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시대 차이임 1차대전 이전의 사상들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게 모고 2차대전 냉전 겪으면서 그 모를 비판하는게 포모 - dc App
미시마곱창(pose1205)2026-02-06 22:42
답글
시대적 정의 말고 정확히 무슨 내용들을 담아내는지가 궁금함 카프카가 대표적인 모더니즘이지만 1차대전의 사상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진 않잖아?
익명(61.72)2026-02-06 22:44
답글
@ㅇㅇ(61.72)
모에서는 인간 내면의 탐구(카프카나 포크너 같이), 포모는 기술 발전으로 사라져가는 인간성과 기계 사회 비판(핀천이랑 드릴로 같은) 느낌이 더 강한 듯? 그리고 모는 서술을 파괴했다면 포모는 서사 자체를 파괴한다거나 등 차이는 있음 - dc App
미시마곱창(pose1205)2026-02-06 22:46
솔직히 문학사조는 단지 연도숫자에 갈리는거고 당대 대표 문학은 아무 사조의 특징 있다 해도 어색할거 없음
걍 읽어~
익명(211.235)2026-02-06 22:47
아님
익명(49.164)2026-02-06 22:49
포모가 좀더 탈중심화된 서사를 지향하긴 하지
Pie,(ratio8552)2026-02-06 22:59
편의상 만든 범주
익명(vkshvksh)2026-02-06 23:04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의적이거나 편의적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 생각은 반드시 그렇진 않음
익명(211.206)2026-02-06 23:34
답글
하지만 내 생각이 반드시 맞는건 아니니 약간 길더라도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 한 번 설명해봄
모더니즘은 근대적 사고방식임. 철학과 예술에서 모더니즘이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같은 단어로 엮는걸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이 단어가 말하는 모던(근대)에 같은 기반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임
익명(211.206)2026-02-06 23:36
답글
@ㅇㅇ(211.206)
근대의 특징은 명확한 경계선임. 이 경계선이 있다고 생각하는 근대적 시각은 데카르트가 말하는 clear & distinct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음
이 명석판명의 가장 근본적인 기반은 모든 것이 ‘사유‘를 통해 구분된다는 점임
근대적 주체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익명(211.206)2026-02-06 23:40
답글
@ㅇㅇ(211.206)
나는 ‘사유하는 존재‘라는 것. ’사유‘는 다른 사람이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능력이기에 ’나‘라는 정체성을 ‘사유’의 한계로 정의하는 것.
익명(211.206)2026-02-06 23:42
답글
@ㅇㅇ(211.206)
개인의 탄생을 흔히 햄릿과 돈 키호테로 정의하는 건, 햄릿과 돈 키호테가 독서하고, 그래서 사유하는 인간이기 때문임.
그렇게 가장 밑바탕을 ‘사유’에 놓으면, 사유의 앞에 놓이는 것들(표상들) 역시 명석판명한 테두리를 정해줄 수 있음.
데카르트의 촛불이 가장 처음 그러한 것이었고, 근대가 나아가면서 이 테두리는 더욱 단단해짐.
익명(211.206)2026-02-06 23:44
답글
@ㅇㅇ(211.206)
칸트는 주체를 지성, 이성, 상상력이라는 세 가지 사유능력이라고 정의했고, 대상(표상)과 관련해서는 지성을 중심으로 발현되는, 가능한 경험의 총체인 나=X라는 배타적인 ‘나’를 말했지. 그의 앞에 놓이는 것들(표상들)은 가능한 경험의 총체인 대상=X라고 했고.
익명(211.206)2026-02-06 23:47
답글
@ㅇㅇ(211.206)
그래서 모더니즘 문학은 시적임. 시적인 거랑 테두리가 명확한 ‘나‘랑 무슨 상관이냐? 작가인 내가 확고한 초월적인 위치를 가지기 때문에 나는 세계를 정의할 수 있음. 야꼽슨이 은유와 환유를 구분하면서 전자를 시적 방식, 후자를 소설적 방식으로 정의하는 이유와 통함
은유는 원관념을 비우면서 보조관념을 채워넣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은유를 행하는 ‘나’가 초월적인 위치에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통제하기 때문임
익명(211.206)2026-02-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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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1.206)
반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소설적이고, 더 나아가서 파편적이기까지 함. 작가인 ‘나’가 더 이상 근대적인 위치, 명확하고 초월적인 위치에 있을 수 없기 때문임.
익명(211.206)2026-02-06 23:52
답글
@ㅇㅇ(211.206)
그래서 내가 본 대상들, 내가 만든 문장들이 그와 인접한(환유적인) 다른 대상들, 문장들을 찾고, 그걸 통합해줄 수 있었던 ‘나‘는 그 대상들, 문장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위치까지 격하되기 때문.
앞서 말했다시피 근대적 ‘나‘는 근대적인 ’사유의 이미지’, 즉 사유가 각각을 분리시키고 그걸 인증해준다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포스트모던은 우선 여기에서 벗어나는 거임. 그래서 사유보다는 몸, 육체를 가진 ‘나’ 혹은 작가가 등장함
익명(211.206)2026-02-06 23:56
답글
@ㅇㅇ(211.206)
몸이나 육체는 알다시피 배타적이지 못하지. 육체는 먹고 싸면서 유지되는 거임.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작가의 것인지 명확히 정할 수 없음
그래서 어떻게 말하면 세계/환경에 휘둘리는 거고, 어떻게 말하면 세계/환경과 같이 호흡하는 거지. 그런 시각을 보여주고자 하는게 포스트모던 문학이고..
익명(211.206)2026-02-06 23:59
답글
@ㅇㅇ(211.206)
물론 내가 말한 기준이라면 나보코프 같은 작가는 극도로 모던한 작가겠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허투루 쓰이고 있는 말이라고 가볍게 넘어갈 게 아니면, 스스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점에서 갈라지는지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고
아님
뭐임 그럼 설명좀
모더니즘 ㅡ 유니콘 포스트 모더니즘 ㅡ 슈퍼콘
사실상 시대 차이임 1차대전 이전의 사상들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게 모고 2차대전 냉전 겪으면서 그 모를 비판하는게 포모 - dc App
시대적 정의 말고 정확히 무슨 내용들을 담아내는지가 궁금함 카프카가 대표적인 모더니즘이지만 1차대전의 사상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진 않잖아?
@ㅇㅇ(61.72) 모에서는 인간 내면의 탐구(카프카나 포크너 같이), 포모는 기술 발전으로 사라져가는 인간성과 기계 사회 비판(핀천이랑 드릴로 같은) 느낌이 더 강한 듯? 그리고 모는 서술을 파괴했다면 포모는 서사 자체를 파괴한다거나 등 차이는 있음 - dc App
솔직히 문학사조는 단지 연도숫자에 갈리는거고 당대 대표 문학은 아무 사조의 특징 있다 해도 어색할거 없음 걍 읽어~
아님
포모가 좀더 탈중심화된 서사를 지향하긴 하지
편의상 만든 범주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의적이거나 편의적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 생각은 반드시 그렇진 않음
하지만 내 생각이 반드시 맞는건 아니니 약간 길더라도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 한 번 설명해봄 모더니즘은 근대적 사고방식임. 철학과 예술에서 모더니즘이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같은 단어로 엮는걸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이 단어가 말하는 모던(근대)에 같은 기반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임
@ㅇㅇ(211.206) 근대의 특징은 명확한 경계선임. 이 경계선이 있다고 생각하는 근대적 시각은 데카르트가 말하는 clear & distinct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음 이 명석판명의 가장 근본적인 기반은 모든 것이 ‘사유‘를 통해 구분된다는 점임 근대적 주체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ㅇㅇ(211.206) 나는 ‘사유하는 존재‘라는 것. ’사유‘는 다른 사람이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능력이기에 ’나‘라는 정체성을 ‘사유’의 한계로 정의하는 것.
@ㅇㅇ(211.206) 개인의 탄생을 흔히 햄릿과 돈 키호테로 정의하는 건, 햄릿과 돈 키호테가 독서하고, 그래서 사유하는 인간이기 때문임. 그렇게 가장 밑바탕을 ‘사유’에 놓으면, 사유의 앞에 놓이는 것들(표상들) 역시 명석판명한 테두리를 정해줄 수 있음. 데카르트의 촛불이 가장 처음 그러한 것이었고, 근대가 나아가면서 이 테두리는 더욱 단단해짐.
@ㅇㅇ(211.206) 칸트는 주체를 지성, 이성, 상상력이라는 세 가지 사유능력이라고 정의했고, 대상(표상)과 관련해서는 지성을 중심으로 발현되는, 가능한 경험의 총체인 나=X라는 배타적인 ‘나’를 말했지. 그의 앞에 놓이는 것들(표상들)은 가능한 경험의 총체인 대상=X라고 했고.
@ㅇㅇ(211.206) 그래서 모더니즘 문학은 시적임. 시적인 거랑 테두리가 명확한 ‘나‘랑 무슨 상관이냐? 작가인 내가 확고한 초월적인 위치를 가지기 때문에 나는 세계를 정의할 수 있음. 야꼽슨이 은유와 환유를 구분하면서 전자를 시적 방식, 후자를 소설적 방식으로 정의하는 이유와 통함 은유는 원관념을 비우면서 보조관념을 채워넣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은유를 행하는 ‘나’가 초월적인 위치에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통제하기 때문임
@ㅇㅇ(211.206) 반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소설적이고, 더 나아가서 파편적이기까지 함. 작가인 ‘나’가 더 이상 근대적인 위치, 명확하고 초월적인 위치에 있을 수 없기 때문임.
@ㅇㅇ(211.206) 그래서 내가 본 대상들, 내가 만든 문장들이 그와 인접한(환유적인) 다른 대상들, 문장들을 찾고, 그걸 통합해줄 수 있었던 ‘나‘는 그 대상들, 문장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위치까지 격하되기 때문. 앞서 말했다시피 근대적 ‘나‘는 근대적인 ’사유의 이미지’, 즉 사유가 각각을 분리시키고 그걸 인증해준다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포스트모던은 우선 여기에서 벗어나는 거임. 그래서 사유보다는 몸, 육체를 가진 ‘나’ 혹은 작가가 등장함
@ㅇㅇ(211.206) 몸이나 육체는 알다시피 배타적이지 못하지. 육체는 먹고 싸면서 유지되는 거임.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작가의 것인지 명확히 정할 수 없음 그래서 어떻게 말하면 세계/환경에 휘둘리는 거고, 어떻게 말하면 세계/환경과 같이 호흡하는 거지. 그런 시각을 보여주고자 하는게 포스트모던 문학이고..
@ㅇㅇ(211.206) 물론 내가 말한 기준이라면 나보코프 같은 작가는 극도로 모던한 작가겠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허투루 쓰이고 있는 말이라고 가볍게 넘어갈 게 아니면, 스스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점에서 갈라지는지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