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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황제를 위하여를 초판본으로 읽었다.
당근마켓에서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과 황제를 위하여, 시인을 500원에 팔길래 택배비에 2천원 얹어서 1년 전에 샀었기 때문이다.
책은 한번도 안 펴본 형태로 왔었기에 새 책은 새 책이다.
덤으로 90년대 나온 책들은 오탈자가 심심치 않게 보이며, 이 황제를 위하여 초판본의 경우는 96년에 찍어낸 책임에도 불구하고
'읍니다' '알겠오'를 교정하지 않은 체였다. 의도된 거라면 ㅇㅈ
초판본이라고 말했는데, 이건 교수가 나오는 에필로그가 들어있는 버전이라 '초기버전'에서 수정 안 된 거라 초판본이라 말한 것.
1.
서양의 논리에 대항하는 동양의 논리를 보여주고 싶었다느니
동양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었다느니
라고 책 표지에 적혀져 있는데, 분명한 무리수. 이문열 작가 본인의 의도인지 출판사의 의도인진 모르겠다.
이문열 작가의 현학적인 문체가 유난히 도드라지고 자아도취적으로 드러나나
그것은 특징이지 장단점을 논할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좀 이 책에선 유난히 과하긴 했지만.
하지만 고사가 많이 등장하는 건 알겠는데, 그거 가지고 억설로 엮어서 풍자식으로 보여주는 거로 정수라고 할 순 없지 않겠나...
시대상 감안해도 한심한 자의식 과잉.
그러나 교육용으로 만약 초등생 고학년이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럭저럭 동양의 고사들을 많이 숙지하게 되긴 할 것이다.
솔직히 그게 이 책이 많이 팔린 원인의 5할 정도는 차지하지 않을까? 대한민국 특성상.
2.
처음에는 위에서 말한 동양의 정수 어쩌고를 말하고선 깊이가 형편없어
우습고 같잖은 마음으로 읽게 되었으나
마숙아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무릎을 탁 쳤다.
역시 이문열의 이야기꾼으로서의 기교는 훌륭하다.
상병신에 가깝게 인물을 보여줘 사람을 한껏 얕잡아 보게 만든 시점에서 이렇게 뒷통수를 떄리다니.
이야기에 흥미를 안 가질 수 없었고.
3.
만주로 나아가서 벌어지는 일들은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황제를 도와주는 중국인들의 개연성을 얼렁뚱땅 대륙의 기상으로 퉁쳐서 넘겼고, 이문열 작가 본인도 중국인을 대해본 경험이 별로 없을 거 같긴 한데
그럭저럭 납득이 되며 이야기에 기름칠이 쳐지기 시작한다.
아마 이문열 작가 본인은 지금 시절에 태어나서 넓은 견문을 보고 자랐으면 정말 재밌는 이야기 만들 수 있는 작가라 생각한다. 해저 2만리 같은 것 말이다.
이 이후부터는 황제의 됨됨이에 주목을 안 할 수 없고
그 비범함에 놀라며
그 황당무계함에 가슴 졸이며 웃게 된다.
이야기꾼으로서는 정말 훌륭한 기량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4.
'시인'이 그의 단점을 최대한 배제한 작품이라면
황제를 위하여는 좀 난잡한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그의 장점이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보인다.
읽어볼 만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그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었으면 정말 큰 작가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이미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긴 하지만,
나는 그의 책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 않다고 느끼곤 했다.
그가 장광설적인 그의 문체를 제어하느라 가장 힘들게 썼을 거라 생각하는 시인같은 경우는 소설로서, 특히 문장의 완성도는 높다고 생각하나 이야기가 간신히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그가 다양한 경험과 더불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면,
황제를 위하여와 시인의 장점이 어우러져
기가 막히게 재밌는 책, 그러면서도 어떠한 심금을 울리는 고전이 될 수 있는 책이 나올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작가는 그런 상처 없었나!!하며 반론할 수 있겠고, 하지못할 소리도 아니겠으나
이문열 작가는 솔직함이 미덕인 사람이라 그런지 본인의 경험에서 뭔가 더 뻗어나가지 못한 스타일로 보여 시대적 여건이 안타깝다.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경험하지 못한 걸 닦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황제를 위하여' 재밌게 읽었다.
그러나 나는 '시인'을 그의 최고 장편소설로 생각하기로 정했다.
변경까지 읽을 여력은 없지만, 변경을 제외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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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어떤 분이 예전에 쓴 글을 언급해주셔서 생각난김에 다시 읽어보고 재탕합니다. - dc App