이폴리트는 선천적으로 안짱다리로 태어났는데, 내 기억상 샤를르에게 주변인이 은근 부추겨서 수술을 하게 시켰다.
아니 애초에 약사가 외과 수술을 해도 되나? 암튼 야매 수술의 결과는 이폴리트의 다리가 개판이 되는 것으로 끝나고 결국 그는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엠마는 이 사건 이후로 남편을 잠시나마 믿었던 자기를 쪽팔려하면서 남편에 대한 정이 완전 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남편에게 정이 떨어진 만큼 그녀의 정은 로돌프에게로 간다. 그러나 로돌프는 그녀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엠마는 로돌프에게 나랑 같이 사랑의 도피 해요 하고 제안하지만 로돌프에게 엠마는 무슨 평생 데려갈 반려가 아니라 그냥 불장난의 대상, 관능적 사랑의 정부에 불과하다. 로돌프는 이 "세상의 모든 정부들과 다를 바 없는 여자"를 떨쳐내기 위해 편지 한 장을 보내고 도망간다. 편지를 쓰는 로돌프의 단어 선택을 보면 엠마가 로돌프에게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여겨졌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에서도 '내 사랑'이 아니라 '당신의 벗'이라 칭하다니!
로돌프가 떠나고 엠마는 실의에 빠진다. 그러고는 레옹이 드디어 돌아왔다. <폭풍의 언덕>도 그렇고 아마 대부분의 문학이 그럴 테지만 어디 갔다가 돌아온 캐릭터는 이전과 달라져서 오기 마련이다. 레옹도 역시 좀 결단력있는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왔다. 엠마는 그렇게 다시 한번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이 파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는 아마 마차에서의 정사일 것인데, 플로베르는 이 장관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정말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러나 로돌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엠마 보바리는 멘헤라이고 레옹도 역시 그녀에게 점점 질린다.
그녀는 "같은 곡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치면서 그때마다 제대로 안 된다고 투덜"대고, 남편은 "어디가 틀린 것인지도 모르면서 멋지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피아노 역시 엠마의 허영심과 관련되어 있다. 엠마의 삶은 말 그대로 거짓투성이 삶이다.
아무튼 엠마는 레옹과의 밀회를 위해 계속해서 뢰르 씨한테 돈을 빌리고, 빌린 돈으로 빌린 돈을 갚고...
<언컷 젬스>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빌린 돈으로 빌린 돈을 갚으려 하는 인간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레옹과 엠마의 관계를 눈치챈 누군가가 레옹의 가족에게 "댁의 아들은 유부녀랑 바람이 났소" 하는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레옹은 서기가 되기 위해 엠마와의 관계를 끊어야 했다. 차라리 잘됐다. 마침 서로가 서로에게 질린 상황이기도 했다.
로돌프는 도망갔다. 레옹과의 관계도 끊어졌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직도 가장 뜨거운 추억과 가장 아름다운 책의 내용과 가장 강렬한 욕망이 섞인 환영을 본다. 레옹과의 단절 이후 엠마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참 아이러니하게 이 파트엔 무도회에 한번 참석하는 장면이 있는데, 초반에 무도회 묘사와 다르게 건조하게만 쓰여져 있다. 엠마의 빚은 점점 불어나기만 하고, 나중엔 집안 물건이 압류까지 당한다.
샤를르는 뭐 하냐고? 모른다. 이 새끼는 좀 불쌍하지만 좀 많이 답답한 놈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엠마가 진 빚은 불어나고 있으리라.
최후반에는 집 자체가 강제로 팔리게 된다. 근데 그것도 맞이하기가 싫어서 엠마는 도망친다. 남편이 자기보다 위에 서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망쳐서 레옹에게 돈 좀 꿔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실패했다. 하는 수 없이 자기한테 상처를 주고 떠난 로돌프를 찾아가기도 한다.
이 부분이 아주 가관이다. 로돌프는 엠마를 좀 유혹해보려 한 거 같은데,
엠마가 "저 파산했어요! 삼천 프랑만 꿔주세요!" 하니까 정색하면서 "돈이 없습니다." 한다. 그러자 자기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징징대고 나중엔 공증인을 찾아가서 몸으로 때우려는 듯 하다가 그게 또 역겨움이 느껴지니 도망쳐 나온다.
가츠 선생님께서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도망치고 도망치던 엠마는 다른 약사의 창고에 있던 비소를 먹는다. 약효가 서서히 나타나고 엠마는 병원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데, 장님 거지가 문 앞에서
화창한 날의 후끈한 열기에 못 이겨
젊은 아가씨는 사랑을 꿈꾼다네.
낫으로 추수한 이삭들을
부지런히 거두어 모으려고
이삭들 흩어진 밭이랑으로
나의 나네트는 허리 구부리고 가네.
그날은 바람이 하도 거세게 불어
짧은 치마가 날려서 들춰졌다네!
라는 노래를 부르자 미친 듯이 웃다가 죽어버린다.
엠마가 죽었으니 우리는 카메라를 샤를르 시점에서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샤를르는 엠마가 죽고 나서 예전의 엠마를 생각한다. 지나가버린 행복을 생각한다.
이 부분이 상당히 인상깊은데, 샤를르 시점에서 과거를 생각하는 장면은 이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엠마의 눈이 감겼을 때 샤를르의 눈이 떠진 것이다!
그러나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온갖 부채와 청구서들이다. 피아노(한 번도 레슨을 나가지 않았다)도 있고 뢰르 씨의 어음이나 필라테스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온갖 빚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녀는 엠마의 옷을 훔치고 도망쳤다.
샤를르는 서랍 속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불륜의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고 정신이 나간다. 나중에 샤를르는 로돌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 라는 말을 남기고 나중에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오메 씨는 훈장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마담 보바리>는 끝이 나게 된다.
이 엔딩은 구조상으로 정말 탁월하다. <우리>가 샤를르를 보는, 밖의 시선에서 시작해 엠마 보바리라는 중심인물의 안의 시선으로 진행되다 결말부는 엠마와 교차되는 인물인 오메 씨의 이야기와 함께 끝나는, 외부-내부-외부의 탁월한 구조로 끝나기 때문이다.
해설의 내용에 따르면 플로베르에겐 무엇을 주제로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중요했다. 내가 문학사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섣부른 단언일 수도 있으나 아마 현대 소설에 있어서 플로베르의 접근법은 엄청난 충격이 아니었을까?
재밌는 소설이다. 다만 딸아이인 베르트가 존나 불쌍하다. 엄마는 불륜하다 죽었고 아빠는 빚더미에 파묻혀 죽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재밌는 소설이다.
소설류 GOAT
김동인 <감자>랑 마담 보바리랑 되게 비슷하다고 느낌
그걸 찐하게 늘리고 서양식 향수 뿌리면 이거구만 - dc App
읽어보면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 않고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문장이 하나도 없어서 놀라게 됨. ㄹㅇ 딱 쓸 내용만 썼다는 느낌
보바리 극초반 시점 변화와 농진회 대위법 구도는 문학 역사상 최고의 장면 중 하나일 듯
괜히 보바리즘이 탄생한게 아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