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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영화사에 남긴 족적과는 별개로 영화 입문자에 해당하는 나에게 그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온갖 지식의 콜라주와도 같은 것들이 와닿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누벨바그'는 이 생각에 대해 약간이나마 재고해 볼 기회를 주었는데,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촬영을 재구성한 이 영화는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고다르와 그 시대 영화인들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이 담겨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찍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는 고다르의 말에도 나름의 설득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제 고다르가 한 말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영화라는 예술이 가지는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 역시 좀 더 나아간 부분에서 고다르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는데,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인물인 바쟁, 에이젠슈타인, 고다르 중 가장 접하기 쉬운 인물이란 점에서도, 또 가장 최근까지 활동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책은 단순히 영화 감독이나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입문서라기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 영화란 무엇인가? 에 대한 바쟁과 에이젠슈타인의 논의를 시작으로, 예술의 한 카테고리로써의 영화의 이미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그리고 다시 에이젠슈타인의 논의를 가져와 어떻게 영화화하는지를ㅡ이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에이젠슈타인적 접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영화가 아닌 수단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1장에서 다뤄지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시네마토그래프 이전의 시네마적 체험과, 오늘날의 vr과 체험형 현대 미술까지 포함하여 다뤄질 수 있는 것으로, 글에서 소개되는 바쟁과 에이젠슈타인의 논의를 참고하면 바쟁에게는 개별 영화로 그 편린이 드러나는 완전영화적 측면에서, 에이젠슈타인에게는 몽타주의 원리를 기초로 삼는 변증법적인 무엇인가로 나타난다.

2장에서는 이러한 논의들을 기반으로 영화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에 대해 탐구하는 고다르로 대표되는 영화인들이, 어떻게 영화에서 희망을 찾아내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도 소개가 이어진다. 책에서는 고다르의 몇몇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그의 이미지적 투쟁에 대한 설명이 소개되는데, 아마 이 책에서는 가장 기존의 영화 책들과 유사한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고다르가 고전적인 영화들에 대해 끊임없이 그 가능성을 재고하며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하는 고민을 수십년에 걸쳐 끊임없이 지속해왔단 점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그의 영화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3장은 1장에서의 에이젠슈타인의 논의를 보다 확장시켜 몽타주적 측면을 바탕으로 어떻게 영화화가 이루어지는지, 오늘날의 영화화에 있어 에이젠슈타인의 논의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부분으로 마무리된다.

영화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바탕으로 영화인들의 고민들을 소개한 이 책은 영화의 예술로서의 담론과 그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자 하는 글인데, 이런 부분에서 저자와 같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에게 있어 영화는 이정도까지의 애정을 담아 보게 되는 매체는 아니다. 그렇기에 영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항상 찾아가며 영화를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 명의 관객으로서 영화에 대한 희망이 더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책에서 언급되는 고다르가 인용한 페터 바이스의 문장을 통해 마무리하자면, '아무것도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희망을 바꿔놓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말처럼, 시네마의 시대인 20세기가 지났을지언정, 오늘날에도 영화라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