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차후로 우리는 한 종으로서, 이미 클론, 정보화, 네트워크의 형태로, 이렇게 인위적으로 살아남아 있다. 사라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사라지기를 멈추지 않는 무언가를 이렇게 항구적으로 연장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 예술은 죽기 전에, 그리고 죽는 대신에 사라질 줄 아는 것이다.
아무튼 아무것도 간단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문제는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무엇이 남는가이다. 이건 마치 루이스 캐럴의 체셔 고양이와 같은데, 그놈의 미소는 고양이 형상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여전히 공중에 떠다닌다. 또는 신의 심판과도 같다. 신은 사라지지만, 그 뒤에 자기의 심판을 남겨 둔다. 그러므로 고양이의 미소는 이미 그 자체로 무시무시하지만, 그 고양이 없는 미소는 훨씬 더 무시무시하다 ⋯⋯. 그리고 신의 심판은 그 자체로 무시무시하지만, 신 없는 신의 심판은 ⋯⋯.
—장 보드리야르, 사라짐에 대하여
집필시기를 생각하면 예언적인 구절들이 많지만, 독자인 내가 하필 2026년, (베라르디 식으로 표현하면) 감각의 인플레이션 이후, 신창섭 르네상스와 프로젝트 지니의 여파를 겪은 후에 펼친 탓에 경탄이 색바램
한창 비평계가 혼톨로지 운운하고 로파틴이 OOO를 영감으로 삼던 시기에 읽었다면 흥분도 하고 또 열정적으로 메모도 끄적이고 그랬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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