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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은 늙은 삼촌 이야기들에 익숙해진 증손조카들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갔고, 나는 루이 16세와 보나파르트가 죽는 것을 보았으니 그 후에 더 살아가는 것은 하찮은 일이다. 이 세상에 남아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눈가에서 흘러 떨어지는 눈물을 씻어낼 만큼의 긴 머리터럭도 없을 때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지난 날에 나는 내 딸들인 아탈라, 블랑카, 시모도세[*샤토브리앙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 샤토브리앙은 자녀가 없었음. (역주)]를 데리고 청춘을 탐구하는 몽상들을 종이에 휘갈려 놓았다. 사람들은 푸생의 마지막 작품인 <노아의 홍수> 그림에서 명료하지 않은 윤곽선에 주목하게 되는데, 부족했던 시간은 그 위대한 화가의 걸작품을 아름답게 해주었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내겐 관대하게 보아주지 않으리라. 나는 푸생이 아니고, 나는 테베레 강에 살지 않으며, 그리고 내게는 날씨마저도 궂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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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 아래에서 쿠리에가 살해되었고, 그 나무들이 여전히 있다면 그 그늘 속에 무엇이 남아있을 것이며, 우리가 지나가는 모든 곳에는 우리의 무엇이 남아 있을까? 폴 루이 쿠리에는 불멸의 명성이 고행자의 옷을 입고 눈물에 젖어 서로 만날 수 있다고 믿었을까? (...) 그리스도교 신자 랑세와 똑같은 말로서 세상에 작별을 고한 철학자 쿠리에는 숲속에서 길을 잃고 사라졌다: "제게서 술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독이 너무 씁니다..."


─랑세의 생애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