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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어에 대하여: 번역 원문에서는 femboy를 펨보이로, bussy를 보추로 옮겼다. 그러나 필자는 femboy에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가 보추이며, bussy에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는 뒷xx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만 글 전체에서 계속 보추보추거리기가 낯뜨거운 관계로 femboy는 계속 펨보이로 옮긴다.]
[글 중간에 삽입된 짤들은 본문의 내용과 아마도 관계가 없다. 아님말고.]
1.
그러니까, 펨보이는 귀엽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글을 나가도 좋다.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꼴알못들과는 겸상할 생각이 없다.
시마카제군과 아스톨포부터 미즈키와 노이까지, 모든 펨보이들은 안김받아 마땅하며,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
오늘날 오토코노코의 유행이 가져온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혁명을 부정하는 아마추어 문화비평가들의 목소리는 무시하도록 하자.1) 그들은 시대를 역행하는 감속주의자들에 불과하다.
오토코노코의 유행은 21세기 들어 가장 퀴어한 혁명이며, 큐트 가속주의자로서, 우리는 이를 더욱 가속할 필요가 있다.
2.
r/egg_irl의 무수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펨보이는 트랜스여성의 전 단계이며, 아직 자각하지 못한 트랜스이다.
자각하지 못한 트랜스는 아직 egg, 즉, 알이다. 그리고 데미안의 유명한 경구처럼, 새가 나오기 위해서는 알을 깨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새는 트랜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설적인 면이 있다. 만일 '알'이 곧 자각하지 못한 트랜스라면, 아직 깨지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알인지 알 수 있을까?
자신이 알이었는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알을 깨고 나오면 비로소 자신의 모든 이상한 행동들과 의문들이 전부 '알'의 징후였음을 알 수 있지만, 이는 오직 사후적으로만 알 수 있다.
3.
트랜스젠더를 설명하는 두 가지 대중적인 서사가 있다.
하나는 "여자의 몸에 갇힌 남자(혹은 그 반대)"이며, 다른 하나는 "남자가 된 여자(혹은 그 반대)"이다.
다시말해, 트랜스젠더는 그가 정체화하기 이전부터 이미 "이성의 영혼"를 지니고 있었는가? 아니면 정체화함으로서 다른 성별이 되는 것일까? 알은 깨지기 전부터 알이었을까? 아니면 깨짐으로서 알이 되는 것일까?
들뢰즈는 배아의 비유를 든다.
전통적으로, 배아가 인간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대립되어 왔다. 하나는 전성설, 곧 배아는 각기 손, 눈, 심장, 여타 다른 장기의 씨앗들을 이미 모두 지니고 있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후성설, 즉 배아는 거의 균질한 덩어리이며, 외부 환경에 의해서 인간으로 발달한다는 견해이다.
알베르 달크는 이 두가지 견해를 모두 비판하면서 형태발생 이론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배아의 구성은 불균등하게 분포되어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 기관들의 '씨앗'이 이미 내재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배아의 각 부분들은 배아 전체의 공간적 구조와 상호작용하며, 화학적 운동 과정을 통해 분화되어나간다.
더구나 배아가 발달함에 따라 전체 구조 또한 변하기 때문에, 배아의 발달은 시간적 구조에 역시 의존한다.
다시말해, 지도 자체가 제작 과정에서 함께 쓰이며, 그 과정 자체가 배아이다.
4.
가속은 역행이다.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알 속에 갇혀있던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알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밀교의 입회자가 '새로 태어나' 듯 새로 태어나는 것이며, 이는 역행하는 것이다.
이는 은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물학적 의미에서 '제2의 사춘기'를 겪는 것을 의미한다. 트랜스남성은 수염이 자라고, 목소리가 굵어지고, (안타깝게도) 탈모가 오게되며, 트랜스여성은 가슴이 자라고, 골반에 살이 차오르고, 피부가 보드라워진다(아쉽게도, 목소리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5.
조프루아는 모든 종들의 기관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보얐다. 타조의 Y형 늑골은 인간의 견갑골과 연속되며, 거북이의 등껍질은 갈비뼈의 연속이다.
이는 하나의 기관이 다른 기관으로 변형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러한 연속적인 모든 기관들을 결합하여 이들 모두가 도출될 수 있는 사변적 추상체를 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의 관점에서 이를 고찰하지 말자. 배아의 단계에서,
고래의 수염은 이빨이었다. 모든 기관은 그것의 가소성이 최대인 지점에서 분석되어야한다.
가속은 회귀이며, 알은 배아이다. 이는 시간적 퇴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가능태에 가깝다.
모든 지정성별 남성도 각자의 정해진 가슴 크기가 있으며, 트랜지션은 (대체로 자신의 여자 형제보다 1-2컵 작게) 3-5년의 hrt로 그것을 현실화한다. 사회화는 이들 가운데 어떤 하나를 발달시키는 과정일 뿐이다
6.
가속주의는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도, 미래학적 예측도 아니다.
가속주의는 자신이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경사로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다.
가속주의는 단지 불가피한 미래에 순응하는 태도가 아니다. 가속주의는 수많은 경사로들 가운데 통제 불가능하게 미끄러져 내려갈 경사로를 고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이 되지 말고, 현실이라는 이름의 제동을 걸지 말고, 이미 자신인 알인 상태로 남아있어야만 한다.
가속주의는 끊임없는 역현실화이다.
그리고 우리는 귀여움의 비탈길로 미끄러져 내려가기로 했다.
귀여운 소녀와 펨보이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어른이 되기를, 거기에 따르는 사회적, 성적 구속을 모두 거부하는 것이다.(그리고 아마도 twinkdeath의 열죽음도.)
소녀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이성애적 재생산 모두의 이전이다. 소녀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며, 또한 탈성애화되어있다.
스스로를 꾸미는 소녀는 이성애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 이는 탈성애화된 자기애이다.
7.
레이 블랜차드는 그의 악명높은 AGP(Autogynephilia, 자기여성애) 이론에서 트랜스여성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남성애적 트랜스여성들인데, 이들은 HSTS로,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목적에서 스스로를 여성화한 동성애자들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애적 트랜스여성들인데, 이들은 AGP로, 여성화된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나머지 스스로를 여성화한 이성애자들이다. (무성애자들과 양성애자들은 이 수직선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도록 하자.)2)
많은 트랜스 이론가들이 그의 이론을 비판해왔던 것과는 반대로, 큐트 가속주의는 이 이론을 적극 수용하고, 오히려 더욱 가속한다.3) AGP 이론은 펨보이의 귀여움이 지닌 침투성과 양성성, 아니, 성별 바깥에 있음을 입증한다.
귀여움은 마침내 귀여워하는 주체 자신을 귀엽게 만들며, 그럼으로서 포식자와 피식자, 소유와 존재, 소비와 대상화의 구별을 소멸시킨다.
소녀는 자기애를 위해 자신을 귀엽게 치장하며, 소년 역시 자기(여성)애를 위해 자신을 귀엽게 만든다.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모에 소비가 데이터베이스화된 소비라고 지적했다. 다시말해, 모에 소비는 개별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를 이루는 속성, 예컨대 메이드, 고양이, 흑발과 같은 기호들을 소비하는 것이다.
모에 데이터베이스는 그러므로 알인데, 그 자체에는 어떠한 조직화도 내재해있지 않지만 모든 재구성 가능성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펨보이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데이터베이스화한다. 펨보이는 (트랜스)여성이나 남성과 같은 정체성에서 벗어나, 모에 데이터베이스들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귀엽게 재구성한다.
이는 2d와 3d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3d가 아니라 2d가 3d를 규정하여(말하자면 이는 2.5d이다), 펨보이들은 가상의 세계를 살아간다.(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에서 vr챗을 떠올리지 않기가 어렵다)
8.
귀여움은 19세기의 새로운 미학이다.
귀여움은 숭고미나 골계미 따위를 품고있지 않으며, 고대 이집트인들의 스핑크스는 귀엽지 않다.(그랬다면 좋을텐데!)
귀여움은 세 가지 의미에서 정상성을 벗어난 과잉이고, 이탈이다. 귀여움은 아마도 본래 부모가 아기를 양육하도록 만드는 목적에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귀여움은 이미 아동=귀여움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는데, 우리가 아기만큼이나 고양이를 이미 귀여워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 다음 귀여움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의해 사회문화적 규범을 넘어서지만,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과정이 아닌 정적인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멈춰선다.
마지막으로 귀여움은 데이터베이스화된 소비를 통해, 자기를 귀여워하게 됨으로서, 루핑 속에서 귀여움은 강화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자가 직접 그려놓은 도식을 보는 것이 좋겠다.
9.
정리하자. 펨보이는 일종의 '알'이다. 그러나 그 알은 깨지지 않는 알이다. 펨보이는 트랜스의 전단계가 아니다.
가속은 역행이다. 귀여움을 가속한다는 것은 재생산 이전의 상태를 과잉시킴으로서 어른이 되지 않는 것, 즉 정체성의 구속에 스스로를 고정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가속은 역현실화이며, 현실태를 가능태 - 알로 되돌리는 것이다.
트랜지션 또한 일종의 역행이다. 트랜스가 된다는 것은 알, 즉 가능태로 역행하는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지는 경험이다. 어느 순간 알은 깨지고, 사실은 트랜스남성/여성이었던 자신을 발견한다.4)
그런데 펨보이는 비탈길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지만 깨지지 않는 알이다. 펨보이는 자기를 귀여워함으로서 양성성과 정체성을 넘어서는 알이다.
펨보이는 귀엽다. 그리고 귀엽다는 것은 정말로 퀴어한 것이다. 큐트 가속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가속하고자 한다.
still cis tho UwU
1)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는 비평으로는 예컨대 마리갤의 아래 영상이 있다.
https://youtu .be/ggqnIbF3AHU
2)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를 참고하라.
3) 그러한 비판의 한 예로, 콘트라포인츠의 아래 영상을 참고할 수 있다.
https://youtu .be/6czRFLs5JQo
4)나는 이를 지젝의 고전적이고 헤겔적인 비유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미 사랑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들뢰즈 철학에 대한 필자의 지식은 일천하기 그지없다.
큐트 가속주의 읽고 쓴 독후감의 1부.. 2부는 언제 쓸지 몰루
혼란스러워서 읽지 못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도록 개추
2 - dc App
미치겟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우 집에 산 33000원 책이 이 내용이었다고 ㅋㅋㅋ
이런 자위를 할 시간에 운동 식이요법 성형이라는 질과 양을 손볼까요?
눈을 떴구나
예?
뭐야 이책 어디서삼?
출판사 인스타에 구매링크 있
요컨대 이쁘거나 멋진건 언제든 변해도 귀여운건 언제든 짱이라는거지
뭘본거지
이거 보니까 가면속의 수수께끼라는 만화에서 어떤 할배인지 아저씨가 최초의 인간인 남녀추니(보추)로 돌아가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군요.
만화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모두가 똑같이 생긴 보추들이 가득한 이상한 공간으로 가버리는 걸로 기억함.
:3
정신나갈거같애.
?????
철학전공했어? 너 글 진짜 잘쓴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