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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서재에 앉아있는 베케트를 본다. 한 쪽 눈이 멀은 말년의 조이스 대각선에, 베케트의 의자가 놓여 있다. 조이스는 펜을 들고, 쌓인 종이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베케트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의 작업을 응시한다.

조이스가 작업하는 작품명을 손님이 묻는다. 조이스는 그것이 피네간의 경야라 대답한다. 율리시스의 대성공으로 에고에 가득찬, 예술가답지 않게 주머니 걱정도 없는 대문호는, 지금 쓰는 대작으로 언어를 끝내고자 한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 나보코프조차 손절할 만큼의 강도로 지각이 흔들리고 있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확실하진 않지만, ‘생각 이전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언어로 드러내는 일. 언어(말)로 언어 이전을 드러내는 일.

의식이 상태-이름(명명)-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는 상태의 단계를 지연하여, 그리고 이를 과잉시켜, 사유 이전의 운동을 언어로 재현하고자 한다. 인간은 이름 붙여진 것에 대해서 더 이상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베케트는 조수로서,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조수로 끝나려는 생각은 없다. 나 또한 그처럼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나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그러나 어쩌지? 언어는 조이스가 이미 다 해버렸다.

그래서 베케트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1. ‘의미’는 항상 부족하거나 과하다. 다시 말해, 항상 실패한다.
2. 말은 의미 없이도 ‘그냥’ 나온다.

그래서 자신이 한 말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부인하고, 마치 몸의 반응처럼 이유 없이 튀어나오고, 사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없는, 바로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글이 탄생했다.
그가 한 일은 “표현”이 아니라,
자기 수정·취소·부인의 연쇄 자체를 텍스트로 만든 것.
“아무것도 말하고자 하지 않음”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없다는 상태를 말하게 만드는 글.

그래서 베케트는 인터뷰에서 침묵했지 않았을까. 애시당초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 상태로 나온, 그래야만 하는 글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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